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산업화 이면에 값비싼 대가 치른 한국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 추구해야
입사 초기 휴게실에 교수들이 모여 한담하고 바둑 두고 TV 보고 했던 일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연구 성과 내기, 강의 평가 경쟁에 쫓기면서 많은 교수들이 ‘방콕’에 들어갔다. 대학이나 교수들이 말로는 융합 연구를 강조하지만 실제 다른 학과 다른 전공의 교수들과 대화하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같은 건물, 같은 층을 사용하는 이웃 교수들끼리도 왕래가 드물다. 진짜 재미없어졌고 많이 아쉽다.
조직의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은 전혀 나쁠 것이 없다. 솔직히 지난날 오랫동안 한국 대학의 상아탑은 경쟁에서 상당히 자유로웠는데 대학 평가가 본격화된 지난 20여 년간 대학 교수들의 연구 성과 신장은 실로 괄목할 만하다.
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SCI), 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SSCI) 급 국제 저널에 발표된 한국 학자들의 연구 논문 수가 급증했고 주요 한국 대학들의 글로벌 랭킹도 크게 높아졌다. 사회적으로 많이 신경 쓰고 크게 투자한 만큼 수익 또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수적으로 또 양적으로 크게 신장된 대학 연구의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ESG 열풍 속 점수 따기 경쟁 우려
반면, 이런 양적 성장 속에서 잃은 것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 기초 연구에 대한 홀대,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의 실종, 연구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강의 소홀, 순위 경쟁 일변도의 대학 정책과 잦은 학과 통폐합, 교수들 간의 인화 부족, 일부 교수의 잦은 이직, 대학 간 격차 심화와 일부 지방 대학들의 어려움 등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단기 고속 산업화 과정에서 민주화 탄압과 독재, 부정부패, 빈부 격차 확대, 경쟁 심화, 물질 만능 사회에서 인성 파괴,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비 급증, 결혼 기피와 출산율 급감, 노동자 인권 등 복지 소홀, 윤리 경영 실종, 사회적 책임 등한시, 환경 파괴 등 값비싼 대가를 이제 우리와 우리 후세대가 치러야 하는 것과 그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업계의 분위기가 뜨겁다. 손에 확실하게 잡히지 않아 막연히 그냥 중요하겠지 싶었던 윤리 경영이나 친환경 경영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ESG를 강조하는 투자가 아니면 자본 조달도 힘들고 ESG 경영에 소홀한 비즈니스에는 고객들이 등을 돌린다. 이제 우리가 소홀히 해 온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거버넌스 향상에 신경을 쓰면서 대한민국 비즈니스의 ESG 경영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분명 3년 후, 5년 후, 10년 후 한국 비즈니스의 ESG 환경은 상당히 좋아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너 나 없이 ESG를 외치는 분위기에 휩싸여 점수 따기나 평가 위주의 표면적인 ESG 등급 올리기 경쟁에 몰입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된다.
ESG 경영은 내용적으로 지속 가능 경영이다. 긴 호흡으로 비즈니스의 체질 개선과 문화 조성이 정답이 되는 것으로,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처방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단기 고속 산업화가 그러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의 ESG 강조는 정말로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조금 더 신중하게 서두르지 말고 제대로 챙겨 나가자.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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