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시장인 미국내 수입·판매 금지 가능
빠른 판정 절차와 광범위한 자료 제출 강제 이점
몇 년 전부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라는 미국 행정 기관이 한국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등 한국 기업들이 ITC에서 영업 비밀 침해 여부를 다퉜고 최근 ITC의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왜 한국 기업들은 ITC에까지 가서 다퉜을까. ITC 판정 절차와 영업 비밀 침해 사건의 특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① 미국 내 수입·판매 금지
ITC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인터내셔널 트레이드 커미션(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을 약칭한 것인데, 미국 행정부 소속의 준사법적 행정 기관이다. ITC는 불공정 무역 행위(영업 비밀 침해 행위 포함)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 판매 금지 등의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ITC에 제소하는 이유는 결국 거대한 미국 시장에 경쟁사 제품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누구나 미국 ITC에 경쟁사를 제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소인은 자신의 미국 내 영업 활동(산업)이 있어야 하고 경쟁사의 불공정 무역 행위가 미국 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점 등을 증명해야 한다.
② 신속한 권리 구제
미국 ITC는 조사 개시에서부터 증거 개시, 구두 심리를 거쳐 예비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통상적으로 1년, 최종 판정과 판정 확정에 이르기까지 추가로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판정이 확정되면 곧바로 수입 금지, 판매 금지 등의 효력이 발생하는데 권리 구제 절차로서는 상당히 신속한 편이다. 한국 기업들이 ITC에 제소하는 또 다른 이유다.
판정이 확정되려면 미국 대통령이 ITC 최종 판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47년의 ITC 역사상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 6차례 발동됐는데, 2013년 ITC가 삼성전자의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애플의 구형 아이폰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최종 판정을 내리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미국 조지아 주 주지사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입 금지를 명한 ITC의 최종 판정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③ 증거 개시와 기업 비밀의 보호
영업 비밀 침해 사건에서는 피고(침해자) 측에 도용의 증거들이 편재돼 있기 때문에 원고(피해자)는 소송 절차에서 피고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을 모두 제출하도록 강제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피고가 영업 비밀을 침해한 적이 없는 데도 원고의 요구대로 피고가 무조건 모든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면 오히려 소송 절차에서 피고의 영업 비밀이 원고에게 공개될 위험이 있다.
ITC에서는 증거 개시(fact discovery) 제도와 비밀 보호 명령(protective order)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료들을 모두 제출하도록 하되(증거 개시), 제출된 자료 중 양측이 기업 비밀(CBI : Confidential Business Information)로 지정한 자료들에 대해서는 비밀 보호 명령을 발령해 오직 지정된 사람들만 그 자료들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원고와 피고 양측 모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면서도 자신의 영업 비밀이 소송 절차에서 공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국의 민사 소송 절차에도 이 제도들과 유사한 문서 제출 명령, 비밀 유지 명령 제도 등이 있지만 아직은 널리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 이 또한 한국 기업들이 ITC를 찾아가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김우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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