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자회사 매각돼도 송·배전은 독점유지…국제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

국내 최대의 공기업 한국전력공사가 <2002년 한국 100대 기업>에서 2위로 선정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51조원의 자산규모를 자랑하는 한전은 지난해 20조원의 매출과 1조8,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경영실적이다.이같은 우수한 경영성과를 이뤄낸 데는 한전 직원들의 뛰어난 능력이 뒷받침됐다. 전력공급의 핵심기술이랄 수 있는 송·배전 손실률(가정에 공급되는 전기가 끊기는 경우)은 4.5%로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보다 작다. 직원 1인당 판매전력량을 보면 한전이 연간 887만kWh(2000년 기준)로 미국(794만kWh)이나 일본(589만kWh)보다 높다.경영안정성의 대표적 지표인 부채비율은 최근 3년 동안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99년 111%였던 부채비율이 2000년 102%로 그리고 지난해 54%로 대폭 축소됐다. 이는 발전 자회사 분리와 인력 구조조정 등에 따른 결과다.한전은 최근 중요한 변화를 맞고 있다. 전력 공급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송전과 변전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이 민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전의 상징이랄 수 있는 발전소는 이미 지난해 6개 발전 자회사로 분리돼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또 2004년부터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각 가정에 공급하는 배전 시설도 분리, 2008년까지 완전 민영화할 계획이다. 전기를 하나의 상품으로 비유하면 한전은 도매상이 되는 셈이다.국내 최대의 공기업이 초유의 변화를 겪고 있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한전의 자금 능력으로는 앞으로 세울 발전소의 건설 자금을 댈 수 없다는 정부의 판단에서다. 원자력 발전소 1기를 세우는데 들어가는 자금은 2조원, 수력발전소는 1조원이 소요된다.한전의 발전설비와 발전량이 해마다 13%씩 성장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천문학적인 발전소 설립 자금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채가 늘어날 것이 뻔한데 굳이 한전을 공기업 형태로 유지,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 정부측 논리다.올해안 수력발전소만 매각 계획한전의 민영화 계획은 한전의 신용등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한전은 국가의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따라서 같이 올라갔다. 그러나 민영화 계획이 발표된 이후, 한전은 민간기업처럼 한전의 수익성과 미래 전망에 따라 신용등급이 매겨진다.실제 한전의 국제적 신용평가 등급(무디스는 Baa3, S&P는 BBB)은 국가신용등급과 1∼3단계 벌어져 있다.최근 무디스와 S&P가 한전을 방문, 한전에 새로운 평가등급을 매길 전망이다. 과거 한전이 받은 등급은 투자적격에 속하지만, 장기적 불안한 요인이 반영돼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그러나 이번 신용평가사들의 실사 뒤 한전의 등급은 높아질 전망이다. 민영화가 완결돼도 한전의 사업영역인 송전과 변전 그리고 배전은 독점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수익이 줄어들 위험이 적다는 점과 발전소 건설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할 필요가 없어 한전의 재무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점이 평가등급 상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에서다. 어쨌든 한전은 이제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점은 확실해 보인다.한전의 민영화 계획은 이렇다. 우선 지난해 발전부분을 1개 원자력발전소와 5개 수력발전소로 분리했다. 이중 원자력발전소는 민간에 매각하지 않는다. 수력발전소만 매각할 계획인데, 산업자원부는 올 상반기 주간사를 선정하고 연내 1곳을 매각키로 했다.발전소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포철, SK, LG 등이며, 해외업체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조원의 인수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외국 업체가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전기를 최종 가정에 공급하는 배전 부문은 2004년부터 한전에서 분리된다. 경쟁체제를 도입해 전력을 직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2008년까지 각 배전회사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독점권이 허용된다.그러나 2009년 이후엔 독점권이 사라지고, 전력 판매회사간 경쟁체제가 도입되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발전소와 배전소가 여러 개 있다보면 가격과 품질을 놓고 경쟁을 벌일 것이고, 소비자들은 좀더 나은 조건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사실 배전 부문까지 민영화한다는 계획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한전측은 “아직 어느 나라도 실험한 적이 없는 계획이어서 지금 당장 한전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힘들다”라고 말했다.한전이 전력사업 구조개편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직의 화합과 경영혁신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CEO 탐구 강동석 사장추진력·조직 장악력 뛰어난 ‘탱크 CEO’“국내 최대 단일 프로젝트인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마무리하면서 보여준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한전의 전력산업구조개편에도 적용될 것.”최근 정부가 한국전력의 대표이사로 강동석(65)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내정하면서 밝힌 이유다. 최수병 전 한전사장은 퇴임 3개월을 앞두고 사표를 냈다. 발전노조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것이 사표의 변.이에 따라 정부는 강사장을 차기 한전의 선장으로 임명했다. 강사장은 인천공항공사 사장에서 퇴임한 뒤 불과 2개월만에 화려하게 복귀한 셈이다.강사장은 지난 94년 인천공항공사 전신인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뒤 8년 가까이 공항 건설과 운영을 맡았다. 그동안 그가 공항 건설과 개항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서류만 해도 20∼30상자나 된다.“이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국가 대형사업의 참고용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힌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꼼꼼히 일을 챙겼는지 가늠할 수 있다.이런 점이 앞으로 그가 불투명한 한전의 미래를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강사장의 임명을 두고 한전 내부에서는 ‘외풍을 막아줄 수 있을 것’ 이라는 긍정적 반응과 ‘구태의연한 낙하산 인사의 전형’ 이라는 부정적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엇갈린 반응속에서도 그는 2009년까지 예정돼 있는 한전의 민영화 계획을 실행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그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서 퇴임한 뒤 조용히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퇴임 한 달여만에 다시 복잡한 세상으로 되돌아 왔다. 일을 좋아하는 그에게 이는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