서울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충정로역 입구. 빌딩 신축을 위한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까지 주유소가 있던 자리다. 주유소대지 300평에 인근 주택대지 700여평을 합해 15층짜리 오피스텔이 올라선다.오피스텔이 완성되면 16평형 200세대, 26평형 350세대 등 총 550세대가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전체 분양가만 1,000억원에 달한다. 서울 중심부 지하철 역세권이라 분양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지역에 주유소가 왜 줄어들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다.주유소부지는 노른자위 건설부지로 꼽힌다. 상업용 건물 건축부지가 거의 고갈된 서울의 경우 더 그렇다. 최소 100평이 넘는 대지에 대부분 대로변에 위치해 상업용 건물을 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여기에 지하철 역세권이라면 금상첨화다.신한투자개발 조용진 컨설턴트는 “주유소 용지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차의 왕래가 잦은 곳이고, 기존 시설도 많지 않아 철거비용도 비교적 적게 든다”며 상업용 빌딩부지로서의 장점을 설명했다.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서울지역에서만 85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고, 그 부지에 건물이 들어섰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3월까지 10개소가 폐업했다. 2000년 초 839개소이던 서울지역 주유소가 2003년 3월 현재 754개소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지역 자동차 등록대수가 230만대에서 271만대로 41만대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3년새 주유소 85개소 폐업반면 지방 대도시에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서만 2000년 초 447개소에서 올해 436개소로 11개소 줄었을 뿐 대구, 인천, 광주 등지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다.서울지역 주유소 폐업이 절정을 이뤘던 때는 지난해. 2001년까지 한 해 20개소 정도씩 줄던 수치가 지난해 44개소로 치솟았다. 민간주택 건설경기를 포함해 건설경기가 호조를 보였던 때와 시기가 일치한다.지역적으로는 강남구에서 주유소 폐업이 가장 많았다. 지난 3년간 17개소의 주유소가 폐업해 그 뒤를 이은 서초구, 송파구, 광진구의 6개소와 큰 차이를 보인다. 상업용 건물 개발수요가 강남구에서 상대적으로 높았음을 의미한다.서울에서 주유소가 이렇듯 감소한 이유는 부동산 개발수익이 주유소 운영수익을 크게 앞지른다는 데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주유소간 거리제한제 폐지 이후 주유소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주유소간 경쟁이 심화됐다.그 결과는 당연히 수익성 악화. 한국주유소협회 양재억 이사는 “손님을 끌기 위해 각종 경품제공, 무료세차 같은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주유소 운영에 마케팅 비용이 추가됐다. 여기에 97년 유가 자율화 조치가 실시되면서 주유소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고 말했다.주유원 인력난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PC방, 패스트푸드점 같은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기면서 주유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수익성이 뻔한 입장에서 임금을 갑자기 올려줄 수도 없는 입장. 방학을 제외하곤 늘 인력난에 시달려 왔다는 설명이다.주유소부지에 빌딩이 들어서는 추세는 올해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는 이러한 추세가 서서히 수그러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주유소협회 양이사는 “차량은 계속 증가하는데 주유소만 마냥 줄 수는 없다”며 “그동안 많은 주유소들의 폐업으로 인해 경쟁상황도 다소 완화됐기 때문에 더 이상 주유소가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조용진 컨설턴트도 “최근 서울지역 주유소부지 소유주들이 땅값을 너무 높게 부르고, 목 좋은 곳은 많이 개발된 상태”라며 주유소부지 개발 추세가 다소 주춤해질 것으로 예상했다.하지만 아직까지 비교적 개발이 덜된 부산 등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유소부지 개발 붐이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분석국민연금 100조원시대의 명암국민연금 적립액이 지난 5월16일 10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수혜자도 이보다 열흘 가까이 앞선 지난 5월7일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5년 만의 경사다.국민연금의 운용실적은 좋은 편이다. 국민연금 적립금 100조원 중 3분의 1인 33조원이 운용 수익금이다. 전체 자산의 6% 정도가 주식에 투자돼 있고, 나머지는 안전한 국공채 등으로 운용되고 있다.문제는 국민연금의 미래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바뀌지 않을 경우 2048년께 국민연금이 소진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보험료는 적게 부담하고 연금지급액은 높게 책정돼 있는 구조적인 불균형으로 국민연금 재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급속한 노령화 추세도 국민연금에는 큰 부담이다.현행 국민연금제도에서는 40년 가입기준으로 은퇴 전 평균소득의 6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40%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다.정부 관계자와 학계,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한 연금발전위원회는 지난 4월1일 열린 국민연금 개편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대폭 올리고 지급액은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소득대체율 60%를 유지하고 보험료를 19.85%로 인상하는 방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하하고 보험료는 15.85%로 인상하는 방안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되 보험료는 11.85%로 인상하는 방안 등 3가지 대안이 검토됐다. 5월 말에 보건복지부에 보고될 예정이며, 최종안은 두 번째인 소득대체율 50%, 보험료 15.85%가 유력하다.국민연금은 크게 부과식(pay-as-you-go system)과 적립식(pre-funding system)으로 나뉜다. 부과식은 현세대의 사회복지비를 차세대가 떠안고, 차세대는 그 다음 세대에 전가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반면 적립식은 저축의 한 형태일 뿐이다. 자신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일정 부분을 강제 보험금으로 내고 나중에 되돌려받는 방식이다.한국의 국민연금은 이 두 가지 방식을 혼합했다. 연금지급액이 과거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다는 점에서 ‘적립식’에 해당된다. 그러나 초기가입자들이 과도할 만큼 많은 혜택을 받고 다음 세대가 이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부과식이다. 지나친 혜택은 차세대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국민연금제도가 탄생한 88년은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인 3저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칠 정도로 방만하게 만들어졌다. 당시 정치가들의 선심성 복지행정이 벌써부터 후대의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국민연금을 도입한 지 15년 만에 제도를 전면 손질해야 할 정도로 취약한 것은 분명히 첫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방증이다. 제도 개편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쪽에서는 국민연금 100조원을 자축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부담을 더욱 늘리는 쪽으로 연금제도를 바꿔야 하는 운명은 분명 아이러니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