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일본에서 누리는 인기는 뜨겁고 탄탄하다. 이치로등 걸출한 스타들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로 지난해부터 관중확보에 구멍이 뚫린데다 올해는 한·일 월드컵까지 겹쳐 구단마다 냉가슴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프로야구는 대중스포츠 중 최고 인기종목으로 꼽힌다.공영방송인 NHK뿐 아니라 상당수 민영방송들도 저녁 시간대면 각지에서 열리는 야구 중계에 어김없이 채널을 할애하고, 시청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경기 화면에 눈을 빼앗긴다. 올해는 특히 만년 꼴찌에 머물던 오사카 본거지의 한신타이거즈가 맹분발하며 센트럴 리그 수위를 달리고 있어 ‘타이거즈 경제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든든한 시장 기반을 갖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를 입에 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돔(Dome)구장이다.사계절 전천후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지붕을 덮어 만든 돔 구장은 일본 프로야구의 은근한 자랑거리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 야구계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무리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걱정 없이 선수들이 치고 달리고 던질 수 있는 돔 구장이야말로 관중과 선수의 상설 축제 공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그런데 도쿄 돔을 비롯한 일본의 일부 돔 구장들이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수입감소로 인한 경영난이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어서다. 돔 구장들 사이에서는 본거지 팀 유치를 둘러싼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으며 “이러다간 큰 코 다치지 않겠느냐”는 위기의식마저 소리없이 확산되고 있다돔 구장 중에서도 가장 곤경을 겪고 있는 대표적 존재는 도쿄 돔이다. ‘빅 에그(Big Egg)’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도쿄 돔은 일본 돔 구장들의 상징적 존재로 군림해 왔다.일본 최초의 돔 구장 기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최고 인기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본거지 구장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린 것이 사실이었다. 흰 지붕으로 덮힌 높이 60미터의 거대한 건물이 도심에 우뚝 버티고 선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황실 소유의 대규모 식물원이 지척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명문 도쿄대까지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에 있어 주위 환경과 지리적 잇점까지 은근한 자랑거리로 작용했다.오사카 돔, 나고야 돔, 후쿠오카 돔등 나중에 지어진 돔들 중 더 규모가 크고 으리으리한 구장이 많았어도 대중적 인기는 도쿄 돔을 따를 곳이 없었다.그러나 도쿄 돔은 최근 이중 악재에 휘말려 과거의 위상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도쿄 돔을 덮친 두 가지 역풍은 입장객 감소로 인한 수입차질과 또 하나의 본거지 구단(홈팀)인 니혼 햄의 삿포로 이전 움직임이다.도쿄돔, 입장객 감소로 2년 연속 적자 행진도쿄 돔은 지난 3월부터 사장의 월급을 전액 반납하는 한편 다른 임원들의 보수를 대폭 깎는 초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지난 1월로 끝난 2001 회계연도 결산에서 12억엔의 적자를 내 2년 연속 적자경영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월급 삭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3년 동안 직원 숫자를 10% 줄이겠다고 발표해 임직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도쿄 돔의 딱한 사정은 입장객 수 변화로 쉽게 알 수 있다. 돔 구장이 문을 연 지난 1988년의 경우 입장객수는 621만8,000명에 달했었다. 그 후 다소 줄기는 했어도 90년대 전반까지 매년 550만명 이상의 입장객이 도쿄 돔을 찾았었다.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500만명을 겨우 턱걸이할 정도로 입장객 수가 격감했다. 급기야 2001년은 428만명에 그쳐 개장 첫해의 70%에도 못 미쳤다.도쿄 돔과 구단 관계자들은 근본 원인으로 니혼 햄의 부진한 성적을 지적하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도쿄 돔을 본거지 구장으로 쓰는 상황에서 요미우리가 아무리 팬들을 끌어 들여도 니혼 햄이 시합을 갖는 날은 관중석이 텅 빌 때가 허다했다는 분석이다.이렇다 할 스타 선수를 갖고 있지 못한 니혼 햄은 실제로 퍼시픽 리그 6개팀중 거의 매년 바닥을 길 정도로 만년 하위를 면치 못해 왔다. 홈팀 중의 하나가 꼴찌를 도맡아 놓고 해도 구장 측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라운드를 빌려 주고 사용료와 입장 수입중 일부를 챙겨 받는 입장에서 구단 성적에 간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이지만 도쿄 돔은 니혼 햄이 본거지 구장을 삿포로로 옮길 움직임을 보이자 더 끙끙 앓고 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아도 남아 있는 편이 수입에 당장 보탬이 된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다.니혼 햄은 연간 60 게임을 도쿄 돔에서 갖고 있다. 도쿄 돔은 시설사용료와 입장료 수입 분배 명목으로 해마다 수십억엔의 수입을 니혼 햄으로부터 받는다. 아직 정식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니혼 햄이 빠져 나가면 수입에 상당한 구멍이 뚫릴 것은 뻔한 이치다.니혼 햄의 삿포로 이전은 삿포로에 프로야구 홈팀이 없다는 점등에 비추어 볼 때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단 역시 작년 6월에 완공한 초현대식의 삿포로 돔을 환대 받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데다 야구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삿포로 팬들로부터도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삿포로구장의 대주주중 하나인 삿포로시는 월드컵축구에 대비해 거액(약4,500억원)을 들여 지은 돔 구장을 연중 가동할 수 있어 니혼 햄이 싫지 않은 눈치다. 삿포로 돔은 프로야구 시합을 치를 경우 기본 사용료로 입장객 4만명까지 1,600만엔, 3만명까지는 1,200만엔, 2만명까지 800만엔을 받는다.구단이 연간 70게임만 치러 주고 매시합마다 2만명씩만 찾아와 준다 해도 5억6,000만엔의 수입이 굴러 들어오게 된다. 초기 감가상각 부담과 가동률 제고에 고민하는 삿포로시측에서 본다면 귀한 손님을 맞게 되는 셈이다.입장객 감소와 홈팀의 이탈 움직임으로 더블 펀치를 맞게 된 도쿄 돔은 수입확대를 위한 아이디어 짜내기에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영국 전통공예인 퀼트전시회를 지난 1월 개최한데 이어 난 전시회, 테이블 웨어 페스티벌등 돈이 될만한 행사는 가리지 않고 유치하고 있다.콘서트 장소로도 빌려 주는 것은 물론 축구등 야구 이외 다른 종목에도 구장을 개방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3월 3억6,000만엔을 투입해 미국산 최신 인공잔디를 도입한 것이 이같은 포석을 뒷받침한다.구장측은 “프로축구 공식전은 몰라도 오픈전등은 충분히 도쿄 돔에서 치를 수 있다”며 다른 스포츠들에도 섭외의 손길을 적극 뻗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경영난 타개를 위한 판촉 공세로 주목을 끌고 있는 또 하나의 구장은 후쿠오카 돔이다. 다이에 호크스의 본거지 구장인 후쿠오카 돔은 모기업 다이에가 자금난에 몰리면서 도산 직전의 위기에 놓임에 따라 끊임없이 매각설에 시달려 왔다.후쿠오카 돔은 그러나 홈팀 다이에 호크스의 흥행권을 사들여 관객동원의 리스크를 직접 안는 방식으로 시련을 정면 돌파, 눈길을 끌고 있다. 구단은 야구에만 신경을 쓰고 돔 구장을 경영하는 회사가 흥행을 맡는 것이 리스크는 커도 오히려 영업에 자극제가 돼 일하기 더 편하다는 이유다.후쿠오카 돔이 내놓은 이색적인 아이디어의 하나는 인근 아시아 국가의 야구팬을 겨냥한 판촉 행사다. 후쿠오카 돔은 작년부터 대만의 보험회사 판매사원들을 단체로 받아 들여 의외의 재미를 보고 있다.포상 여행에 나선 사원들을 돔 구장으로 유치, 야구를 관전케 하는 한편 부대 시설에서 대규모 파티를 열 수 있게 해 박수를 받고 있다. 포상 여행에 참가하는 사원들은 한번에 1천명에서 최대 4천명까지 달해 구장 수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게 구장측 고백이다.yangsd@ hankyung.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