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보관용기·목욕용품·물통 등 플라스틱 용품에만 30년 한우물… 수출 600만달러 포함 올 550억원 매출목표

기능성 밀폐용기 ‘바이오킵스’로 제2의 ‘바이오탱크’ 신화를 만들겠다.서울 디지털산업단지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는 코멕스산업의 구자일 회장(62)은 지난 3월 내놓은 기능성 밀폐용기 바이오킵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구회장은 항상 바이오킵스를 갖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 91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쳤던 물통 바이오탱크의 뒤를 이어 회사의 주력상품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바이오킵스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식품보관용기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구회장은 “이 제품은 지난 5년간 연구를 통해 개발한 것으로 식품의 제 맛을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코멕스산업은 식품보관용기, 목욕용품, 물통 등의 플라스틱 용품에 30년 넘게 매달려 왔다. 그동안 700여 종류의 제품을 모두 자체기술로 개발했을 정도로 기술력을 자랑한다. 이 분야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정통성을 갖고 있는 회사다. 해외 30여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코멕스산업의 성장에는 포기하지 않는 구회장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구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68년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입사 1년도 안돼 큰일을 냈다. 사내 101명의 영업사원 중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린 것. 연간 영업실적 ‘베스트1’ 자리에 8~9번이 구회장 차지였다. “당시 월급은 능력급으로 받았는데 영업부장보다 두 배 정도 더 받았어요.”구회장은 60여개의 약국을 맡아 영업을 했다. 처음 5~6개월은 눈빛도 주지 않는 약사들을 대하면서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대했다. 차츰 약사들의 가슴이 열리면서 거래처도 하나둘 늘어갔다. 그는 “진심과 지구력이 영업의 성공요인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제약업계에서 최고의 영업맨으로 주가를 올리던 71년 구회장은 사업을 하겠다며 뛰쳐나온다. 주변에서는 “왜 그러느냐”며 말리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당시 약국에서 판매되던 젖병이 너무 조악하다고 여긴 구회장은 아무도 흉내를 못내는 품질의 젖병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정작 사업을 하겠다고 나왔지만 월세방에서 생활하는 처지여서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제약회사 시절 상사였던 분이 빌려준 15만원이 아니었으면 사업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그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밑천으로 서울 상도동 단독주택의 차고를 임대해 직원 4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구회장의 사업방식은 다소 도전적이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의약품 영업을 하면서 체득한 것이다.사업계획서를 들고 대한페인트잉크(현 디피아이)를 무작정 찾아갔다. “담당자에게 설명도 못해 보고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그는 이 회사의 담당자인 임원의 자택으로 매일 찾아갔다. 3개월쯤 지나자 담당자가 미동을 했다.이렇게 해서 구회장은 대한페인트잉크로부터 금형과 젖병 등 300여만원어치를 지원받았다. 생산된 제품을 창고로 가져와 조립하고 약국을 대상으로 영업에 나섰다. 기존 제품보다 두 배 비싼 70원에 팔았는데 인기가 폭발적이었다.“예상외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24시간 가동해도 주문물량을 다 공급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73년부터는 직원도 20여명으로 늘었고, 공장도 마련해 젖꼭지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승승장구하고 있던 74년 초 믿었던 상무가 당시 3개월치 매출액인 1,500만원을 갖고 도망친 사건이 생겼다. 그후 5년여간 지인에게 운영자금을 빌려 연명해 갔다. 79년 다시 유아용품업체인 아가방에 젖병, 유축기, 놀이개 젖꼭지 등을 공급하면서 성장세를 탔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었다.구회장은 84년 최대의 시련을 겪는다. 회사가 문닫을 위기에 처한 것. 대전의 잡화도매상인 문화상사로부터 5,000만원 넘게 부도를 맞았다. 당시 연간 매출이 7,000만원을 조금 넘길 때였다.“물건값 달라고 채권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한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친구집을 전전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구회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채권자를 찾아다녔다. 목숨을 걸고 빚을 갚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한 달쯤 지나자 채권자들이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구회장은 자신부터 구조조정했다. 월세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구두는 구멍나 빗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직원수도 30명에서 4명으로 줄였다.고진감래였다. 구회장에게는 늘 기회가 따라붙었다. 당시 분유업체들의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젖병 공급이 늘었다. 분유업체들은 회사명을 새긴 젖병을 산부인과에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새벽 2~3시까지 작업하면서 안 먹고, 안 쓰고 해 87년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이후 밀폐용기, 물병, 쓰레기통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공장도 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로 확장 이전했다. 구회장은 91년 식수전용물통 ‘바이오탱크’를 출시하면서 최고의 해를 이어갔다.이 제품은 매월 10억~1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효자상품이 됐다. “약수터에 갔더니 화공약품통을 들고 물을 담아가려 하더군요. 제대로 된 물통을 만들 작정으로 1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구회장은 5년 동안 이 제품에만 120억원이라는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부었다. 당시 ‘석유통은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최고의 인기 광고카피였다. 구회장이 94년 내놓은 ‘코멕스 고무장갑’도 출시하자마자 히트상품이 됐다. 주부습진을 방지할 수 있는 항균기능을 넣어 주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사세가 커지면서 구회장은 김포공장, 가산동공장, 당진공장 등을 잇달아 마련하고 최신설비로 교체했다.구회장은 지난 3월 출시한 기능성 밀폐용기 ‘바이오킵스’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보관기능과 식품의 신선도 유지 기능이 뛰어난 이 제품을 코멕스산업의 차세대 리딩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이 제품은 벌써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구회장은 “6월 말부터 독일의 홈쇼핑TV 2곳에서 동시에 방영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샘플테스트 중인 미국, 일본의 바이어들이 독점판매권을 요청해 오고 있어 수출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코멕스산업은 올해 수출 600만달러를 포함해 5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소비자가 요구하면 구입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고 있습니다.” (02-839-7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