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이란 말에는 ‘남이 알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곳’과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영화나 TV 속에 등장해 이제는 그 신비의 막이 걷히고, 많은 여행자가 빼놓지 않고 찾게 된 비경 열 곳을 소개한다. 여전히 빼어나게 아름다우므로, 역시 비경은 비경이겠지만.
아산 공세리성당
아산 공세리성당
아산
01 공세리성당 – <태극기 휘날리며(2004)>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공세리성당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부상당한 국군들을 치료하는 야전병원으로 등장했다. 사계절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외관 덕에 많은 TV 드라마와 CF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는 성당은 순교 성지이자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보고, 기도하고, 또 보존해나가야 할 비경 중 하나다.

02 외암마을 – <취화선(2002)>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그 유명한 시 ‘화비화(花非花·꽃은 꽃이 아니다)’에서 봄날의 꿈처럼, 아침의 구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말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했다. 생은 정녕 잠시뿐이던가. 그런가 하면 조선의 화가 장승업은 봄이 지나면 바람에 씻겨 사라져버릴 매화를 일필휘지로 10폭의 병풍에 담았다. 그 작품이 <홍백매도>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을 매화를 선물한 위대한 화가의 인생을 그린 영화가 2002년에 개봉하여 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이다. 이 자랑스러운 영화의 배경이 된 마을이 바로 충남 아산시 송악면 설화산 밑에 자리한 외암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고, 마을 내 조선시대 장터인 외암마을 저잣거리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길 수 있어, 연간 40만여 명의 관광객이 꾸준히 방문하는 비경 아닌 비경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다.
영월 요선암
영월 요선암
영월
03 요선암 –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영월 10경’ 중 하나인 요선암은 2016년 SBS에서 방영한 사극 판타지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첫 회에 그 신비한 모습이 등장했다. 갑자기 고려시대로 떨어지게 된 해수(아이유)가 도착한 곳으로, 고려의 자연 목욕탕이자 빨래터로 나온 것인데, 유려한 선으로 깎아지른 돌개구멍 안으로 맑은 물이 흐르니 그러한 설정을 자연스럽게 소화했을 법하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이 담긴 요선암은 물살에 깎여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암석 지형이 보기에도 시원시원하다. 천연기념물 제543호.

04 한반도지형 – <1박 2일>
한반도지형 역시 ‘영월 10경’ 중 하나다. 이처럼 독특하면서도 익숙한 이름이 지어진 연유에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팀이 입수를 피하기 위해 처절한 게임 한 판을 벌여 더욱 유명해진 이곳은 한반도지형을 따라 뗏목체험이 가능하다. 굽이치는 금강이 만들어낸 비경, 한반도지형에서 예능 못지않은 즐거운 체험을 경험해 보자.
영월 별마로천문대
영월 별마로천문대
05 별마로천문대 – <라디오스타(2006)>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의 별마로천문대는 해발 799.8m에 자리한 ‘영월 10경’ 중 3경이다. 영월은 연간 관측 일수가 196일로 우리나라 평균 116일보다 많아 별을 관측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2006년에 개봉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공연이 열린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88년 가수왕’ 최곤 역의 배우 박중훈이 노래 ‘비와 당신’을 불렀었다. 노래는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가네요. 조용하게”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고요한 산 정상인 이곳에서 셀 수 없이 멀리 있는 별을 바라보다 보면 과연 그 노래의 결말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사랑은 정말 잊혔을까? 태양이 진 후에야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별마로천문대 에서 옛 영화 속 노래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천문대길 397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
포천
06 한탄강 하늘다리 – <사랑의 불시착>
2020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이 대한민국의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에게 북한에서 만나기 전 스위스 시그리스빌 다리에서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장소의 배경이 된 곳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있는 ‘한탄강 하늘다리’다. 2018년 개장한 한탄강 하늘다리는 길이 200m의 보행전용 흔들 다리로, 성인 1500여 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50m 높이에서 한탄강 협곡을 전망할 수 있으며, 하늘다리에서 출발해 북쪽 멍우리 협곡을 따라 다시 하늘 다리로 돌아오는 6km 구간은 산책 코스로도 제격이다.

07 비둘기낭 폭포 – <괜찮아, 사랑이야>
‘비둘기낭 폭포’는 2014년에 방영한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장재열(조인성)과 지해수(공효진)가 키스를 했던 장소다. ‘한탄강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는 천연기념물 제537호로 지정됐기 때문에 실제로 드라마 속 두 주인공처럼 입수해서는 안 된다. 천혜의 자연이 보여주는 신비로움만 눈으로 담아 볼 것. ‘비둘기낭’이라는 이름은 과거 멧비둘기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움푹 팬 지형이 비둘기 둥지를 닮아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언제부터 비둘기낭이라 불렸는지는 몰라도 이름 불리기 훨씬 오래전, 그러니까 무려 27만 년 전 용암 유출에 의해 형성된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에서 자연이 깎고 자르며 만들어온 폭포다. 자연의 신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지난해 ‘좀비 사극’이라는 이색적인 장르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비롯해 드라마 <선덕여왕> <추노>, 영화 <최종병기 활> 등 각종 대작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비둘기낭폭포 주변 협곡 절벽의 평균 높이는 약 25m에 이르고 30m를 넘는 곳도 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와 협곡, 동굴 등 자연 그대로의 유려한 비경을 눈에 담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멋진 트레킹을 즐겨보자.
단양 이끼터널
단양 이끼터널
단양
08 이끼터널 – <괴물>

이름도 이색적인 ‘이끼터널’은 원래 중앙선 철도가 다니던 길이었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주변이 수몰되고 철로가 이전되자 폐선된 철로가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랜 시간 벽에서 자란 이끼들로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내는 이곳은 SNS를 통해 매력적인 사진 촬영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2월 19일 첫 방영한 JTBC 드라마 <괴물>의 촬영지가 됐다고 하니 멋진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진 이끼터널의 독특한 풍경을 TV 속에서 먼저 확인해보자.

09 양방산전망대 – <사랑의 불시착>
단양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양방산전망 대는 패러글라이딩 명소로도 유명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북한에 불시착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더라도 탁 트인 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충주 중앙탑사적공원
충주 중앙탑사적공원
충주
10 중앙탑사적공원 – <사랑의 불시착>

통일신라시대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국보 제6호 중앙탑의 정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中央塔)이라고 불리는 이 석탑은 통일신 라시대의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중앙탑 앞에는 달 모양의 조형물이 불시착한 듯 자리해 있는데, 밤이 되면 마치 달빛처럼 빛을 발해 여행자들의 사진 명소로 애용된다. 이곳 공원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등장했는데, 중앙탑과 달 조형물이 나온 것은 물론 탄금호 무지개길을 배경으로도 배우들이 열연했다. 탄금호 무지개길 역시 밤이 되면 탄금호의 수면과 어우러진 조명이 색색깔로 빛을 발하니 멋진 야경도 즐겨보자.

한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