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향 그래프가 말해 주는 진실…“비트코인은 부상하고 있는 거대한 산업의 중심”

[비트코인 A to Z]
 대폭락만 7번…그럼에도 비트코인은 강했다[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과 암호화폐가 폭락했다. 하락 속도를 처음 겪어 보는 신규 투자자들은 공포감에 질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은 훈계조의 조롱을 쏟아내고 있다. 가장 흥이 난 것은 경제학자들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비트코인은 피라미드 사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조개껍데기보다 정교하지 못한 암호화폐는 통화로도, 자산으로도 볼 수 없다고 했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가치의 근원이 모호해 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자신은 한 번도 비트코인을 산 적이 없다고 했다.

폭락의 공포, 이미 여러 차례

비트코인의 폭락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2년 이후 50% 이상 폭락한 것만 일곱 번이 넘는다. 폭락에도 불구하고 회의론자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은 다시 돌아왔고 돌아왔을 때는 거품이 꺼지기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에서 거품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회의론자들만의 관점이 아니다. 가격이 떨어질 때면 1초라도 빨리 매도하려고 달려드는 투자자들도 이 생각을 공유한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윗 하나에 쉽게 허물어지는 이유다. 회의론자들이 직접적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이런 폭락은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확천금을 향한 투기적인 욕망에 끌렸다는 비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재앙과도 같은 폭락장에서도 좋은 면을 찾을 수 있다. 성찰의 계기가 그중 하나다. 시장이 좋을 때 투자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합당한 근거를 갖는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폭락이 시작되면 쉽게 잊는다. 회의론자와 다를 바 없는 의심에 휘감겨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크루그먼 교수의 비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비트코인은 신규 투자자들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들의 배를 불리는 피라미드 스캠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는 맞는 명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자산 시장에 해당하는 명제다. 발행 시장이 아니라 자산 유통 시장에서의 수익은 자산 형성에 직접 기여하지 못한다.

신규 투자자의 돈이 기존 투자자의 수익으로 전환되는데 경영학에서는 이를 안목의 차이가 만드는 가치의 이전 혹은 발견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투자자는 신규 투자자보다 먼저 가치를 알아봤고 그 대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 보상 받는다. 이런 차이 때문에 자산 시장과 인수·합병(M&A)이 성립한다. 만약 같은 자산에 대해 모두가 동일하게 평가한다면 거래는 잦아들다가 자취를 감춘다.

만약 크루그먼 교수나 비트코인을 허겁지겁 매도하는 투자자들의 생각처럼 과거 투자자가 신규 투자자의 귀중한 자원을 뽑아 먹는 구조에 불과하다면 비트코인은 거품과 붕괴를 오가기만 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의 요동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주식 시장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요동이 더 빠르고 우상향의 추세가 더 분명하다는 것뿐이다. 경제학자들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분명한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과 무관하게 초기에 가진 관점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 가치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당위로 지나치게 멀리 나아갔다.

주식 시장은 2차 유통 시장이기 때문에 유입되는 돈이 회사 경영에 투자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시장은 코인이 신규로 발급되기 때문에 1차 발행 시장과 2차 유통 시장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비트코인을 주식 시장에 대비시키면 10분마다 유상 증자로 신주를 발행해 투입 금액을 회사 자본에 편입시키는 것과 같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는 투자자들의 돈이 프로젝트 주체들에게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정교하게 평가할 기준은 따로 있다. 업계가 투자자들의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트코인에 순유입된 자금 중 상당액은 채굴업에 대한 보상으로 쓰인다. 또 채굴자들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전기료로 지급한다. 전기료는 발전소의 수입이다. 발전소는 채굴자들이 아니더라도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너무 둔탁한 관점이다. 모든 발전소는 기술적인 이유로 버리는 전기가 있다. 전기 수요가 몰리는 피크타임 이외의 시간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소비해 준다면 이는 발전소 운영에 매우 요긴하다. 정기 노선을 운영하는 비행사가 피크타임을 제외한 시기의 티켓을 반값 할인해서라도 여행사에 선판매하려는 것과 이치가 같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프로젝트들도 돈을 낭비해 버리지 않았다는 근거는 풍부하다. 일단 이번 상승장이 2017년 상승장과 다른 점부터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7년의 상승장은 암호화폐 공개(ICO)가 주도했다. 새로운 자본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성급한 기대감이 미국증권감독위원회(SEC)가 모든 ICO가 유가 증권에 해당한다고 선언하면서 빠르게 냉각됐다. 만약 SEC가 ICO를 금지하지 않았다면 2018년 1월의 붕괴는 좀 더 부드러웠거나 연기됐을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선구안…투자 관점 살펴야

이번 상승장은 이더리움 기반의 디파이(DeFi : 탈중앙화금융)와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이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교환을 보증하는 유가증권의 남발을 막자 업계는 암호화폐에 가치물을 아예 저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NFT는 게임 아이템이나 예술품의 일부를 암호화폐에 담기 때문에 일종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SEC의 관할이 아니다. 디파이는 시장 가격을 가지고 있는 코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 금융을 실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중심이다. 발행자를 가둬도 프로그램만으로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정부가 막기 어렵다. 2017년 유입된 투자금을 활용해 업계는 지난 3년간 새로운 사업 모델을 모색하고 생태계 기반을 구축해 왔다고 봐야 한다.

물론 모든 이들이 정직하지는 않다. 상당수의 프로젝트가 애초에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스캠일 뿐이다. 또 투자자의 돈을 정직하게 투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젝트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투자자들의 돈은 영리하지만 정직하지 않거나 정직하지만 영민하지 않은 이들이 소모해 버린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섭리와 같다. 그럼에도 정직하고 영리한 소수가 생태계를 확장시킨다. 너무나 분명한 우상향 그래프가 말해 주는 진실이다.

2000년 인터넷 붐이 붕괴될 당시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인터넷 붐의 붕괴로 많은 투자자가 돈을 잃어 버렸지만 그들의 돈은 페이스북과 같은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그간 인터넷은 음란물과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건전하지 못한 수요 덕에 빠르게 발전한 스트리밍과 실시간 상호 작용 기술은 결국 신종 코노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언컨택트 플랫폼이 오프라인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을 성공적으로 대체하는 데 밑거름으로 사용됐다.

이제 투자자에게 남은 과제는 선구안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오히려 정직하고 영민한 이들을 가리기 어렵다. 그들의 진가는 폭락을 견디고 살아남는 것으로 증명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시간과 자원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투자자에게는 방법이 있다.

집합적 투자를 하면 된다. 디파이나 NFT에 투자하고 싶다면 이들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이더리움을 선택하면 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산업의 부상에까지 걸치고 싶다면 역시 비트코인이 적절한 선택이다. 개별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수익도 위험도 모두 크지만 정답은 없다. 투자자의 자금력과 정보력에 달렸다.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는 경제학자들의 주문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비트코인은 부상하고 있는 거대한 산업의 중심이라는 관점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상 7년이라는 시간을 놓고 보면 영민한 이들보다 순진하게 포지션을 고수하는 이들의 투자 성과가 훨씬 좋았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