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2한ㆍ일월드컵’. 그라운드를 누비던 태극전사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속에 또렷하고, 붉은 악마의 응원전 또한 귓가에서 생생하다. 위용을 자랑하며 한민족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던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붉은 물결또한 잊을 수가 없다.이후 1년이 지났다. 월드컵이 끝나고 국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프로축구경기장이 썰렁할 정도로 축구열기도 많이 식었다. 하지만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히려 지난해 월드컵 때보다 더 복잡해졌다. 평일 이곳을 찾는 사람이 5만여명에 달하고 주말에는 10만명을 훌쩍 넘는다. 월드컵 때를 웃도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다시 각광받게 된 이유는 지난 5월 말, 사무실과 창고로 쓰였던 관중석 아래 1~2층에 개장한 복합쇼핑몰 때문이다. 강북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복합쇼핑몰에 가족단위의 인파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주변 공원에는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즐기려는 신세대들의 발길도 이어져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차량 3,600여대를 댈 수 있는 초대형 야외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에는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주차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서울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한 셈이다.복합쇼핑몰이 문을 연 것은 지난 5월23일. 2002년 월드컵 개막과 동시에 서울시 차원에서 전담팀을 만들어 1년여 동안 준비해 온 결과였다. 지난해 월드컵이 끝날 무렵 입주업체가 결정됐다. 준비과정에서 전문컨설팅업체의 자문을 받았고,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책임을 지고 일을 추진했다.물론 처음에는 성공가능성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축구경기장을 복합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데다 새로운 실험이었던 만큼 일단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서울시 역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서울시 시설관리공단과 입주업체 관계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데다 새로운 서울의 쇼핑ㆍ레저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최준원 부장은 “주변 환경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구성을 한 것이 주효했다”며 “오는 8월에 문을 열 예정인 사우나장과 수영장을 갖춘 스포츠센터 등이 들어서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복합쇼핑몰의 가장 큰 장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일단 몸만 오면 모든 것을 경기장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2만2,300여평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얼핏 보면 작은 도시 하나가 경기장 안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특히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까르푸 직영 할인점(1만4,000평)은 유명 유아복, 캐주얼, 숙녀복, 스포츠용품 브랜드 등 109개 매장이 입주해 손님을 반긴다. 더욱이 원목스타일의 바닥재 등을 사용해 품격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한 백화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까르푸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아시아 최고 수준의 할인점을 목표로 만들었고, 운영도 여기에 맞춰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장이 직접 이곳으로 출근할 정도로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매출 역시 기대 이상이다”고 말했다.서울 성산동에 산다는 여고생 이인숙양(17)은 “월드컵경기장 내 할인점은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는데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며 “요즘 여기 한 번 왔다가지 않은 친구들은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아시아 최고 수준 할인점 입주경기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관의 시설과 규모도 가히 매머드급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극장체인망을 자랑하는 CGV가 운영을 맡고 있는 영화관은 10개 상영관에 1,800석이 마련돼 있다.이 가운데 골드클래스룸은 호텔을 보는 듯한 호화로운 장식에다 널찍한 공간으로 경기장 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손님들을 위한 별도 라운지가 있으며 좌석은 비행기 1등석 수준을 자랑한다. 관람료도 특별해 평일에는 2만5,000원, 주말에는 3만원을 받는다.450석 규모의 고급 예식장과 2,000석짜리 초대형 연회장도 눈길을 끈다. 예식장의 경우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주변 경관이 뛰어난데다 주차공간이 넓어 문의전화가 쇄도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연회장은 규모 면에서 서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커서 눈길을 끈다. 여기에다 피자헛, 롯데리아, 나뚜루, 스타벅스 등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 전문매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청소년 고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약국과 내과, 치과 등 각종 의료시설도 있다.주변지역과의 시너지 효과도 매우 뛰어나다. 월드컵경기장을 정점으로 월드컵공원을 비롯해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등 무려 5개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타운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한강변이라 시원한 느낌이 절로 들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다.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각종 시설물과 자연경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까닭이다. 예컨대 쇼핑을 끝낸 다음 가족들과 함께 공원으로 넘어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이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교통 역시 서울의 다른 복합쇼핑몰보다 뛰어난 편이다. 우선 지하철 6호선이 경기장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굳이 자동차를 갖고 나오지 않아도 접근하는 데 무리가 없다. 강변북로와 내부순환도로가 주변을 지나는 점도 이점이다. 외곽지역에서 들어오기에 편해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오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 다만 주말에는 길이 많이 막힌다는 점이 부담스럽다.앞으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또 한 번 변신을 한다. 이미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준비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주변 광장에 다양한 시설을 유치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먼저 북측광장에는 인라인스케이트 전용도로와 인라인 하키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남쪽 출입구 앞과 넓은 통로에는 호프광장이 조성되고, 광장 서쪽은 이벤트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진다. 이밖에 관광객을 위해 경기장 주변에는 월드컵 기념물을 파는 전문점과 사진촬영 공간, 잔디체험 장소 등도 마련된다.사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청소년들이 이용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더욱이 레저와 먹거리가 함께 갖추어진 곳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 했으면 이들이 갈 곳이 없어 방황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런 면에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새로운 대안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주말에 서울 인근 교외로 빠져나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비용 역시 만만치 않게 든다. 여건상 가족이 함께 나가기에 쉽지 않았던 것이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가볍게 야외나들이를 나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는 평가 속에 40~50대의 기성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