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압박에 세계 최고 공급사들 대거 이탈
-상대를 파트너로 만드는 ‘윈윈 협상법’ 필요
당연히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오랜 기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협상이 급진전됐고 마침내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요구가 소위 ‘갈취’라고 표현하며 동맹의 복원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취임 46일 만에 협상은 큰 무리 없이 타결됐다.
생각해 보자. 미국의 요구가 이전의 미 행정부보다 덜 엄격해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미 양국은 올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률을 13.9%(1조1833억원)로 합의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국방비 증가율대로 분담금을 올리는 안건에 합의한 상태다.
다만 미국 측이 한국 같은 가까운 ‘동맹과의 관계’가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 협상이 타결된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측은 무리한 요구가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동맹과의 관계를 내세워 협상 타결이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합의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답변에서도 나타난다.
이익 얻고 싶다면 상대방 이익도 고려해야
협상의 근본적인 동기는 이익이다. 이익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고 서로의 관점 차이를 만든다. 겉으로 나타난 관점이 당사자가 내린 결정이라면 이익은 그렇게 만든 ‘원인’이다.
협상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양측의 이익이 일치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이익은 반드시 경제적인 이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경력직 채용 협상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싶은 것이 지원자의 기본적인 생각일 수 있다.
높은 연봉은 분명 지원자의 이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 직업적 안정성, 승진 가능성, 경력 개발, 가정의 복지 혜택 등 다양한 이익들도 있다.
그렇다면 높은 연봉만을 고집하기보다 다른 이익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협상에서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많이 취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기만 이익을 취하고 상대방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고 하면 협상은 어려워진다. 이익을 얻고 싶다면 상대방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1990년대 자동차업계에서 ‘리엔지어링의 차르(황제)’라고 불렸던 제너럴모터스(GM)의 호세 이그나치오 로페즈 구매담당 사장.
그는 적자에 빠진 GM을 구해내기 위해 모든 부품 공급사들에 납품가를 10% 낮추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만약 동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업을 같이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협상이 아니라 거의 협박이었다.
공급사로서는 ‘천하의 GM’이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낮췄다. 그 결과 어땠을까. GM은 그해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GM에 득이 됐을까. 결국 득이 아니라 독이 돼 돌아왔다. 공급사들이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품질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GM과의 거래를 끊고 더 나은 고객사를 찾아 나섰다. 결국 GM은 자동차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공급사들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 여파로 이듬해 북미 모터쇼에서 GM은 새로운 모델의 차를 선보이지 못하면서 적지 않은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거대 공룡 GM의 침몰이 시작되는 단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이 아닌 ‘문제’와 싸워라
이 사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입하다 보면 쥐어짜게 되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
협상은 혼자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만약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파이를 혼자 독식한다는 소문이 나면 아무도 협상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도 얻고 자신도 얻어 가는 협상이 ‘윈-윈’ 협상이다.
현재 하고 있는 협상을 윈-윈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윈-루즈로 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어떤 마인드로 협상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 다른 비즈니스 협상 사례를 보자. 한국 자동차 업체에서 부품을 구매하는 A 씨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이런 방법 저런 계획을 모두 실행해 봤다. 공급 업체를 들볶는 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압력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 끝에 그는 생각을 바꿨다. 공급 업체들과 연대하기로 했다.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 업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가 가격을 또 내리라고 할까봐 다들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가 꺼낸 첫마디는 의외였다.
가격 인하가 아니라 업체의 매출을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업체의 생산품을 다른 모듈 업체에 팔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기존 품목 외에 다른 제품도 경쟁력이 있다면 구매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업체 간에 정기 교류회를 열어 오픈 경쟁 체제를 구축해 가격이나 품질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업체에 물량 배정을 늘리겠다고 했다.
잔뜩 긴장했던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일방적인 단가 인하 요구가 아니라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생겨서다.
특히 낮은 물량 배정에 불만을 가졌던 업체들에는 절호의 찬스 아닌가. 몇 달이 지난 후 그중 한 업체가 부품의 원가를 25%나 낮출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반가운 마음에 A 씨는 사내 기술팀과 같이 현장 실사를 진행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그는 해당 업체의 물량배정을 우선적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나머지 업체들에도 공개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한 업체들도 놀랐다. 생각해 보지 않았던 혁신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신규 공법을 도입해 원가 절감에 동참했다. 이듬해 A 씨는 해당 품목에서 전체적으로 22%의 원가 절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사례에서 구매자는 자신이 원하는 원가 절감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대가 원하는 것에 먼저 초점을 맞췄다. 그들에게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줬더니 자신이 원했던 원가 절감이 가능했다.
정리해 보자. 위의 3가지 사례의 공통점을 찾아냈는가. 어떤 마인드로 당사자가 협상에 임했느냐에 따라 협상은 달라진다. 윈-윈 협상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막상 실제 협상에 나서게 되면 잘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기 이익에만 꽂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익은 그다음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려고 한다. 그런 협상의 결과는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관계도 훼손되고 자칫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마인드로 협상에 임해야 할까.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싸우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적대자가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자, 파트너’가 된다. 의견 차이는 생각보다 쉽게 해소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쌍방 모두에게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파이는 나누기 전에 키워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다양한 안건을 올리게 되면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커진다. 혼자 이기는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윈-윈으로 가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출발점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다.
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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