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동맹 강화?…‘금융 주도권’ 내주는 시중은행
국내 금융산업의 헤게모니를 지배해온 시중은행의 입지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안으로는 구시대적 시스템과 안일했던 위기대응 태세가, 밖으로는 빅테크, 핀테크 업체들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은행 중심'의 금융 시스템에 동시다발적 균열이 감지된다.

최근 신한은행은 국내 1위 부동산 정보 플랫폼인 네이버 부동산에서 전세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양측은 상호 협력을 통해 부동산 검색부터 개인별 대출한도, 금리 수준은 물론 대출신청까지 전세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한 데 모은 비대면 서비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결국 플랫폼 경쟁력 포기?

이전까지는 고객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받으려면 주로 은행 창구를 찾아야 했지만, 이번 제휴로 인해 네이버 자체 플랫폼만으로 전세대출을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으로서는 네이버 부동산에 유입되는 고객을 대거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신한을 비롯해 시중은행의 자체 플랫폼 활용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시중은행의 플랫폼 경쟁력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모바일 앱 사용자 및 편의성 측면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에 밀린지 오래다. 여기에 계좌조회부터 외환, 송금, 신용등급 조회, 대출 서비스 등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핀테크 업체들이 영위할 수 있게 된 것도 위기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자산관리 부문에서의 비대면 서비스 역시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핀테크 업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형국이다.

신한은행이 자체 플랫폼 경쟁력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네이버와 손을 잡은 것도 고객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 성격이 짙어 보인다. 다만 신한은행과 함께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고 있는 KB국민은행의 경우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올 초 KB국민은행은 지난 2년 가까이 이어오던 네이버와의 AI(인공지능) 금융 동맹을 사실상 중단했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와의 협업 소식이 잇따르는 시점에서 KB국민은행만이 5대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 중 유일하게 독자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빅테크의 종속되지 않겠다'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앞서 윤 회장은 올해 경영전략 방향을 '넘버원 금융플랫폼 기업'으로 잡으며 "빅테크의 금융 진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상품 판매에서 종합자산관리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경직적 노사관계로 체질개선 애로

이처럼 플랫폼 경쟁력은 금융 시스템의 헤게모니를 뒤흔들 중대 요인으로 등장했지만, 시중은행들의 경우 구시대적 고용구조가 또 다른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 인력 충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빅테크·핀테크 업체와의 인력 쟁탈전에서도 크게 밀리는 모습이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둔 토스와 IPO(기업공개)가 임박한 카카오뱅크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디지털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두 회사 모두 올 상반기에만 1000여명의 대규모 신규 채용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디지털 인력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시중은행의 경우 점포수 축소와 함께 인력 구조조정에만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국내 4대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 올 초 전년 대비 30~40% 가량 많은 2000여명의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빅테크, 핀테크 이직을 원하는 30~40대 직원들의 희망퇴직 지원이 늘면서 인력 운영 측면에서 또다른 고민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이같은 시중은행의 디지털 채용 애로는 경직적 조직문화와 함께, 성과가 아닌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 철수 계획을 발표한 씨티그룹 역시 한국 은행 특유의 임금 체계와 경직적 노사관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던 게 사실이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대형 금융지주사에 대한 인터넷전문은행 신규 허용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조직과 성과 측면에서 계열 은행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기존 고객들을 나눠갖는 식의 결과로 이어질 경우 계열 앱 하나 더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