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율 37%까지 늘어
다주택자 규제 강화가 원인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월세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경제신문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월세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경제신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계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8년 34.9%, 2019년 35.3%, 2020년 35.8%, 2021년 37.0%까지 높아졌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임대차 계약만 놓고 보면 전세 제도는 임차인, 즉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예를 들어 5억원짜리 집을 2년간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3억원 정도의 전세 보증금만 맡겨 놓으면 된다. 그러면 집값과의 차액 2억원은 임대인이 부담하고 거기에 각종 세금과 집수리도 임대인이 부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월세가 아니라 전세로 임대차 계약을 하는 이유는 지렛대 효과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매가와 전셋값의 차액 2억원만 가지고 3억원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5억원짜리 집에 대한 상승분은 모두 집주인의 몫이 된다. 결국 전세라는 제도는 집값 상승이 전제되는 제도다. 집값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전세로 계약하려는 집주인이 줄어들게 된다.

2012년과 2013년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하락하니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집주인들도 추가로 집을 사기보다 그 자금으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임대 시장에 전세 공급이 줄어들고 월세로 전환하는 계약이 늘면서 통계상으로도 급격히 월세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15년과 2016년에도 월세 비율은 더 높아졌다. 그것은 임대인이 과거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2012~2014년도 시장이 시원하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하락기에는) 자선 사업에 불과한 전세보다 한 푼이라도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세 제도는 화려하게 부활해 2017년부터 전세 비율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기에는 월세를 받는 것보다 전세를 끼고 집을 한 채라도 더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집주인들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월세 시대’ 앞당긴 부동산 대책
그러면 최근 다시 월세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은 예전과 같이 집주인들이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임대 수익이나 거두자고 판단해서일까. 최근의 현상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첫째, 현 정부 들어 다주택자에 대한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7·10 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가 강화됐다. 12.4~13.4%에 달하는 취득세를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어들자 시장에 전세를 공급하는 사람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예전 같으면 집을 살 용도의 자금으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에 자금을 넣어 두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것이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둘째,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 등 보유세가 강화됨에 따라 세금을 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의 의도는 다주택자를 압박해 집을 팔도록 하기 위해 세금 폭탄을 퍼부은 것이지만 다주택자들은 그 집을 팔면 다시 살 수 없다고 판단해 월세로 전환하면서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세금이 오른 만큼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7·10 부동산 대책으로 신설된 전세보증보험의 영향도 있다. 집값에 비해 전세금이 너무 높은 소위 깡통 전세가 난무하자 정부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세금 반환 보증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현재 적용 대상은 신규 등록 임대 사업자이지만 기존 등록 임대 사업자도 2021년 8월 18일 이후 계약분부터 의무 가입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2000만원의 벌금이나 최장 2년의 징역에 처한다.

그런데 이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피하기 위해서는 임대 보증금을 집값의 60% 이하로 유지하면 된다. 문제는 집값이 실거래가나 현 시세가 아니라 감정가나 공시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세금이 그 집 기준 시가의 60% 이하여야 전세보증보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 2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집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64.8%(아파트는 69.0%)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전세는 전세보증보험 대상이라는 뜻이다.

전세 계약에서 임대인은 실질적인 현금 수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세금에다 매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공시가의 60% 이하로 낮추고 나머지는 월세로 전환하면 된다. 결국 이런 전세보증보험 제도 때문에 시장에서 전세가 점점 사라지고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것이다.
전세 대출 규제도 ‘전세의 월세화’ 부추겨
최근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원인 중에는 임차인, 다시 말해 세입자의 필요에 의한 것도 있다.

첫째, 최근의 집값 상승은 다주택자로 대표되는 투자자에 의한 상승이라기보다 실수요자에 의해 주도되는 시장이고 그 중심에 30대가 있다. 그런데 과거보다 소득이 높은 30대라고 해도 높은 집값을 쉽게 부담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신용 대출이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까지 쏟아붓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월세로 사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전에는 적었던 월세 수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둘째, 전세 자금 대출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2020년 6·17 부동산 대책에 따라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 3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전세 자금 대출이 금지됐다. 또한 기존에 전세 자금 대출이 있어도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 3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취득하면 전세 자금은 즉시 회수된다. 정부의 의도는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아파트 수요를 줄이려는 것이지만 시장에서는 전세 자금을 회수당한 사람이 월세 시장을 기웃거리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대 초·중반에 아파트 임대 시장에서 월세 비율이 높아졌던 것은 시장 참여자 특히 전세 공급자라고 할 수 있는 다주택자의 의사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고 하면 최근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현상은 정부의 규제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021년 임대 시장에서의 월세 비율은 2020년에 비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임차인, 즉 세입자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