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인 50%, 1회 이상 백신 접종…한국·호주·일본은 ‘백신 느림보’

[글로벌 현장]
백신 넘치는 미국…이젠 백신 기피 줄이기 ‘올인’
“되도록 팔을 많이 움직여 주세요.”
지난 4월 16일(현지 시간) 기자의 왼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놓아 준 간호사는 ‘주사를 맞은 뒤 운동을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사 맞은 팔을 더 많이 움직일수록 더 좋다”고 했다.

백신 접종은 생각보다 빨리, 쉽게 끝났다. 기자와 아내가 백신을 맞기로 한 조지메이슨대 실내 경기장(이글뱅크 아레나)에 들어가 체크인하고 접종을 마치는 데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체크인은 간단했다. 신분증만 보여주면 OK였다. 보험이 없어도 되고 과거 병력이나 거주지 증명 같은 것도 따로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라 외국인 거주자도 공짜로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체크인 담당자가 신원 확인 후 곧바로 ‘4월 16일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및 ‘5월 7일 2차 접종 예정’ 문구가 찍힌 종이 카드를 줬다.

이어 곧바로 백신 주사를 놓는 간호사 앞으로 안내됐다. 간호사는 기자에게 과거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있는지, 특정 약 성분에 부작용은 없는지, 최근 2주간 스테로이드 성분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고 기자가 ‘없다’고 하자 곧바로 주사를 놓았다.

접종 후 옆에 있는 대기소 의자에 15분 정도 앉아 있어야 했다. 혹시 모를 백신 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한 절차다. 기자와 아내 모두 별다른 이상이 없어 15분 뒤 그곳을 떠나 집에 왔다. 아내는 저녁에 “열이나 두통은 없는데 주사 맞은 팔이 돌에 맞은 듯 아프다”고 했다. 반면 기자는 주사를 맞은 부분이 약간 뻐근하긴 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사람마다 1차 접종 후 증세가 다른 듯했다. 접종 둘째 날인 4월 17일엔 아내도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고 접종 셋째 날인 4월 18일엔 “이젠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다.
백신 넘치는 미국…이젠 백신 기피 줄이기 ‘올인’

보험 없어도, 외국인도 OK
기자가 아내와 함께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백신 접종 등록 사이트를 통해 접종 신청을 한 것은 4월 3일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 이즈음 기자가 만난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1차 접종을 끝냈거나 1차 접종 예약 날짜를 받아 둔 상태였다.

기자가 접종 신청을 한 지 6일 뒤인 4월 9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예약 안내 메일이 왔다. 이 메일을 통해 예약 안내 사이트에 접속하자 4월 9~17일까지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시간대와 접종 장소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 중 편한 시간과 장소를 고르면 되는데 기자와 아내는 금요일인 16일 오전 8시 30~45분 조지메이슨대 실내경기장을 택했다. 화이자 백신은 극저온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작은 약국보다 큰 접종센터에서 맞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대부분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다.

백신을 더 빨리 먼저 맞고 싶으면 페어팩스 카운티 사이트가 아니라 소형 소매점(CVS)과 월그린 등 동네 편의점이나 약국 체인 홈페이지에서 백신 접종을 신청하면 된다. 이런 곳에선 신청 당일이나 하루 뒤 곧바로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 백신 접종 예약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도 있다. 백신이 넘쳐나는 미국의 단면이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4월 18일부터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백신 접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확대했다. 이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나 병원·의료기관·교육기관·필수업종 종사자, 16~64세 중 기저 질환자 등이 우선 접종 대상이었는데 이런 제한을 없애고 미 보건 당국이 허용한 접종 가능 연령자 모두에게 백신 접종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화이자 백신은 16세 이상, 모더나 백신은 18세 이상이 맞을 수 있도록 승인 받았다.

4월 19일부터는 미국의 모든 주와 지역에서 백신 접종 기회가 열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영상을 통해 “오늘부터 (16세 이상) 모두가 백신을 맞을 자격이 있다”며 “우리는 (백신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백신 넘치는 미국…이젠 백신 기피 줄이기 ‘올인’

남은 과제는 ‘백신 기피자’ 줄이기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1주일간(4월 7~13일) 하루 평균 백신 접종 건수는 330만 건에 달한다. 한 달이면 약 1억 명이 맞을 수 있는 속도다. 미국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냈지만 이후 백신 개발과 확보에 올인하면서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한국 등 일부 국가가 백신 부족에 시달리거나 존슨앤드존슨 백신(얀센 백신)이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으로 접종 확대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미국은 그런 걱정도 거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보건 당국이 존슨앤드존슨 백신 접종 중단을 권고한 4월 13일 “존슨앤드존슨이나 아스트라제네카가 아닌 mRNA 방식의 백신(화이자·모더나 백신)이 6억 회분(3억 명분) 있다”며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미국인이 100% 맞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 말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4월 18일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최소 한 차례 이상 맞은 성인(18세 이상)은 1억2998만 명 정도로 전체 성인 인구의 50.4%에 달한다.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성인은 전체 성인의 32.5%인 약 8397만 명이다. 고위험군인 65세 이상은 81%인 4432만8000명 정도가 최소 1회 접종을 마쳤다.

백신 접종이 탄력을 받으면서 미국인들의 자신감도 회복되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은 원칙적으로 4월 20일부터 대면 수업 일수를 주 2일에서 주 4일로 확대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았던 학교가 정상화 직전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지난 3월 미국의 취업자 수(비농업 부문)는 전월 대비 91만6000명 늘어 시장 예상치(64만7000명)을 크게 웃돌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6.4%로 전망했다.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백신 부족이 아니라 ‘백신 기피자’다. 미 퀴니피액대 조사에서 백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자가 27%나 됐다. 만 35세 미만에선 응답자의 35%가 백신을 맞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비영리 단체 카이저패밀리재단 조사에서도 30세 미만에서 백신을 맞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49%에 그쳤다. 백신은 넘쳐나지만 백신 기피자들이 적지 않고 특히 젊은층에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일부 접종자의 부작용으로 존슨앤드존슨 백신 접종이 중단되면서 백신 기피자가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백신 기피자가 많아지면 집단 면역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보통 전 인구의 70~80% 정도가 접종을 마쳐야 집단 면역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백신 기피자 설득이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까지 2억 명 이상에게 최소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백신 효과를 높이기 위한 ‘부스터 샷’도 관심이다. 현재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모두 2회 접종을 하면 되는데 접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역 효과가 떨어져 추가 접종이 필요할 수 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늦여름이나 초가을께 (부스터샷 여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스터 샷 필요 여부는 제약사가 아닌 미 CDC와 식품의약국(FDA) 등 보건 당국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백신 확보에 차질을 빚으면서 초기 K방역 성과의 빛이 바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월 17일 한국·일본·호주 등에 대해 코로나19 초기 바이러스 진압에 대체로 성공했지만 지금은 백신 접종에서 가장 뒤처진 선진국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를 ‘느림보’라고 꼬집었다. 접종 지연으로 경제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CNN도 4월 16일자 기사에서 한국을 포함한 뉴질랜드·태국·대만·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대규모 발병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금은 백신 접종률이 낮다고 전했다. 또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이들 국가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백신 제조사와 백신 도입 계약에 빠르게 합의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워싱턴(미국)=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