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 ERM코리아 대표 “ESG는 비즈니스의 새로운 규범…규제 대응 차원 접근은 한계”

[ESG 리뷰] 인터뷰

전 세계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컨설팅을 해 온 50년 업력의 ERM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컨설팅 회사로 자리잡았다. 서현정 ERM코리아 대표는 20년간 아시아 지역의 금융과 투자, 지속 가능한 기업의 투자 가치를 분석해 왔던 전문가다. 서 대표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서 대표는 일찍이 사회 책임 투자와 국제 사례 분석에 특화된 커리어를 쌓아 왔다. 서 대표는 유엔 PRI 한국 매니저로 3년 근무하며 책임 투자 원칙 설립, 국제 연기금의 사례를 소개하고 미국에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서 대표의 움직임을 눈여겨본 ERM의 한국 지부와 인연이 닿아 대표로 부임했다. 탄소 배출량에 민감한 화학·에너지 기업뿐만 아니라 식품·금융·건축·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ESG 전문가를 찾고 있다.
서현정 ERM코리아 대표.사진=김기남 기자
서현정 ERM코리아 대표.사진=김기남 기자
-ESG는 사회적 책임(CSR), 녹색 경영 등 명칭은 다르지만 유사한 개념은 존재했습니다. 최근 ESG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년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 세계의 비즈니스가 닫히고 경기가 침체됐죠.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가 현실화할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체험한 거죠. 기업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영과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ESG가 제시된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기후 위기입니다. 올해는 파리기후협약의 원년이기도 합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공동의 목표가 설정됐습니다. 이후 각종 규제와 정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수준의 흐름이 모든 국가들이 ESG를 고려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ERM을 찾는 기업들의 고민거리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ESG 준비 단계에 따라 다릅니다. 진입 단계의 기업들은 기관에서 평가한 등급에 대한 평가 대응책을 가장 많이 걱정합니다. 또한 기업이 속한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어떤 평가 지표를 보고 ESG 경영의 방향성을 설정하면 좋을지, 핵심성과지표(KPI)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크죠. 어느 정도 내부에서 ESG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기업은 각 분야별로 세부적인 계획을 고민합니다. 한국은 이제 넷제로 목표,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등을 준비하며 환경 부문의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환경 부문에 대한 세부 목표는 현재 탄소 배출량이 얼마인지, 앞으로 몇 년 동안 얼마나 줄여야 할지 미리 산정해야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산정치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량 스코프 3(Scope 3)까지 산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려워요. 그런 부분을 함께 고민하고 데이터 산출까지 돕고 있습니다.”

-KPI와 ESG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ESG를 제대로 운영하고 기업 전체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ESG를 C레벨, 책임자급의 KPI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CEO)의 연봉 책정을 예로 보죠.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는가, 리스크에 대한 사후 처리는 어떻게 했는가 등 ESG 경영 결과를 반영해 산정된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는 거죠. 투자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기업 측에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요구들을 회사 운영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ESG위원회를 CEO 산하 조직이 아니라 이사회에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투명하고 공정한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ESG위원회의 설립 이유는 ESG 어젠다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느냐를 표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은 ESG위원회 구성도 꼼꼼히 평가합니다. CEO가 위원장 겸직이거나, 최대 주주가 많이 속해 있다거나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거죠. 특히 한국은 재벌 구조, 가족 경영의 기업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ESG위원회를 독립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ESG 시장이 확대되면서 덩달아 관련 컨설팅 시장도 커졌습니다. ERM만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차별점은 경험입니다. ERM은 국제적으로는 50년, 한국에서는 20년간 ESG를 다뤄 왔습니다. 그만큼의 노하우나 과제 수행 경험치가 쌓인 기업입니다. 전 세계 40개국에서 주요 글로벌 프레임워크에 참여했던 경험은 국제 시장이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됐죠. 특히 ESG 중 환경 범위는 과학적인 방법론이 필요한 부분이죠. 화학·토양·수질 등에 대한 연구와 진단을 해낼 수 있는 엔지니어들이 ERM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ERM은 ESG팀뿐만 아니라 안전·기후변화·보증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각 분야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업종과 무관하게 다양한 기업에서 문의를 받고 있고 글로벌 이니셔티브 가입 지원, 탄소 배출량 데이터 측정, 토질 오염 정도 측정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해외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의 대응 수준이나 속도는 어떻습니까.

“한국은 ESG 중 이제 막 환경 부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수준입니다. 기업들은 당장 환경 관련 규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 환경을 우선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거죠. 특히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는 올해가 원년이 될 겁니다. TCFD 프레임워크를 논의한 한국 기업은 작년 기준으로 5군데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해외 시장은 RE100과 넷제로, TCFD를 기본적인 경영의 틀로 잡고 장기적인 로드맵까지 완성한 상태입니다. 구글·아마존·넷플릭스·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테크 기업들은 작년에 넷제로를 선언하고 이미 목표치에 가까워지고 있죠. 조직의 체계성도 우수합니다. 지속 가능성 최고책임자(Chief Sustainability Officer)가 전문적으로 ESG 체제를 관리하고 있어요. 해외는 환경 이슈에서 생물 다양성과 인권 등을 다루는 사회 부문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통일된 지표에 대한 필요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국형 평가지표(K-ESG)의 실효성은 어떻게 보는지요.

“초기 기업을 위한 기본적인 길잡이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이나 규제 등은 이미 국제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만 논의될 주제는 아닙니다. 한국 기업도 해외 투자자나 기업과 끊임없이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흐름에 발을 맞출 수 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장기적인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ESG 측면에서 리딩 기업으로 꼽을 만한 곳이 있나요.

“ESG 영역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ESG 전문가를 찾는 것조차 힘듭니다. 같은 맥락으로 ESG의 완벽한 모델도 있을 수 없죠. 예를 들면 테슬라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기자동차로 환경 부문에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부문에서는 무노조 경영, 캘리포니아 공장 이슈 등으로 리스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완벽한 기업이 없듯이 꾸준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구글의 사례가 인상 깊었습니다. 구글의 서비스인 구글맵에서는 이동 경로에 따른 본인의 탄소 배출량을 알아볼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어요. 소비자들은 일상 속 서비스에서 기업의 ESG 임팩트를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환경 영향력도 확인할 수 있죠.”

-ESG 경영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에 조언할 것이 있나요.

“ESG 경영은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원 차원에서 기업의 자원, 재무적 상황, 산업 상황을 고려해 목표로 잡을 ESG 어젠다를 설정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ESG를 위해 사업을 어떻게 개선하고 어떻게 비즈니스에 반영하는지를 주주·투자자와 소통해야 합니다. 특히 ESG 경영 준비 단계에 있는 기업들은 비용이나 시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규정에 맞는 최소 규모의 체계만 갖추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미 ESG는 거대한 흐름이자 기업의 가치를 재는 새로운 기준이 된 상태입니다. 규제를 하나 넘겼다고 해서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는 얘기죠. 결국은 기업 생존 전략에 전부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ESG 경영에 ‘통합(integration)’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ESG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ESG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은 페널티를 받고 ESG를 잘하는 기업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죠. ESG는 이제 기업의 가치를 보는 통합적인 렌즈이자 규범이 됐기 때문에 보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과 대처가 필요합니다.”

인터뷰 장승규 편집장, 정리=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