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도 사전제작시스템에 의한 첫 작품이 선보인다. 극단 동숭아트센터에서 준비하는 <이발사 박봉구 designtimesp=22239>가 그것. 사전제작시스템이란,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컨셉과 소재 선정, 스태프 구성 및 출연배우 캐스팅에 이르는 전반적인 제작과정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폭넓은 검토와 지원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무엇보다 관객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재미는 물론 완성도까지 담아 낼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다.연출자 최우진과 극작가 고선웅은 이미 <락희맨쇼 designtimesp=22244>에서 손발을 맞추면서 연극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주연 정은표는 1996년 연극 <어머니 designtimesp=22247>로 동숭아트센터와 인연을 맺은 바 있으며 <춘풍의 처 designtimesp=22248>, <태 designtimesp=22249>, <비언소 designtimesp=22250>, <늙은 도둑 이야기 designtimesp=22251>와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 또 연극 <백마강 달밤에 designtimesp=22252>로 95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연극 <비닐하우스 designtimesp=22253>로 95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실력 있는 연극배우다.영화 <행복한 장의사 designtimesp=22256>나 드라마를 통해서 낯을 익힌 배우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2001년도에는 영화 <킬리만자로 designtimesp=22257>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걸었다.이발사 박봉구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훈훈하고 소박했던 인간미의 상실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한 작품. 잊어버리는 사람들과 그로 인하여 잊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단지 한 가지 꿈을 이루고자 온 힘을 다했던 한 인간이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로 이발소란 공간이 이런 것들을 함의하고 있다. 정겨운 정서를 그리워할 뿐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박봉구는 어릴 적부터 이발사를 꿈꾼다. 17세 때 손으로 하는 일을 무시하는 수학선생과 몸싸움을 벌이던 중 선생이 든 가위를 빼앗으려다 우발적으로 선생님을 찌른다. 이 일로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11년을 복역한다.그의 꿈은 여전히 이발사다. 출소한 후 교도소장의 소개로 미희이용원에 취직한다. 이발소가 예전처럼 머리를 자르기보다는 퇴폐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박봉구는 퇴폐이발소를 인수하여 모범이발소로 만든다.그는 최고의 이발회사를 세울 꿈에 부푼다. 그러나 동네 어귀의 그러저러한 이발소처럼 이곳에도 손님이 들지 않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박봉구는 어쩔 수 없이 퇴폐이발소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대기업회장의 전용이발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박봉구는 다시 용기를 찾는다. 하지만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 박봉구의 꿈은 사라진다. 박봉구 역시 세상에서 사라진다.“삐삐는 핸드폰에 밀려 사라지듯, 옛날 것은 새것에 망가진다. 사물이야 문명이야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사람은…. 기계는 없어져도 되는데, 사람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기계나 사람이나 흐름을 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마저 그렇게 도태되는 것이 당연해서는 안 되는데, 디지털 시대라고 시효 지난 컴퓨터처럼 사람도 싸잡아서 퇴출돼서는 안 되는데…”.작가 고선웅의 얘기 속에서 이 연극이 주고자 한 메시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