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공기업 선진화’ 내걸고 주공 토공 통합…‘권한 비대·정보 독점’ 비판에 다시 수술대로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0월 1일 공식 출범한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친 통합 공사 초대 사장에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이 이날 취임한다. 이에 따라 1993년부터 논의돼 온 두 공기업의 통합이 16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통합 공사는 토지(LAND)와 주택(HOUSING)의 영문 첫 글자를 딴 LH라는 기업 이미지를 공개하고 일상적으로 부르는 명칭도 LH로 하기로 했다.’ (2009년 10월 1일, 한국경제)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출범한 2009년 10월 1일자의 신문 기사다. ‘공룡 공기업’ LH는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공공 기관 선진화’ 정책의 신호탄을 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1975년 국가의 토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 1962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건설·공급,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 두 기관을 전신으로 해 상호 중복되는 기능을 해소하면 경영 효율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렇게 LH는 토지와 주택에 관한 정보를 모두 다루며 막강한 권한을 등에 업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LH를 다시 쪼개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사전 투기 의혹으로 공분에 찬 각계 전문가들은 막대한 권한과 정보를 분산하기 위해 LH를 4등분해야 한다는 논의부터 주택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다양한 혁신안을 내놓고 있다. 토공과 주공으로의 회귀일까. 기나긴 ‘한 지붕 두 가족’의 역사를 되짚었다.
“경영 효율 vs 경쟁 촉진”
LH의 전신, 토공과 주공의 통합 논의는 1993년 초 노태우 정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택지 개발 사업, 도시 재생 사업, 국가 균형 개발 사업, 지역 종합 개발 사업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양 기관의 상호 간 기능이 중첩된다며 주택 건설과 택지 개발 사업의 지자체 이전을 전제로 통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어 등장한 김영삼 정부는 통합보다 기능 조정으로 방향을 정리했다. 2년여에 걸친 진통 끝에 섣불리 두 기관을 통합하는 것보다 토공의 재개발 사업 기능을 폐지하고 주공의 택지 개발은 자체 소요로 한정하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락한 것이다.
통합론은 김대중 정부에서 다시 제기됐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이 지상 과제였던 당시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 혁신 계획’을 수립하며 양 공사의 통합을 통해 상호 기능 중복을 해소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안을 추진했다. 이때부터 통합공사법(‘한국토지주택공사법(안)’)이 2차례 국회에 상정되는 등 통합 논의도 본격화됐다.
하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2001년 통합 법안은 “거대 부실 공기업의 출현을 초래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006년 통합 법안 역시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다수의 기관에서 진행된 통합 타당성 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컸다. 2001년 진행된 영화회계법인의 분석 자료에서는 ‘재무적 측면에서 통합 시너지 효과가 없고 통합 시 재무 구조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했고 이듬해 10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에서도 ‘통합 대상으로 부적합하며 전문화로 공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통합 논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금 급물살을 탔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공과 토공의 통합을 재추진하는 안을 주문하며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른 주공과 토공의 통합이 확정됐다.
같은 해 10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홍준표(현 무소속 의원) 의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16년을 끌었던 찬반 논의가 국회에서 다시 재현됐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현 광주시장)은 상임위에서 “전문화에 따른 특성이 있기 때문에 두 개를 나눠 놓은 것”이라며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펼쳤다.
양쪽 노조 간 갈등도 심각했다. 규모 면에서 통합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주공은 원가 절감 효과 등을 내세우며 찬성 쪽에 섰지만 토공 측은 “통합 논의는 주공의 생존 전략일 뿐”이라며 강하게 맞섰다. 일원화에 따른 경영 효율화의 효과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대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토공 노조 측의 논지였다.
시민 사회의 이견도 컸다. 2009년 3월 열린 공청회에서는 양 공사가 중복 기능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경쟁을 촉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건설 관련 매출액 1~2위 기업을 합치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말하는 공정한 거래 환경을 위해하는 요건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공기업에는 경쟁이 맞지 않고 양 공사의 역할이 모두 소진돼 미래 지향적인 역할을 위해 통합해야 한다는 등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됐다.
16년을 끌어 온 논란은 2009년 4월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마무리됐다. 당시 야당과 시민 관계자들은 “경영 진단을 거치지 않은 졸속 처리”라며 비판했지만 정부는 “16년 전부터 반복된 통합 논의로 이미 다양한 연구 용역을 수행했고 그 결론은 주공과 토공은 궁극적으로 통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차질 없이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정부패 척결 내세웠지만…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고 무사안일에는 철퇴를 내릴 것입니다.” 2009년 10월 1일 LH의 출범을 앞두고 이지송 초대 사장은 직원들을 향해 이 같은 메시지를 날렸다. 과거 주공과 토공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아 온 만큼 새로 시작할 LH에서는 부패와 비리 척결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조직 슬림화를 외쳤음에도 출범 당시 7367명의 직원 수는 2020년 말 기준 9449명으로 늘었다. 조직이 커지고 공공 부문 주택과 토지 개발 업무를 사실상 독점하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면서 임직원 비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LH 직원들이 수억 원의 뇌물을 받고 수의 계약을 통해 LH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하는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LH 직원의 내부 징계 건수 또한 2016년 11건, 2017년 21건, 2018년 33건, 2019년(8월까지) 24건 등 해마다 늘어났다. 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대표이사가 나서 비리 척결을 주문하고 사과했지만 개선은 요원했다.
그리고 2021년, LH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LH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각계각층에서는 다시 LH의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막대한 권한과 정보 독점 문제를 가진 LH의 기능을 쪼개 권한을 분산하자는 안이다.
도시 전문가인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 산하에 주택청을 신설해 주거 복지와 주택 공급 등 주거 안정과 관련된 총괄 정책 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LH공사는 주거 복지 전달 체계 업무를 담당하도록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개발과 주택 공급은 주택청이 전국적인 계획을 총괄하고 각 지방자치단체 개발 공사가 시행하게끔 함으로써 건강한 경쟁을 촉진해 개발 사업 독점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해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택지 개발 사업과 도시 재생, 신도시 개발 등 LH가 담당하는 중차대한 사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해체는 소탐대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해체 안에 선을 그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 19일 LH 조직 개편 방안과 관련한 질의에 “LH를 토지공사·주택공사로 각각 분리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 16년의 치열했던 논의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정부는 이르면 3월 말 LH의 혁신 방안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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