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남 산너미목장 대표 ...“산골 목장에 차박 캠핑장…2030 찾는 복합 문화공간 됐죠”
[스페셜리포트] 강원 평창의 청옥산 기슭을 굽이굽이 넘으면 요새와 같은 공간이 튀어나온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66만1157㎡(20만 평) 규모의 대자연을 품은 산너미목장이다.미탄면 육백마지기자락에 자리한 산너미목장은 1983년부터 3대를 이어 오며 흑염소를 키우는 자연 목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산너미목장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디 밴드들의 노래가 울러퍼지고 MTB 라이딩이 펼쳐지기도 한다. 5060이 즐겨 찾던 흑염소 목장에 별안간 2030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한 이는 산너미목장 임 씨 가문의 반항아 3세 임성남·임성환 형제다. 청옥산을 떠나 도시 물을 먹고 온 임 씨 형제는 잔잔한 미탄면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실시하는 ‘2020 로컬 크리에이터 페스타’에서 자연 친화 활동 분야 최우수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두가 떠난 외딴 요새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키워 낸 로컬 크리에이터 임성남(35) 산너미목장 대표를 만났다. -무슨 일을 하나요.
“가족과 함께 흑염소 목장을 운영하는 목장지기예요.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에요. 목장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를 동경했어요. 5년 정도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이곳에 돌아왔어요. 햇수로 6년이네요. 지금은 보다시피 완전한 목장지기입니다.”
-왜 목장으로 다시 돌아왔나요.
“이 공간이 영업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목장은 3대라고 말하지만 실은 증조부까지 4대째 이곳에서 살았어요. 당시에는 스무 가구 정도 살았는데 다 도시로 떠나고 우리 집안만 남아 이곳을 지킨 거예요. 치열하고 힘든 삶이었을 거예요. 그들이 지킨 삶의 가치를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 세대가 본질을 지켜 줬기 때문에 그 기반에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목장에 6차 산업(1, 2, 3차 산업을 복합해 농가에 높은 부가 가치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이르는 말)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어요.
“회사가 서울 영등포에 있었어요. 처음엔 별세계였죠. 모든 게 신기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동경한 삶과 달랐죠. 도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막막했어요. 고민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가업을 이어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내비쳤어요. 처음에는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며 외부 사람을 만나고 시야가 넓어지며 목장의 가능성을 확인했죠. 목장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봤어요. 전에는 정말 몰랐어요. 나고 자란 목장의 조건이 좋은지…. 돌아와 보니 알았죠. 아, 우리는 흙이 맞구나. 지금은 정말 잘해내고 싶어요.” 방목형 목장에서 흑염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귀향 전 목장의 모습은 어땠나요.
“생산에 초점을 맞춘, 1차 산업에 집중한 목장이었어요. 그게 목장의 본질이기도 하죠. 하지만 부모님이 하는 고생에 비해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에서 보면 목장 규모가 크고 손님도 많이 오니 화려해 보였겠지만 현상 유지 수준이었어요. 그마저도 쉽지 않았죠. 정말 성실하게 일만 하는데 아쉬움이 컸어요.”
-그 후 어떻게 바뀌었나요.
“꼬박 3년을 흑염소의 마릿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어요. 수입이 안정돼야 투자할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 개체수가 6배 늘었어요. 아버지도 인정해 주셨죠. 내실을 강화한 뒤 외부 홍보가 필요했어요. 판로를 넓히기 위해 박람회를 쫓아다녔죠. 지난 5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대외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으니까요. 부모님과 마찰이 심했어요. 일 안 하고 돌아다닌다고 엄청 혼났죠. 흑염소 관련 제품은 가격대가 높기 때문에 한 번 홍보했다고 해서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아요. 티가 나지 않으니 ‘해야 한다, 안 된다’를 놓고 갈등이 심했죠. 전쟁의 서막이었어요.” 산너미목장에서 차박캠핑을 즐기는 캠퍼들. 산너미목장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공연이 진행 중인 산너미목장 전경.
-성과가 있었나요.
“외부 활동을 하고 한 6개월이 지나서야 차츰 주문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주문량이 대폭 늘어나니 ‘이놈 놀지는 않았구나’ 체감하신 거죠. 그러다 호주 바이어에게 수출 계약을 따냈어요. 한국 대기업도 못한 일을 우리가 해낸 거예요. 그때부터 조금씩 믿어 주셨어요. 본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고 공간 알리기에 힘썼어요. 인근에 육백마지기라는 청옥산의 명소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손님들을 미탄면으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했죠.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차박 캠핑이 인기를 끌었어요. 목장의 공간을 오픈해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자고 했죠. 생산만 하던 가족들이 갑자기 서비스업을 겸해야 하니 힘들어했어요. 정말 많이 다퉜죠.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편을 들어줬어요. ‘애들 뭐라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바꾼 목장, 어떻게 바뀌었나요.
“기존에는 산나물과 약초, 흑염소 제품을 구입하러 온 5060대가 주요 방문객이었는데 지금은 젊은 층이 80%나 돼요. 차박 캠핑 패키지를 이용하러 오는 분들이 많죠. 이들을 위해 트레킹부터 MTB 라이딩 같은 대회를 열기도 하고 정상에서 오페라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코로나19로 인원을 줄였는데도 지난해에만 연간 8000명이 산너미목장을 찾았죠. 올해에는 2만 명을 예상하고 있어요. 공간이 알려지면서 광고 촬영이나 전시회, 웨딩 등 대관 형태로도 부수익이 늘고 있어요. 이젠 부업(공간 서비스업)이 본업(흑염소 사업)의 수익을 넘어가는 단계에 와 있어요.”
-지금은 효자 소리를 듣겠어요.
“불안할 정도예요. 한 번씩 뭐라고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고지대에 있다 보니 상수도도 들어오지 않고 전기 용량도 한정적이죠. 아버지가 시설 보수에 큰 힘을 실어 주고 있어요. 지금은 가장 든든한 파트너예요.”
-산너미목장을 넘어 미탄면에도 변화가 있나요.
“지역 소멸에 관심이 많아요. 로컬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힘들거든요. 미탄면 인구가 약 1700명인데, 그중 40대 이하 농업인이 저와 제 동생을 포함해 총 6명이에요. 코로나19 시기에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6인이 와우미탄(WOW:미탄)이란 청년 단체를 결성했어요. 미탄면이 함께 잘살 궁리를 하는 게 목표죠. 혼자 잘되면 지속 가능하기가 어려워요. 육백마지기 명소의 손님을 미탄면으로 끌어들여 지역의 매출을 올려야 하죠. 산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체험하고 머무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로컬 크리에이터 꿈나무에게 알려줄 팁이 있나요.
“지역 이해를 세밀하게 한다면 분명 기회는 있어요. 농촌의 빈집을 꾸며 외갓집 프로그램처럼 만든 사례도 있는데 찾아보면 비즈니스 모델은 정말 다양해요. 귀농 의사가 있다면 시·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죠. 그 대신 로컬 비즈니스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부닥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지역민과 소통을 잘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쉽지 않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올 겨우내 새단장했어요. 기존 음식점이었던 창고를 카페로 탈바꿈시키고 3월 말 오픈해요. 저녁에는 펍(PUB)으로도 운영할 예정이에요. 산너미목장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이죠. 기업과의 비즈니스 협업도 늘어나고 있고 기획자들과 손잡고 양질의 공연과 전시 등 문화·예술 활동도 확대할 예정이에요. 산너미목장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해 미탄면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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