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로 경영할 수는 없지만 납득할 수 있게 정보 제공하고 참여시켜야

[경영 전략]
공개가 소통의 첫걸음…대기업 성과급 논란이 남긴 것
유튜브의 영향으로 1인 미디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다양한 직업을 가지는 이른바 ‘N잡러’가 대세인데 이들에게 ‘유튜버’는 기본 옵션처럼 인식되는 추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명 유튜버의 한 달 수입이 엄청나다는 사실이 전해지는 등 경제력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유튜브를 하는 게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클럽하우스’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보면서다. 경제적 이득이 없음에도 ‘초대장’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 클럽하우스의 인기는 자기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생각을 밝히고 이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욕구, 결국 소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통에 목마른 지금 조직에서의 소통은 어떨까. 소통하는 조직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알아보자.

일방적인 지시는 반발을 일으킨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 ‘성과급’ 논란이 있었다. ‘왜 성과급을 안 주나요’가 아니다. ‘왜 이것밖에 안 되나요’가 화두가 됐다. 돈을 ‘주고도’ 욕을 먹는 이상한 현상인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기업이 구성원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소통을 위해 공개해야 할 첫째는 정보다.

성과급에 대한 반발은 구성원들이 ‘왜’ 이만큼을 받았는지에 대한 근거를 몰라서 생긴 일이다. 본인은 충분히 일하고 성과를 낸 것 같은데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겨서다.

형평성의 문제도 있다. 비슷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는 다른 회사나 구성원이 받는 액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고 여기기 때문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성원들의 주장만 설명하면 경영자로서는 억울하다. 그건 ‘경영권’ 아니냐고 항변한다. 이해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인사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이자 권리니까 말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성과급이나 보상을 ‘민주주의’에 따라 다수결로 정하자는 게 아니다. 결정 과정을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정보를 주고 과정에 참여시키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보자. 회사에서 영업 조직의 판촉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내부에서 논의를 거쳐 영업점에 지침을 내린다.

“다음달부터는 기존의 A 상품 말고 B 상품에 대한 판촉을 늘리도록 하세요.”

전달은 쉽다. 하지만 이런 지시를 실행에 옮겨야 하는 구성원들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본인의 실적 계산식이 통째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A 상품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다음달 영업 계획을 다 세워 뒀는데 갑자기 방향이 바뀌면 현장에서 느끼는 충격은 엄청나다. 그래서 이런 지시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면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정보 오픈’이 필요하다.

결정되지 않았고 논의 중인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선에서 구성원들에게 알리라는 의미다.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조직에서 주력 상품군의 변화에 대해 논의 중’이라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잊지 말자. 소통의 시작은 일단 ‘정보’를 여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게 하지 말자

조직이 구성원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공지 메일을 보내는 게 제일 간단하다. 공청회 등을 통해 무게감을 줄 수도 있다. 집단이 크지 않다면 회의를 통해 설명하거나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공유된 정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반응을 ‘듣는’ 것이다. 그래서 소통을 위해 열어야 할 둘째는 ‘마음’이다. 리더의 생각이 조직의 방향성과 다를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요즘 직원들이 말이 많으니 들어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요즘 세상이 그래서’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시대다. 다시 말해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이때 필요한 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말로 ‘열린 마음’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기 마련이다. 혹시 이 말이 상대의 생각에 자기가 동의하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된다면 “그런가”라는 더 짧은 한마디라도 괜찮다.

구성원의 말을 듣는 리더의 한마디가 있어야 다른 의견을 하나라도 말할 수 있다. 리더 혹은 조직의 방향과 다른 생각을 말했을 때 소위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게 하지 말자. 혹은 말해 봐야 듣지도 않을 것이라는 체념을 갖는 더 슬픈 상황을 만들지도 말자.

‘이미 방향이 정해진 것인데 굳이 들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게 중요한 이유는 수평 폭력을 막기 위해서다.

수평 폭력은 쉽게 말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쌓인 화는 언젠가는 터진다는 뜻이다.

조직이 구성원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결국 쌓인다. 이는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조직 내 소통 창구가 막히면 개인들은 그걸 뚫기 위해 밖으로 간다.

너무 접근이 쉬운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 앱을 통할 수도 있고 자기가 직접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리더는 ‘듣기’를 통해 구성원의 막힌 혈을 뚫어 줘야 한다.

물론 마음을 열고 듣는 것은 피곤하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그것을 수습하는 게 몇 배 더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서 소통을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읽은 리더라면 화가 날 수도 있다. 자신도 바쁘고 힘든데 대체 언제 소통하느냐는 답답한 마음도 들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열어야 하는 게 ‘입’이다.

리더로서 할 말은 해야 한다. 구성원들도 리더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평가자인 리더가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더의 말이 안타깝게도 구성원의 ‘귓전’에서 튕길 때가 많다. 리더가 ‘듣고 싶지 않게’ 말을 해서다. 혹은 ‘들으나마나’한 얘기만 늘어놓아서다. 소통을 위해 입을 열려면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훈계하거나 가르치려고 들지 말라는 것이다. 구성원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면 언짢을 수 있다. 그러면 그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가 발동한다.

문제는 그게 듣는 사람에게도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지시가 아니라 요청이다. “이렇게 하라”는 지시다. “이렇게 하면 이런 부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요청이다. 듣는 쪽에선 어떤 표현이 더 듣고 싶을까. 당연히 후자다.

다른 하나는 구체성이다. 실제 구성원이 행동할 수 있게끔 가이드를 해줄 필요가 있다.
“열심히 좀 해 봐”는 소통이 아니다. “이런 툴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게 소통이다.

“지난 회의 때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명확히 얘기해야 이해한다. 그래야 들으나마나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통의 시대다. 조직, 그리고 리더는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언제 어디까지 줄 것인지 정하자. 알아야 오해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다른 의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충분히 듣자. 듣는다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니까. 도우려는 의도로 구체적으로 요청하자. 그래야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니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통은 절대 ‘행사’가 아니다.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돼야 한다. 소통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