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 손실 보상 등 기존 재보험·손보사 직격탄...디지털·AI 활용 인슈어테크 기업은 약진

[글로벌 현장]
재택근무 보험·배달음식점 보험…코로나19가 바꾼 보험 산업
지난해 말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의 뮌헨리는 2020년 재보험 부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보험 손실이 34억 유로(약 4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뮌헨리는 2020년 그룹의 순이익 전망치를 2019년 27억 유로(약 3조6000억원)에서 대폭 내린 12억 유로(약 1조6000억원)로 수정했다. 이는 각종 행사나 여행 등의 취소에 따른 보험금 청구, 기업휴지보험, 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의 보험 손실 발생을 예상한 것이다.

기업휴지보험은 전염병 등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해 사업을 중단했을 때 기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상비를 지급하고 더 나아가 기업을 계속 운영했다면 생길 수 있는 이익을 보상하는 보험이다. 기존 기업휴지보험에서는 일반적으로 화재와 풍수해 등 재난에 따른 기업의 물적 피해를 보상해 왔다.

하지만 작년 5월 프랑스에서 보험사 AXA를 상대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영업 손실에 대해 음식점 주인이 제기한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파리 상업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큰 화제를 불러왔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임원의 직무 수행 중 과실로 회사와 제삼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이를 배상해 주는 보험 상품인데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면서 기업에 대한 소송이 증가하고 동시에 그 수요도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보험도 ‘디지털’로 가입한다
한편 독일의 글로벌 보험 기업 알리안츠도 코로나19의 방역 대책으로 유럽 국가들이 실시한 락다운 조치에 따른 기업의 영업 손실 보상 관련 보험금 청구액이 늘고 자동차보험과 여행자보험의 수요가 줄어 2020년 영업이익이 107억5000만 유로(약 14조5000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9.3%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코로나19의 사회·경제적 영향에 따라 전 세계 손해보험 산업의 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럽 인슈어테크 기업들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보험업계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쉽게 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 됐고 소비자들도 이러한 디지털 기반의 서비스를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인슈어테크 기업의 성장이 빨라지고 상품 개발부터 지급까지의 과정이 디지털화·원격화로 재빨리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위기의 영향이 크다. 재택근무보험, 배달음식점 전용 보험, 원격회의 전용 보험 등 코로나19 이전에는 없던 상품이 개발됐고 아예 보험회사에서 원격 진료나 건강 관리 등을 제공하는 등 서비스가 확대됐다. 기존에 설계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판매도 디지털을 통한 간편 가입이 가능해졌고 손해 사정도 인공지능(AI)을 통한 디지털 도구 활용이 극대화되면서 디지털 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보험회사들이 직접 디지털 보험 시장에 뛰어드는가 하면 기술 기반의 신생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기술 솔루션을 보험에 적용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프랑스의 와캄(Wakam)은 19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프랑스의 20대 손해보험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6년 전에 모든 보험 상품을 100% 디지털 기반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더욱 크게 성장하고 있다. 와캄의 핵심 서비스는 보험사 또는 보험 면허가 없는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보험 상품(insurance product as a service)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 전문 제조 업체인 야마하 모터 유럽과 협업, 야마하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오토바이 보험을 개발해 함께 판매한다. 이렇게 와캄은 자사가 가진 보험 면허를 통해 비보험 회사들이 고객 맞춤형 보험을 함께 제공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제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화이트 레이블링 서비스를 통해 와캄은 현재 유럽 전역의 240개의 파트너사에 인슈어테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2020년 파이낸셜타임스의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2020’에 선정되기도 했다.
혁신 솔루션 보험에 적용한 신생 기업들
보험사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그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도 있다. 런던에 기반을 둔 기술 스타트업 카스코(KASKO)는 디지털 기술이 필요한 보험회사를 위해 맞춤형 인슈어테크 기술을 제공한다. 평균 4주간의 빠른 작업 시간과 평균 3만~5만 유로 정도의 저렴한 비용에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객사를 위한 맞춤형 보험 상품을 설계하고 유통·운영까지 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알리안츠·취리히와 같은 전통 유명 보험사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렇게 설립된 지 3년 만에 유럽 내의 20개 이상의 기업에 40여 개의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고 이를 통해 300만 개의 보험 계약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런 B2B 중심의 기업 이외에 고객을 직접 만나는 B2C 보험 관련 기업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스위스의 자산 관리 회사 파이낸스폭스의 자회사로 설립된 온라인 기반의 보험 중개사 위폭스는 2014년 리히텐슈타인에서 설립됐다. 이후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스페인에 지사를 설립해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현재 25만 명 이상의 고객,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100% 온라인으로 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이 특징이고 AI를 기반으로 개인의 나이, 생활 습관, 생활 환경을 고려해 건강보험에서부터 펫보험까지의 전 상품을 개인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추천해 준다.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중에도 3380만 유로(약 455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도 대비 5배나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 최초의 디지털 보험 중개 회사인 클라크(Clark)는 한층 더 분석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AI와 머신러닝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타 디지털 보험 중개사와 비슷한 서비스인 것 같지만 고객의 기존 보험 상품까지 분석, 평가해 독일 내 160개 이상의 보험 회사 상품 중 고객의 개별 상황에 가장 적합한 보험 상품을 추천한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단순히 하나의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여러 보험 회사의 보험 상품을 한눈에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고 클라크가 보험 회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까지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고객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특히 ING-DiBa나 N26과 같은 디지털 은행과 제휴해 자사 플랫폼에서 제휴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제휴사의 플랫폼에서 자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확장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최근 캐롯손해보험·보맵·마이크로프로텍트와 같은 인슈어테크 회사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마이크로프로텍트는 AI 기반의 보험 상품 설계 등의 서비스로 B2B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독일에도 진출해 B2C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리턴즈’라는 상품을 출시해 3년간 받지 못한 실손의료비 보험금을 카카오톡을 통해 쉽게 청구하고 돌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슈어테크는 이전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제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코로나19 위기로 디지털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 타국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인슈어테크 분야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베를린(독일)=이은서 유럽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