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인프라 투자 및 복지 지출 계획 때문…공화당 “경제 옥죌 것”

[글로벌 현장]
바이든 첫해부터 '예산 전쟁' 불붙었다

미국 정치권에서 ‘예산 전쟁’이 불붙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조 달러(약 6642조원) 규모의 내년도(2022 회계연도, 2021년 10월~2022년 9월) 예산안과 10년간 3조6000억 달러(약 3985조원)에 달하는 ‘부자 증세’를 제안하면서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미국 경제 재건과 불평등 해소,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와 교육·복지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공화당은 ‘바이든표’ 지출안과 증세안이 인플레이션과 재정난을 악화시키고 경제와 일자리를 옥죌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바이든 첫해부터 '예산 전쟁' 불붙었다

바이든, ‘초대형 팽창 예산’ 제안
백악관은 5월 28일(현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및 교육·복지 지출 구상을 반영한 6조100억 달러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이는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올해 연방 정부 지출 추정치 5조7640억 달러보다 4% 정도 많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예산(4조4470억 달러)보다 35% 정도 늘어난 규모다. 미국이 백신 덕분에 최악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벗어났는데도 취임 첫해부터 ‘초대형 팽창 예산’을 짠 것이다.

CBO는 지난 2월 ‘2021~2031년 예산 및 경기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연방 정부 예산을 약 5조 달러로 추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예산안은 이보다 1조 달러나 많다.

블룸버그통신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큰 정부’ 구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수준의 연방 정부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 연방 정부 지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40%를 넘었다. CBO는 이 비율이 2020년 31%, 2021년 26%에서 2022년엔 22%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6조 달러 규모의 예산이 확정되면 내년 GDP 대비 재정 지출 비율은 26% 수준을 유지한다. 확장 재정은 비단 내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 정부 예산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 2031년엔 8조2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끝나가는데도 정부의 살림살이가 급격히 불어나는 것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및 복지 지출 계획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8년간 2조300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와 10년간 1조8000억 달러의 복지·교육 지출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중 법적 의무 지출을 뺀 정부 재량 예산은 1조5200억 달러로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제외한 올해 재량 지출 예산보다 8.4% 늘었다. 이를 부처별로 보면 교육부가 2980억 달러로 올해보다 41%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다. 이어 상무부가 114억 달러로 28%, 보건복지부가 1317억 달러로 24% 늘어난다.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을 반영해 인프라 투자와 교육·복지 지출 예산을 대폭 늘린 결과다.

반면 국방부 예산은 7150억 달러로 1.6% 증가에 그친다. 국방 예산은 중국 억지를 위한 핵전력 현대화와 미래 전력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이든 첫해부터 '예산 전쟁' 불붙었다

10년간 3조6000억 달러 ‘부자 증세’
미 재무부는 백악관이 내년 예산안을 공개한 날 10년간 3조6000억 달러 규모의 증세 방안을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재무부의 증세 방안은 법인세율 인상(21%→28%) 8550억 달러,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15%) 5340억 달러, 기업 탈세 방지 3900억 달러 등 기업 관련 증세가 1조7790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국세청 세무 조사 강화를 통한 증세도 7790억 달러에 달한다. 국세청의 세무 조사 상당수도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37%→39.6%)과 자본 이득세 인상을 통한 증세는 6910억 달러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대상은 연간 부부 합산 소득 50만9300달러 이상, 개인 소득 45만2700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개인 기준 연소득 40만 달러 이상을 대상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재무부 발표는 이보다 대상을 좁혔다.

자본 이득세는 부동산·주식·채권 등의 매각 차익에 붙는 세금이다. 현재는 1년 이상 보유한 자산을 팔 경우 투자 수익에 최대 20%의 연방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100만 달러 이상 투자 수익에 대해선 이 세율을 39.6%로 올릴 계획이다.

이 같은 대대적 증세 방안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증세 이후 28년 만에 추진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교육·복지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로·교량·철도 같은 전통적 인프라 개선 외에 반도체 생산 확대, 전기자동차 인프라 확충 등 미래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초대형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또 ‘미국 가족계획’이란 이름으로 취학 전 아동 및 커뮤니티 칼리지(전문대) 무상교육 등 교육·복지 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줄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재무부는 증세 계획이 원안대로 실행되면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약 4조 달러의 인프라 및 교육·복지 프로그램 재원을 15년에 걸쳐 세수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재정 적자다. 백악관 구상대로라면 203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재정 적자가 1조3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31년 117%로 치솟는다. 작년엔 100%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법인세율 인상과 고소득층 증세 등을 통해 세수를 늘릴 방침이지만 상당 기간 재정 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공화당에선 당장 부정적 반응이 나왔다. 케빈 크레이머 공화당 상원의원은 백악관의 내년 예산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상원 금융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마이크 크레이포 의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안에 대해 “규제와 관료주의로 경제를 옥죌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대규모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과 재정난을 촉발할 수 있고 증세는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에 맞서 9280억 달러 규모의 ‘공화당표’ 인프라 투자 방안을 내놓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화당의 반발 등을 감안해 인프라 투자 규모를 2조3000억 달러에서 1조7000억 달러로 축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공화당은 보다 광범위한 인프라 확충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도로·교량·초고속 통신망 등 전통적 인프라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 ‘중도파’ 조 맨친 상원의원이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는 데 반대하며 25% 인상안을 지지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 구상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점도 변수다. 민주당은 현재 상원에서 공화당과 각각 50석을 양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 한 명이라도 이탈 표가 나오면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의회 논의 과정에서 증세 폭과 지출 규모를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