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원 이상 2025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필수…이미 세계 20개국 ESG 의무 공시 도입

[스페셜 리포트]
‘발등의 불’ ESG 정보 공시…국내 상장사도 의무화 초읽기
2021년 주요 기업 신년사와 주주 총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단연 ‘환경·사회·지배구조(ESG)’다. 삼성·현대차·SK·LG 등 한국의 주요 그룹은 물론 4대 금융지주·증권업계·정보기술(IT)업계·식품업계·철강업계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ESG를 핵심 경영 키워드로 내걸었다.

2020년이 ESG에 대한 거대 담론이 형성된 해라면 2021년은 ESG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회사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ESG를 투자 의사 결정 체계에 포함했다면 올해는 기업들이 앞다퉈 ESG 경영 전략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들고나오고 있다.

특히 ESG 공시 의무화 추진에 따라 ESG 경영이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자리잡았다.

ESG 평가 결과가 기업 가치와 직결되고 금융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관심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30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전체 ESG 공시 의무

지난해 ESG 열풍을 주도한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 역시 올해는 기업들의 이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블랙록은 2020년 기후 변화와 지속 가능성이 투자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의제라고 선언하며 ES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에는 래리 핑크 회장이 서한을 통해 기업들의 기후 변화 대응 장기 전략 공개를 요구하고 양질의 ESG 정보 공시를 강조하며 실질적인 ESG 이행을 가속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금융위원회가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에 대한 ESG 의무 공시를 예고하며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국민연금이 ESG 투자 강화를 시사한 지 두 달 만이다.

이에 따라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들은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와 기업 지배 구조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부터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하고 2030년 이후에는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확대된다.

매년 100여 개 기업 정도가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발간해 왔지만 거래소에 보고서를 공개하는 기업은 20개에 불과했다.

현재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211곳에 적용되고 있는 기업 지배 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 역시 2022년부터 1조원 이상, 2024년부터 5000억원 이상, 2026년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공개 범위가 확대된다.

금융위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시행 성과를 평가하고 ESG 관련 수탁자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한다.

ESG 공시 의무화가 시행되면 기업들은 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항목들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ESG 정보 공개 가이던스’에 따르면 환경 부문 5개 항목은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사용, 물 사용, 폐기물 배출, 법규 위반·사고 등이다.

사회 부문 4개 항목은 임직원 현황, 안전·보건, 정보 보안, 공정 경쟁 등이다. 지배 구조 부문 3개 항목은 경영진의 역할, ESG 위험 및 기회 이해관계인 참여다.

기업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ESG 공시에 대비하고 있다. 최근 LG그룹은 13개 상장사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고 삼성화재는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SK 역시 최근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하며 지배 구조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 밖에서도 ESG 공시 의무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ESG 공시를 의무화한 국가는 20개국 안팎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3월 ESG 공시 의무 대상이 연기금에서 은행·보험·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로 확대됐다. 금융회사는 ‘지속 가능 금융 공시 제도(SFDR :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에 따라 금융회사의 투자 결정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 위험성, 지속 가능성 관련 부정적 영향, 금융 상품에 대한 지속 가능성 정보 제공 등에 관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지속 가능성 리스크 정보는 웹사이트에 공개해야 한다.

이와 함께 EU는 2018년부터 유럽 기업에 적용되던 비재무 정보 공개 지침(NFRD)을 확대한다. EU는 회계연도 평균 노동자 수 500인 이상, 자산 총액 2000만 유로 또는 순매출 4000만 유로 이상의 기업이나 공익 법인에,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지침 개편으로 2025년부터 모든 상장사로 공개 의무 범위가 확대되고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와 지배 구조 측면의 공개 의무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1월부터는 ‘택소노미(Taxonomy)’, 일명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에 대한 분류 체계를 적용한다. 택소노미는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판별하는 기준이다. NFRD에 따라 ESG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기업은 향후 택소노미에 따른 활동과 성과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또 모든 투자자와 금융회사도 택소노미가 적용된 투자·금융 자산 비율을 공개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과 지속 가능한 투자를 정의하는 기준을 강화하면서 실제 자금이 지속 가능한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도래한 ESG 시대에서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투자는 자본 흐름에서 서서히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ESG, 글로벌 무역 장벽 되나

‘친환경’이 곧 새로운 무역 장벽이 되려는 조짐도 보인다. EU는 오는 6월 탄소 국경세(CBAM) 법안 초안을 발표해 2023년부터 본격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탄소 국경세는 자국 기준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와 기업의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EU 정상들이 지난해 EU의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1990년 수준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로 합의하면서 탄소 배출 감축에 소극적인 기업이나 국가를 압박하겠다는 카드다.

영국은 2020년 11월 모든 상장 기업에 대한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25년까지 모든 기업에 ESG 정보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올해부터는 대형 연기금에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 :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에 따른 기후 보고 의무화를 주문했다. 만약 보고를 발표하지 않으면 최대 5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개별 수탁자는 최대 5000파운드(약 76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일본은 올 상반기 ESG 공시 방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를 위한 태스크포스에서 제시한 기준을 참고할 예정이다.

홍콩은 2025년까지 홍콩 내 금융회사와 상장 기업들이 TCFD 기준에 맞춰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증권선물위원회(SFC)와 홍콩 금융 당국 및 정부 부처는 홍콩이 지속 가능한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목표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ESG만 자율 공시하고 있다. 다만 ESG에 관심이 높은 바이든 정부의 결정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김정남 삼정KPMG 상무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ESG 글로벌 공시 세미나에서 “ESG 공시는 기업 가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며 “기업들은 비재무(ESG) 보고 역량과 체계 재정비로 정보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