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로 살아난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독주 맹추격
토스 이어 금융지주사도 신규 진출 눈독

[스페셜 리포트]

출범 5년째를 맞은 인터넷 전문은행(인터넷 은행)이 대대적인 새판 짜기를 예고하고 있다. 선두 기업인 카카오뱅크는 주식 시장 상장을 통해 ‘메기’에서 ‘공룡’으로의 변신을 예고한다. 한동안 위기를 겪은 케이뱅크는 2030세대 가입자와 함께 수신액이 크게 늘어나며 부활했다. 간편 결제 시장의 선두 업체인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뱅크도 출격을 앞두고 있다. 기존 금융지주사들도 인터넷 은행 진출에 눈독을 들이며 반격의 채비에 나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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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창구를 방문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금융 업무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인터넷 뱅킹을 통한 대출 신청 서비스 이용 건수는 하루 평균 2만여 건으로 전년보다 39% 증가했다. 대출 신청 이용 금액도 약 4800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151% 뛰었다.

모바일 뱅킹 시장은 성장률이 더 가파르다.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대출 규모를 무섭게 불려 나가고 있다. 출범 첫해인 2017년 약 5조원이던 두 은행의 신용 대출 잔액은 2020년 약 20조원을 넘어섰다. 3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특히 금융지주사들은 카카오뱅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은행을 비롯해 증권·보험·카드 등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발돋움하며 수십년간 영업에 힘쓴 지주사들이 갓 성장 중인 카카오뱅크보다 기업 가치에서 밀리는 처지에 몰렸다.
비상하는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의 성장세가 파죽지세다. 대중적 플랫폼인 카카오톡을 활용한 비대면 채널로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 활성화 지표로 간주되는 월간 순사용자 수(MAU)는 올해 3월 기준 1300만 명을 기록, 한국 모든 은행 앱을 통틀어 1위다. 수신 잔액은 올해 들어 25조원을 돌파했다.

2017년 7월 출범한 후 2년 만인 2019년 연간 첫 흑자(당기순이익 137억원)를 냈다. 2020년엔 1분기 만에 18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고 연간으로는 1136억원을 달성했다. 해외 인터넷 은행들이 통상 흑자로 전환되는 데 8년 이상이 걸렸던 것에 비해 성장세가 가파른 셈이다. 올해 4월엔 상장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르면 7월 주식 시장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선 카카오뱅크의 기업 가치를 20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장외 시장에서 카카오뱅크의 기업 가치는 4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 1위 금융지주인 KB금융(약 24조원)과 2위인 신한지주(약 21조원)의 시가 총액을 넘어서는 규모다. 하나금융(약 14조원)과 우리금융(약 8조원)을 훨씬 앞지른다. 카카오뱅크가 상장을 통해 몸집을 불리면 자본금을 그러모으고 더 공격적인 영업을 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지주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카카오뱅크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이 몰리지만 위험 부담이 큰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제휴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금융권과 빅테크(대형 IT 기업)들이 일제히 뛰어든 마이데이터 플랫폼 사업 신청도 아직까지 검토 중이다.

고평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0년 중순만 하더라도 증권가는 카카오뱅크의 기업 가치를 5조6000억~9조원 사이로 추정했다. 카카오뱅크가 현재의 추정처럼 20조원의 기업 가치로 상장한다면 주가순자산배율(PBR)은 10배로 계산된다. 한국 금융지주사의 PBR이 0.3~0.4배인 점을 감안하면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PBR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이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카카오뱅크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 확대보다 ‘금융권 메기 효과’라는 인터넷 은행의 애초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의 성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면서도 “카카오뱅크의 비즈니스 중 기존 은행이 하지 않는 서비스는 없다. 새로운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대출 영토 확장을 검토 중이다. 현재 카카오뱅크는 일반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 등 개인 신용 대출만 상품으로 있어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하지만 비대면 주택 담보 대출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부동산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챙겨야 할 서류도 많아 100% 비대면으로 대출을 진행하기 어렵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 단독 주택 등은 가격을 표준화하기가 쉽지 않아 비대면으로 상품을 내놓기 쉽지 않다. 시중은행과 케이뱅크가 이미 내놓은 ‘비대면 주택 담보 대출’ 상품이 아파트에 한정돼 있거나 이미 신용이 검증된 대출의 대환(갈아타기) 상품인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카카오뱅크가 기존에는 없던 비대면 주택 담보 대출 상품을 내놓는다면 비대면 서비스의 한 획을 긋는 셈이다. 시중은행이 카카오뱅크의 비대면 주택 담보 서비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현재 카카오뱅크는 주택 담보 대출과 기업 대출의 기획과 운영을 맡을 담당자 채용을 진행하는 등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본 확충 후 기업 대출과 주택 담보 대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인터넷은행 새판 짜기…4가지 관전 포인트
구사일생 케이뱅크
최근 케이뱅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1분기 동안 172만 명의 고객을 확보, 누적 고객 수(4월 말 기준)가 500만 명을 넘었다. 카카오뱅크와 비교하면 고객 수가 3분의 1 수준에 그치지만 케이뱅크의 추격전이 거세다는 평가다.

수신 성장률도 가파르다. 2020년 수신 성장률은 2019년 대비 63.9%(2019년 말 총수신 2조2845억원)나 뛰었다. 출범한 지 5년째인 올해 4월엔 수신 잔액이 12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전북은행 총수신(2020년 말 기준·약 16조원)에는 조금 못 미치고 제주은행의 총수신(약 5조원)보다는 두 배 큰 수준이다. 여신 잔액은 2020년 말 2조9887억원에서 올해 4월 4조6800억원으로 1.5배 증가했다.

그동안 케이뱅크는 ‘한국 제1호 인터넷 은행’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존재감이 없었다. 은행권의 혁신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2017년 4월 출범했지만 은산분리 규제에 가로막혀 자본금이 유입되지 않으면서 ‘메기’가 아니라 수면 위에서 숨만 쉬는 ‘붕어’로 전락했다. 은행업 특성상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순익이 발생한다. 자본을 늘려야 주택 담보 대출 등 원활한 대출 영업이 가능하고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케이뱅크는 출범 후 자본 확충을 위한 증자가 수개월째 지연됐다. 2018년 2차 유상 증자 땐 당초 1500억원 규모로 추진했지만 30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당시 케이뱅크는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KT·NH투자증권·GS리테일·한화생명·KG이니시스·다날 등 다수의 주주로 구성됐다. 우리은행은 지분율이 높지 않아 대주주 권리를 행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설립 인가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KT는 산업 자본이 금융회사에 대해 4% 이상 주주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한다는 ‘은산 분리’ 규정에 걸려 증자 규모를 늘리기 어려웠다.

2019년 IT 기업에 한해 은산 분리가 완화된 후 KT가 케이뱅크 지분을 34%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됐지만 이번엔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발목이 잡혔다. 과거 KT가 지하철 광고 입찰 담합으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7000만원의 벌급형을 받은 전력과 황창규 전 KT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점 등이 걸림돌이 됐다. 결국 케이뱅크 자본은 2년 만에 동났고 급기야 모든 신용 대출 영업이 1년간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공격적인 마케팅 진행은커녕 신용 관리 서비스 등 신사업 진출도 어려웠고 겨우 라이선스만 유지했다. 사실상 식물 은행 상태였던 셈이다. 2019년 당기순손실이 1008억원까지 늘어났다.

케이뱅크가 변곡점을 맞은 것은 4000억원(2020년 7월) 규모의 자금이 수혈되면서부터다. KT는 자회사인 BC카드를 케이뱅크의 최대 주주로 올린 뒤 증자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당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우회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어쨌든 케이뱅크는 벼랑 끝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총알이 충전되자 케이뱅크는 파킹 통장 ‘플러스박스’ 등을 선보이며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파킹 통장은 여유 자금을 보관할 수 있는 수시 입출금 통장인데 케이뱅크의 플러스박스는 최대 1억원까지 하루만 맡겨도 연 0.7%(현재 0.5%)의 금리를 제공한다. 통상 시중은행들의 연간 정기 예금 금리가 0%대 중·후반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케이뱅크가 최대 1%포인트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소비자를 공격적으로 그러모은 것이다.

대출 시장에도 1~2%대의 낮은 금리를 내세우는 한편 제출 서류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편리성’을 강화했다. 2020년 8월 대환·생활 자금 용도의 ‘100% 비대면 아파트 담보 대출’ 상품을 선보였는데 30분 만에 완판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약 7개월 만인 올해 4월 실적이 5000억원을 돌파했다.

또 오픈 전략으로 신한·우리카드와 단기 제휴하기도 했고 KT나 업비트(한국 상위 가상화폐 거래소) 등 플랫폼과 손잡기도 했다. 대중적 플랫폼을 앞세워 수신을 늘린 카카오뱅크와 달리 케이뱅크는 중심이 되는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케이뱅크의 오픈 전략은 주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중 가상화폐 광풍에 힘입어 업비트와의 제휴가 대박을 쳤다. 업비트에 상장된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선 케이뱅크 계좌가 필요하다. 케이뱅크 수신 잔액이 10조원을 돌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가상화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2030세대가 많이 가입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약 9만 명이었던 2030세대 고객은 올해 1분기 약 345명으로 38배나 뛰었다. 구사일생한 케이뱅크로선 당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발을 들였는데 어쩌다 보니 카카오의 자회사인 업비트의 수혜를 케이뱅크가 톡톡히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 신규로 유입된 고객을 어떻게 붙잡아 둘지다. 예금 증가분 대부분 가상화폐 투자금인데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해 투자 심리가 악화하면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업비트와의 제휴가 일회성 홍보를 위한 사은품처럼 전락할 수도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케이뱅크의 예금 운용 현황을 보고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플러스박스, 듀얼K 입출금 통장, 코드K 정기 예금 등 각종 수신 상품 금리를 0.1%포인트씩 내리는 등 건전성 관리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되면 금리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당장 묘책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우선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 2030세대들의 실속형 소비 패턴에 발맞춘 금융 상품을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용돈 계좌, 비상금 계좌 등 다양한 목적의 저축 상품을 선보인 것처럼 2030세대를 타깃한 편리하고 획기적인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제휴처를 발견하고 KT 등 그룹사·주주사와의 협업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새판 짜기…4가지 관전 포인트
토스는 인터넷 뱅킹 인가 대기, 금융지주는 기웃
간편 송금 앱으로 출발한 토스도 인터넷 은행 설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올해 2월 금융 당국에 본인가를 신청했다. 5월 인가를 받으면 7월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다. 토스뱅크까지 출범하게 되면 하반기부터 인터넷 은행 시장은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삼각 구도로 재편된다. 토스뱅크는 본격적인 경쟁에 앞서 일찌감치 스톡옵션을 내걸며 인원 충원을 진행하고 신용 평가 모델을 구축하는 등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토스 5개사 임직원 수는 현재 1000명에 달한다. 5년 전과 비교해 12배 정도 늘었다. 2000만 명에 달하는 토스 가입자도 강점이다. 토스는 라이선스를 따자마자 가입자 모두에게 바로 뱅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기존 금융그룹들도 반격의 칼을 갈고 있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은 인터넷 은행 설립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인터넷 은행 라이선스를 허용하는 안에 대해 금융 당국과 협의 중이다. 이들은 전통 은행 앱으로는 비대면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은행의 서비스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기존 은행 앱은 예·적금, 대출뿐만 아니라 여러 업무를 담아야 하는 데 반해 인터넷 은행은 주력 상품만 탑재해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내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기존 은행의 모바일 서비스 등과 중복돼 비효율이 발생하거나 계열사 간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디지털 조직을 정비하고 있는데 그룹 내 전문 조직이 또 생긴다면 경쟁으로 인한 출혈은 은행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으로 인터넷 은행의 영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로 공급자가 신중하게 대출해 주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비대면 서비스 상품이 축소될 수 있고 그동안 비교적 간단한 상품만 판매한 인터넷 은행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새판 짜기…4가지 관전 포인트

인터넷 은행, 중금리 대출에서 맞붙는다
금융 당국이 인터넷 은행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법과 도입 취지에 부합하게 중·저신용층 대출을 확대 공급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출범 당시 ‘중금리 대출 확대’를 전면에 내걸었던 인터넷 은행이 오히려 고신용자에게만 대출을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터넷 은행은 중·저신용자 중금리 대출 공급 계획을 달성하지 않으면 신사업 진출을 못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터넷 은행들은 올해 하반기 ‘중금리 대출’ 상품을 새로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 신용 평가 모델을 개발해 중금리 대출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인터넷 은행이 자리 잡고 생존하기 위해 고신용자 중금리 대출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며 “다만 앞으로는 설립 목적에 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