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시에서 규제·신사업까지 통합 자문...전담팀 만들고 전문가 영입 경쟁

[스페셜 리포트]
율촌 ESG연구소의 김도형 전문위원(왼쪽부터), 정대원 변호사, 최준영 전문위원, 김기영 변호사, 이민호 고문(소장), 손금주 변호사, 은성욱 변호사, 윤용희 변호사.
율촌 ESG연구소의 김도형 전문위원(왼쪽부터), 정대원 변호사, 최준영 전문위원, 김기영 변호사, 이민호 고문(소장), 손금주 변호사, 은성욱 변호사, 윤용희 변호사.
미국 뉴욕 주는 2018년 세계 최대 석유회사 엑슨모빌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화석 연료로 인한 기후 변화 위험성을 투자자들에게 고의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엑슨모빌은 2019년 혐의를 벗는 데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주가 하락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고 소송까지 당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올해 초 겪은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가 약 6000만 유로(약 791억원) 규모의 한전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APG는 전 세계적으로 화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줄여 나가고 있는 추세를 한전이 따르지 않고 있다며 지분 매각 배경을 밝혔다. 기업의 재무적인 성과만 놓고 투자 여부를 판단했던 글로벌 투자사들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가 충족되지 않는 기업은 점차 투자를 끌어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주요 로펌도 환경 분야 전문가 영입

전 세계적으로 ‘ESG 잣대’가 강화되는 만큼 이런 사례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기업들이 열을 올리며 ESG 경영을 전면에 내거는 이유다. 자칫하다가는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투자가 끊길 수 있다.

다만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ESG 리스크’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최근 로펌·회계업계가 ESG 자문을 하는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배경이다. 앞으로 더 커질 ESG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로펌·회계업계 역시 내부적으로 ESG 조직을 확대, 개편하며 기업 고객 모시기에 한창이다.

한국의 주요 로펌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ESG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또 환경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을 영입하며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한국 최대 로펌답게 가장 큰 규모의 ESG그룹을 지난해부터 출범시켜 운영 중이다. ESG 이슈와 관련이 있는 여러 팀들을 하나로 통합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룹장인 노경식 변호사를 비롯해 40여 명이 그룹에 속해 있는데 ESG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눈길을 끈다. 국제배출권거래협회(IETA) 이사를 역임한 김성우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을 비롯해 한국경제연구원에서 각각 기업연구실장과 거시연구실장을 역임한 신석훈·변양규 전문위원, 한국거래소 출신의 김영춘 전문위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약 30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광장 ESG팀을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공동 팀장인 김상곤·설동근 변호사 등 30명의 변호사들이 이 팀에서 활약 중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광장 ESG 지속가능경영연구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 안전 보건 분야 전문가인 신인재 전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교육원장 등을 영입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고객들에게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ESG 서비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ESG그룹(그룹장 박상훈 변호사)을 설립한 법무법인 화우는 ESG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온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며 막강한 진용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회계업계, 글로벌 전문가와 연계해 ESG 강화

SK그룹에서 지속 가능 경영 등 ESG 업무 담당 임원을 역임한 신승국 미국 변호사가 현재 화우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ESG가 인수·합병(M&A)의 가치 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만큼 이 분야의 거물급으로 평가받는 박성욱·이소연 미국 변호사도 합류했다.

이경돈 변호사가 주축이 된 법무법인 세종 ESG팀에는 이용국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 환경 전문가인 백규석 전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등의 ESG 전문가가 활약 중이다.

법무법인 태평양도 지난해 ESG 대응팀을 구성해 ESG 관련 서비스롤 활발히 제공 중이다. 기업법무 및 M&A 베테랑인 이준기 변호사가 팀을 이끌고 있다. 태평양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정연만 전 환경부 차관 등도 ESG 대응팀에 소속돼 힘을 보태고 있다.

ESG 대응팀에서 활약 중인 박준기 태평양 변호사는 “최근에는 상장 전 투자유치(Pre-IPO) 단계에서부터 투자자들이 ESG 요소를 고려하는 추세”라며 “ESG가 ‘투자’와 연결되면서 기업들의 관련 자문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회계업계의 상황도 비슷하다. ESG가 투자의 기준이 되고 있고 한국은 2025년부터 ESG 정보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여기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회계 업체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수요를 끌어안기 위해 주요 회계 업체들이 ESG 자문 역량 강화에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는 이유다.

예컨대 한국딜로이트그룹은 3월 2일 기업들에 ESG 경영과 관련한 통합 서비스를 해주는 ESG센터를 발족했다. 딜로이트가 보유한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ESG 경영 전략·재무·감사·세무·ESG 채권 발행 등을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일PwC는 지난해부터 ESG 플랫폼을 구축한 상태다. PwC가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ESG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감사·세무·컨설팅·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 분석 솔루션을 개발한 PwC 독일도 여기에 포함돼 기업들의 기후 변화 대응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삼일PwC 관계자는 “삼성·SK·현대·포스코·KT&G 등의 기업들에 현재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정KPMG는 현재 3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ESG 전담 팀을 운영하고 있다. SK와 네이버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들을 자문한 경험을 앞세워 외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정KPMG 관계자는 “ESG 전담 팀뿐만 아니라 회계·재무·전략 컨설팅 조직들과 힘을 합쳐 고객에게 ESG 통합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SG 벤치마킹부터 ESG 경영 전략 체계 수립, ESG 신사업 도출 등을 위한 전략 수립을 돕고 있다. 여기에는 1000여 명에 달하는 KPMG 글로벌 ESG 전문가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EY한영은 ‘CCaSS(기후 변화 및 지속 가능 경영 서비스)’라는 이름의 ESG 전담 팀을 운영하고 있다. ESG 열풍이 거세기 불면서 CCaSS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 강화를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이와 별도로 ‘ESG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며 신규 ESG 상품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인터뷰
윤용희 율촌 변호사
“한국에서도 ESG 관련 소송 급증할 것”
‘커지는 ESG 자문 수요’…특수 잡기 나선 로펌·회계업계
법무법인 율촌도 기업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행보에 맞춰 지난해 12월 ‘ESG연구소’를 설립했다. 환경 정책·기후변화 전문가인 이민호 전 환경부 환경정책실장을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들이 연구소에 포진했다. 공정 거래, 환경 에너지 등 규제 분야 전문가인 윤용희 변호사도 그중 한 명이다. 율촌을 찾는 기업 고객들에게 다양한 ESG 경영과 관련한 자문을 제공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ESG 관련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하며 활약하고 있다. 윤 변호사를 만나 ESG 자문 시장의 현 상황과 향후 불거질 수 있는 기업의 ‘법률 리스크’가 무엇인지 물었다.

주요 로펌들이 모두 ESG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기업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환경(E)과 사회(S), 지배구조(G)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알고 싶어 한다. 이런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로펌마다 이런 형태의 ESG 전담 팀이 생겨나고 있다. 율촌의 ‘ESG연구소’에도 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뿐만 아니라 환경 분야 전문가, 리서치 요원들이 소속돼 있다.”
기존의 자문과 ESG 통합 자문은 어떤 차이가 있나.
“ESG의 속성 자체가 상당히 복잡한 측면이 있어 자문이 까다롭다. 경영 전략 수립, 재무·비재무적 정보의 공시, ESG 각 분야의 규제 준수, 야심찬 모범 규준의 정립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인 전략과 실행 방안을 요구한다. 전체를 다 자체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컨설팅 회사나 로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로펌·회계법인·경영 컨설팅 회사 등은 나름의 역할 구분이 뚜렷해 자문 수요 또한 흩어졌는데 ESG 바람이 불면서 업역 구분의 의미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앞으로 이들 간의 협력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강화된 ESG 잣대가 야기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는 없나.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업들에 의무 공시 내용에 더해 구체적인 ESG 관련 정보의 추가 공개를 요구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자연히 기업들이 공개하는 ESG 관련 정보의 양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 과정에서 ESG 정보를 잘못 공개하면 불성실 공시 또는 부당한 표시 광고에 해당한다. 각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고 소비자나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소송이 지금 미국 등 해외에서는 많이 나타난다. 한국에도 점차 이런 소송들이 늘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ESG와 관련한 자문이 어느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나.
“지난 2월 율촌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ERM이 공동으로 ESG 관련 웨비나(웹+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1600여 명의 기업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ESG에 대한 정보 갈증이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ESG 평가 등급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자문 니즈가 많이 들어온다. 아직까지 국내외적으로 표준화된 평가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표준화된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은 지속적으로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ESG에 대한 기준을 통일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SG 가운데 어느 부분이 가장 큰 이슈인가.
“기업이 처한 환경이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 한국 기업들은 ‘지배 구조’에서 다소 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들이 상당하다. 다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2050 탄소 중립’과 같은 기후 변화의 외부적 제약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환경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