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합작 중단하라” 글로벌 투자자들 거센 압박
“사업 철수하면 중국만 좋은 일”

[비즈니스 포커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해상 가스전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해상 가스전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글로벌 기업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사업 리스크에 직면했다. 포스코는 자회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강판을 통해 미얀마 가스전 개발 사업과 아연도금, 컬러 강판 사업 등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유혈 사태가 빚어지면서 포스코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얀마 인권 단체 저스티스포미얀마(JFM)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의 참여연대 등 시민·인권 단체들이 포스코가 합작 투자 사업을 통해 미얀마 군부 정권에 자금을 대고 있다며 군부 사업 관계 단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포스코의 주주인 네덜란드 연기금운용공사(APG)가 포스코에 “군부 통제를 받는 미얀마경제지주사(MEHL)와의 합작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스웨덴 공적연기금 제2국가연금펀드(AP2)도 포스코와 최근 미얀마 사업 관련 주주 대화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 단체들의 압박과 국제 사회의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다. 앞서 저스티스포미얀마는 네덜란드 공적연금(ABP)과 의료인연금(PFZW)을 압박해 “미얀마 군부와 연계돼 있는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 지분을 처분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미얀마 유혈 사태로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
세계에서 가장 큰 1조3000억 달러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는 미얀마 군부와 협력을 이유로 일본 주류회사 기린 홀딩스를 투자 회수 감시 기업에 포함시켰다. 기린은 미얀마 군부와의 협업 관계 단절을 선언했지만 사업 완전 철수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하는 프랑스 석유화학 기업 토탈에도 국제 인권 단체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지만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토탈이 생산하는 가스는 미얀마와 태국 북부의 전력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파트리크 푸얀 토탈 최고경영자(CEO)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해 “분노한다”면서도 “미얀마에서 가스 생산을 중단하면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인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가 지배하는 미얀마경제지주사(MEHL)와 미얀마경제공사(MEC)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결국 포스코강판도 군부 기업과 관계 청산에 나섰다. 포스코강판은 4월 16일 MEHL와의 합작 관계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포스코강판은 1997년 MEHL과 합작해 미얀마법인(미얀마포스코C&C)을 설립했다.

미얀마법인은 포스코강판이 지분 70%를, MEHL이 30%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강판이 현지 사업을 철수하는 것이 아니고 MEHL의 지분 30%를 인수할 계획이다. 포스코강판은 “합작 관계 종료에 따른 현지 고용이나 이해관계인 등에 대한 영향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00년 미얀마국영석유가스회사(MOGE)와 계약하고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하고 있다. 미얀마 북서부 해상 가스전을 개발, 시추해 중국에 판매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전신인 대우실업 때부터 가스전 사업을 추진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때 미얀마 A-1, A-3 광구 운영권을 따냈고 2013년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 국영석유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2013년부터 2043년까지 30년간 중국에 판매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

가스전 사업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캐시카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 대부분은 자원 개발 부문에서 나온다. 자원 개발 부문의 영업이익은 실질적으로 미얀마 가스전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2020년 포스코인터내셔널 전체 영업이익은 4745억원으로 그중 미얀마 가스전 영업이익은 3056억원이다. 미얀마 가스전에서 전체 영업이익의 64.4%를 올리는 것이다.

국제 정세 불안에도 미얀마 가스전은 차질 없이 운영되고 있다. 박종도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생산 설비와 해상 파이프라인이 해상에 있어 육상 지역에서 발생한 쿠데타와 그에 따른 대규모 시위 등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중국 국영가스사 CNUOC에 미얀마 군부가 가스전 운영에 인위적인 제약을 가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철수하라는 국제 인권 단체들의 계속되는 요구다. 미얀마발 리스크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로 부각될 염려도 높아지고 있다. ESG가 자본 시장의 큰 투자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비인도적·비윤리적인 요소가 있는 사업들이 글로벌 투자 기관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탈석탄을 선언하고 한화가 유럽에서 비인도적인 무기로 분류돼 투자가 금지된 분산탄 사업을 매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양곤 AP=연합뉴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양곤 AP=연합뉴스
ESG에도 악영향 우려
책임 투자를 강조하는 글로벌 연기금들은 대표적으로 ESG에 반하는 기업(주로 무기, 환경 오염, 아동 착취, 담배 생산, 무기 판매 등과 관련 있는 기업)들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과 우수한 ESG 성과를 보이는 기업 혹은 프로젝트를 선별해 투자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글로벌 ESG 투자 중에서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영역의 규모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에 따라 노르웨이 GPFG는 2017년 환경 오염과 관련 있는 매출액이나 전력 생산량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배제한 바 있다. 포스코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도 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미얀마발 리스크가 장기화한다면 ESG 블랙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리스크는 예측 가능과 불가능, 통제 가능과 불가능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포스코는 기업이 예측 불가능했으나 통제 가능한 이슈라고 생각된다.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는 결국 기업의 의지에 달렸다”며 “ESG에 따라 사회적 책임, 윤리 경영 등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ESG를 위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액화천연가스(LNG)도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전기차 부품 관련 사업 등 친환경 신사업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스전 사업을 중단하거나 철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가스전 사업 중단의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막대한 손실과 소송 리스크가 불가피하다. 기업 주주의 이익과 ESG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가스전 사업은 인도국영석유회사와 한국가스공사 등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가스전 관련 사업 지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51%, 인도국영석유회사(ONGC) 17%, MOGE 15%, 인도국영가스회사(GAIL)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8.5%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가스전 사업을 중단하거나 MOGE로 향하는 수익금 지급을 중단한다면 생산물 분배 계약(PSC)을 위반하게 돼 가스전 사업의 광권과 운영권이 박탈될 수 있다. 생산물 분배 계약은 자원 개발사와 주최국 사이에 맺는 계약으로 자원 개발사의 개발 비용 보전 후 개발사와 주최국이 생산물에 대해 받게 될 수익 비율을 규정하는 계약이다.

또한 가스 생산과 판매 등 운영 과정 전반에 거쳐 장·단기 계약을 통해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수많은 거래처와 소액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인들로부터 법률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당할 수 있다.
포스코 사옥  /연합뉴스
포스코 사옥 /연합뉴스
소송 감수하고 철수해야 하나 ‘딜레마’
가스전 사업 중단 또는 철수 결정이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군부 탄압을 막는 효과적인 제재 수단인지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가스전 가동을 중단하면 미얀마 LNG 발전소로 연료 공급이 끊겨 열악한 미얀마의 전력 생산 감소가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군부가 아닌 시민들이 실질적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가스전 사업이 중단된다면 사업이 중국 기업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얀마 정부가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외국 기업에 가스전 사업권을 넘길 가능성이 큰데 그동안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해 온 중국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얀마는 세계 10대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그뿐만 아니라 석탄·철광석·동·니켈 등 전략 광물을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의 자원 부국이다. 군부 독재로 인해 정부 정책의 일관성·투명성 결여, 인프라 부족,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수십 년간 고립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대우 시절부터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로 사업을 일궈 놓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이대로 철수한다면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미얀마 쿠데타 발발 시점부터 배후 의심을 받아왔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효적인 군부 제재를 하지 못 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가스전 사업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미얀마 군사 정권에는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ESG가 시대적인 흐름이고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 기업의 사업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ESG를 의식해 알짜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라며 “만일 포스코가 ESG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중단 또는 철수를 결정한다면 핵심 수익원을 잃게 되면서 계속 기업으로서 존속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ESG 리스크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