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세 견조하지만 성장에 대한 기대 지나치게 높아…실적 장세 조건 무르익지 않았다
[머니 인사이트] 백신이 경제 정상화 속도를 이끌고 그 속도가 주식 시장을 결정한다. 정상화 여부의 가늠자는 ‘방역’에서 ‘백신’으로 넘어갔고 선두에 선 국가는 미국·영국·유럽이다. 이러한 선진국 중심의 백신 접종 가속화로 세계 인구의 집단 면역까지 1년이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신흥 시장(EM)의 백신 접종 속도는 더디다. 이러한 속도 차이가 선진국과 EM의 간극을 벌리고 있고 이는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이미 일부 원자재 생산국의 더딘 백신 접종 속도로 인해 운송·생산 차질은 물론 일부 저가 생산품의 소비 부진까지 확인되고 있다.인플레이션 상승 기대감 6월께 하락 전망
글로벌 경제의 전체 성적표는 우수하다. 지난해 우려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2021년은 실제 훨씬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선제적으로 탈출한 중국은 예외로 하고 미국·유로존·한국 등의 국가 모두 지난해 말 전망치 대비 2021년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보다 앞서간 주가가 부담스럽다. 이미 주가 수준은 금융 시장의 정상화 수준을 넘어 미래 성장 가치를 당겨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경기의 회복세는 분명히 견조하지만 이후 성장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져 있다. 기대를 낮춰야 한다. 필자는 그 징후가 이미 출현했다고 보고 있고 이를 병목 현상으로 인한 기업 마진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병목 현상의 경제적 의미는 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가격의 상승이다. 현 상황만 본다면 병목 현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긍정적 해석만 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이후 병목 현상은 2000년대와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수요 증가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글로벌 경제 편입과 EM의 수요 성장이 주원인이다. 수요 증가가 점진적이고 경기와 보조를 맞춰 진행됐다. 하지만 현 상황은 이와 다르다. 코로나19에 의한 수요 부진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출현한 단기적 수요 폭발과 각 국가, 특히 미국과 유로존 등의 지원금 정책에 의한 가계 소득 상승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보상 수요로 불리는 일시적 수요 회복이 마무리되거나 지원금 지급이 중단되면 수요 상승이 지속되기 어렵다.
수요 상승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으로 보는 이유는 수요가 아닌 공급을 주된 요인으로 보기 때문이고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유가 역시 이란과 미국의 합의 여부,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감산 연장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등락을 보여주고 있을 뿐 수요 확대 기대감이 유가 상승을 이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지나치게 낮았던 유가가 기저 효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지난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4.1% 상승했고 이에 대한 기저 효과는 1.33%포인트다. 결국 모멘텀에 의한 미국 CPI 상승은 2.77%라는 것이다. 기저 효과는 6월을 기점으로 점차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 증가율과 유가의 기저 효과 역시 6월이 정점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상승 기대감은 6월을 기점으로 하락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의 절대적 수준을 우려하고 있지 않지만 기업 실적 측면에서는 부정적 요인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정상화에 따라 임금이 올랐고 상품 가격도 상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수요가 아닌 비용이 기업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표상의 부담은 뚜렷하다. 엠파이어스테이츠지수의 지불가와 판매가의 차이는 이미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제조업 기업들이 중간재 가격 상승을 전가하거나 용인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구매자지수 역시 생산 재개 기대가 반영돼 급격히 올랐지만 세부 항목 추이를 보면 가격과 배송 속도에 힘입은 상승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다면 주문이 크게 늘어나 배송 속도가 길어질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은 이와 다르다. 장밋빛 전망, 견조한 성장 한참 앞서 있어
실례로 정보기술(IT) 부품을 보자. 발주에서 사용까지의 리드 타임이 1분기 말 메모리 반도체는 15주에 달하고 마이크로컨트롤러(MCU) 미 통신 관련 제품은 최대 52주로 관측된다. 지금 주문하면 내년 이맘때나 부품이 인도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 공급 부족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부품 공급 업체가 설비를 최대한 빨리 확장해 공급 부족을 해결하거나 부품 공급을 기다리지 못하고 생산을 감소시키는 결정을 내리거나의 선택만 남아 있다. 당연히 부품 업체들은 기존 라인의 가동률을 높이고 생산 설비 투자를 서두를 것이다. 하지만 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품이 공급될 때까지 최종재 생산 기업들은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그것이 쉽지 않다면 수익성 중심의 제품 전략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최근의 경향은 최종재 기업들의 가격 전가가 한계에 달하자 제품 믹스 개선을 통해 하이엔드 제품을 더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품 업체들에는 과거 대비 절대적 주문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미국의 기업 이익 추정치는 2분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마진율 하락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다. 즉 비용 상승 구간에서 최종 소비재로의 가격 전이가 만만치 않게 됨으로써 기업의 마진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국 코스피의 마진율은 3분기까지 긍정적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기업 마진율 상승 원인이 물량(Q)보다 마진(P)에 힘입은 바가 큼에도 이러한 전망의 차이가 있다. 누가 맞을까. 필자의 판단은 마진율이 과거 평균 수준으로 내려온 미국의 전망치에 더 신뢰가 간다. 다시 말해 한국의 2분기 이후 이익 기댓값은 높은 마진율을 적용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이후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더 올라 실적 장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마진(P) 확대가 아닌 물량(Q) 증가와 비용(C) 감소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아쉽게도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당장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Q와 C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협업이 가시화돼야 하고 이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보다 협력적이고 상호 보완적일 때 가능하다. 아쉽게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봉합되기보다 확대일로에 있다. 무엇보다 올해 3분기는 미·중 갈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9월로 다가온 홍콩 국회의원 선거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홍콩 보안법과 선거법을 통해 홍콩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9월 선거 이전 홍콩 국민들에 의한 시위는 좀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를 진압하는 중국의 태도는 강경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 탄압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인권’이 주는 의미를 감안할 때 홍콩 탄압이 가시화되면 미·중 관계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갈등을 경제로 접근해도 결론은 같다. 바이든 대통령 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미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다.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 4위의 국가로 한국이 3위, 중국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을 추월하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이라는 미국 내 생산 기지 건설 정책을 발표했다. 2015년 중국의 특허 건수가 미국을 추월하면서 2016년 이후 미국은 화웨이 제재 등 중국 IT 제재를 한층 강화했다. 현 상황은 둘 중 어느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 경제적 갈등 속에서 대외 의존적인 한국 수출 기업들의 Q 증가를 자신하기 힘들다.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5월을 고점으로 하락 추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저 효과로 인한 증가율 가속 구간이 마무리됐다. 수출 모멘텀이 점차 둔화되는 국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설비 투자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 분양 확대에 따른 건설 업종 수주 증가에 대한 기대감까지 감안할 때 투자와 소비의 증가세가 성장을 견인할 때가 된 것이다. 백신 보급 속도와 발맞춘 여행·호텔·유통 등의 서비스 업종 주가의 강세는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증거다. 증가한 소득으로 멈춰 있던 서비스 업종에 대한 소비가 늘어날 시기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경기의 회복 과정은 기대를 넘어 앞서갔지만 주가 수준은 이를 이미 반영해 왔다. 경제가 갑자기 침체 구간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고 주가가 급속히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견조한 성장을 한참이나 앞서 있다는 판단이다. 과도한 기대 영역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의 마진 증가율 기대도 미국처럼 내려와야 한다. 기대감이 낮아질수록 결과는 놀라움이 될 것이다. 아직 실적 장세의 조건은 무르익지 않았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