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중심으로 나눠진 세계 각국…첨단 산업 글로벌 공급망도 요동쳐
[글로벌 현장] 미·중 관계가 ‘바이든 시대’에도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을 복원해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러시아·이란 등과 손잡고 ‘반미(反美) 연대’로 맞서고 있다. 미·중을 중심으로 세계가 갈라지는 모습이다.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이들 산업을 미국이나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하면서다.
출발부터 삐걱거린 알래스카 회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을 경시했다. 중국과 맞설 때도 일대일로 맞섰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다르다. 취임 직후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 복원에 힘을 쏟았다. 일단 동맹부터 챙긴 뒤 동맹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는 구도를 짰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아시아·유럽 외교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Quad) 정상회의(3월 12일)와 국무·국방장관의 일본·한국 연쇄 방문(3월15~18일)에 이어 알래스카 미·중 고위급 회담(3월18~19일)에서 중국과 마주앉았다.
쿼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로, ‘중국 포위망’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 행정부 때 외교장관 회담에 머물렀던 쿼드를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 회의로 격상시켰다. 이후 아시아 전통 우방인 일본과 한국을 만난 뒤 중국과 상대한 것이다.
알래스카 회담은 출발부터 난타전이었다. 회담에는 미국 측에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에선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당초 미·중은 3월 18일 첫 만남 때 취재진 앞에서 각각 2분씩 모두 발언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측의 모두 발언은 1시간 이상 공개 설전으로 번졌다. ‘바이든의 오른팔’로 불리는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행동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직격했다. 신장·홍콩·대만 등 중국의 ‘민감한 곳’도 건드렸다. 양 위원은 미국이 군사력과 금융 우위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장·홍콩·대만에 대해선 “미국의 내정 간섭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에 있는 많은 사람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지난해 경찰의 강압 체포 과정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을 거론했다.
양 위원은 “미국은 윗사람처럼 중국에 말할 자격이 없고 이런 방식은 중국에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의 인권을 따지기 전에 미국이나 잘하라’고 힐난한 것이다. 양 위원의 발언은 15분을 훌쩍 넘겼다. 왕 외교부장도 알래스카 회담 전 미국 정부의 중국 통신사 제재를 겨냥해 “손님을 환영하는 방법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자 블링컨 장관은 양측의 모두 발언이 모두 끝난 줄 알고 회담 장 밖으로 나가려는 기자들을 붙잡고 양 위원의 발언을 반박했다. 이에 양 위원도 미국 측의 태도를 비난하며 설전을 벌였다. 미·중은 3월 18~19일 이틀간 세 차례 회담을 벌였지만 마지막 날 공동 성명도 내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후에도 미·중 관계는 험악해졌다. 블링컨 장관은 알래스카 회담 후 곧바로 벨기에 브뤼셀(3월 22~25일)로 날아가 유럽 주요국 외교장관과 나토(NATO :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을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으로 열린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 회의(3월 25일)에 모습을 보였다. 유럽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중국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브뤼셀 방문 중 나토 본부 연설에서 “미국은 (동맹국에)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국제 규칙을 무시하고 있고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은 심각한 감시 위협을 가져온다”고 중국을 맹비난했다.
특히 5G 통신망에 대해선 “스웨덴·핀란드·한국·미국 같은 나라의 기술 기업을 한데 모으고 안전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육성하기 위해 공공·민간 투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의 5G 통신망 장악을 막고 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 등 ‘믿을 수 있는’ 기업들로 5G 통신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군사적 야심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에 맞서기 위해 ‘동맹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미국이 유럽·아시아 동맹과 함께하면 그 비율이 60%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이는 중국이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중국에 대한 안보 우려를 표시하며 “중국은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라고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5일 취임 후 첫 기자 회견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극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힘센 국가가 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내 임기 중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선 “똑똑한 사람”이라면서도 “민주주의적 면모라곤 전혀 없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처럼 권위주의가 미래의 흐름이고 민주주의는 복잡한 세상에서 작동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중 갈등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립으로 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시각을 밝힌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통화에선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에 맞설 방안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의 인프라 계획’을 제안했다.
중국, 러시아·이란과 결속 다지며 ‘반격’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맞서 러시아·이란과 결속을 다지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에서 3월 22~23일 중·러 외교장관 회담을 열었다. 미국과의 알래스카 회담에서 날 선 공방전을 벌인 직후 직후 러시아와의 유대를 과시한 것이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과 서방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깃발을 들고 걸핏하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이 같은 패권 행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3월 27일 이란과 협정을 맺고 25년간 포괄적 협력 관계를 이어 가기로 했다.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인프라에 투자하고 이란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과 이란의 협력은 미국의 포위망을 약화시키려는 중국과 미국의 제재에 따른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이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제기한 미국·캐나다 측 인사들을 제재하며 ‘실력 행사’에 돌입하기도 했다. 미국·캐나다·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문제 삼아 중국 관리와 단체를 제재하자 중국도 맞불을 놓은 것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다음 제재 대상은 쿼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은 ‘공급망 전쟁’으로도 번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전기차 배터리·희토류·의약품의 공급망을 100일간 재검토해 보고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 또 국방·보건·정보통신기술·에너지·운송·농식품 등 6개 산업에 대해선 1년간 공급망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미국은 반도체 부족으로 차량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반도체는 첨단 산업과 군사 장비에 없어선 안 되는 핵심 부품이지만 대부분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역시 첨단 산업과 무기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엔 의약품과 의료장비 부족에 시달렸다. 미국이 핵심 품목을 대상으로 공급망 재검토에 나선 배경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공급망 검토 결과에 따라 핵심 품목의 미국 내 생산 독려나 동맹국과의 협력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 혜택이나 관세·조달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이미 이런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미 반도체 기업 인텔은 3월 24일 200억 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 주에 반도체 공장 2개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0개 이상의 기업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고 미국 정부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다”며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균형을 잡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수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트럼프 행정부 때 이미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다. LG화학은 2025년까지 미국에 5조원 이상을 투자해 2곳 이상의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워싱턴(미국)=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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