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식이 심화되면 위기로 대두…개방형 모델이 해법으로 부상

[테크 트렌드]
날개 없이 추락하는 플랫폼 경제, 대안은 없나
애플과 에픽게임즈 간 소송이 3주간의 치열한 논쟁 속에 5월 24일 막을 내렸다. 그동안 외신이나 한국 언론이 앞다퉈 비중 있게 다뤄 온 이번 소송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큰 반독점 재판 중 하나라는 점에서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애플은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인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다. 1976년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 입력 장치를 장착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내놓으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하드웨어 제품들을 내놓으며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08년 출시한 앱스토어는 작년 기준 200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간 5190억 달러(약 574조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는 거대한 앱 생태계를 이루며 애플을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자로 만들었다.

이에 비해 에픽게임즈는 게임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게임 업체다. 하지만 에픽게임즈는 단순한 게임 회사가 아니다. 게임 이용자만 3억5000만 명에 이르고 게임을 넘어 문화 현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메타버스형 플랫폼 포트나이트와 글로벌 양대 게임 엔진인 언리얼을 보유하고 있는 게임 개발사이자 유통 회사다. 언뜻 보면 경쟁 관계라기보다 상생의 파트너로 여겨지는 앱스토어와 게임 회사 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승자 독식이 지배, 회의론 대두

문제의 발단은 2020년 8월 게임 개발사인 에픽게임즈가 애플 앱스토어를 우회하는 자체 결제 서비스를 출시하면서부터다. 에픽게임즈가 자체 결제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불공정한 앱 유통 구조의 정점에 애플 앱스토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포트나이트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앱을 깔아야 하고 게임 내 가상화폐인 V벅스(V-bucks)로 아이템 등을 구매해야 한다. 문제는 그러면 오로지 애플 앱스토어 내 결제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애플은 인앱 결제에 대한 수수료를 30%나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자사의 정책을 위반했다며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 게임을 앱스토어에서 퇴출시키는 강수를 뒀다. 이로 인해 포트나이트의 기존 사용자는 게임 업데이트를 받을 수 없고 신규 이용자도 앱을 다운로드할 수 없게 됐다.

에픽게임즈는 즉각 반발하며 해시태그 ‘#FreeFortnite’ 홍보 캠페인과 IBM을 빅 브라더스에 빗댄 그 유명한 애플의 ‘1984 매틴토시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를 내보낸 후 애플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에픽게임즈는 고소장을 통해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수수료는 12%에 불과한데 비해 애플의 인앱 결제 수수료는 30%로 과다하며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은 반경쟁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애플은 에픽게임즈는 단지 수수료를 내고 싶지 않을 뿐 무임 승차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맞소송으로 대응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소송은 언뜻 보기에는 단지 양 사 간의 수수료 비율에 대한 시각 차이로 보인다. 실제로 애플 앱스토어 수익의 대부분은 인앱 결제에서 나오기 때문에 애플로서는 수수료 감소가 바로 앱스토어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애플은 30% 수수료 없이는 플랫폼 생태계 유지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소송의 본질은 단지 양 사 간의 인앱 결제 수수료 견해 차이라기보다는 애플과 구글 등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불공정하고 독점적인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이번 소송은 애플을 지지하는 파와 애플의 정책에 반대하는 파로 나눠 진행되고 있지만 자사의 관점에 따라 조금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자사 앱스토어인 구글 플레이의 모든 앱 결제에 대해 30%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인 구글은 애플을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구글은 에픽게임즈의 게임을 안드로이드 기반의 구글플레이 이외에서도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애플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애플과 같은 이유로 에픽게임즈와 소송을 당하고 있는 구글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같은 빅테크 기업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는 외부의 비난을 의식한 듯 기존의 PC에서의 윈도 스토어 수수료 30%를 12%로 낮추겠다고 발표하며 몸을 낮추고 있다.

에픽게임즈에 찬성하는 기업들은 ‘앱공정성연합(CAF : Coalition for App Fairness)’을 결성하고 나섰다. CAF는 앱스토어가 공정하게 운영돼 개발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출범한 단체로, 에픽게임즈를 포함한 스포티파이·베이스캠프·브릭스·블록체인닷컴·타일·플릭타입·커레리움 등 49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회사인 스포티파이는 에픽게임즈와 동맹을 맺고 애플의 앱 수수료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스포티파이는 특히 애플의 수수료와 앱스토어 규칙이 유럽연합(EU)의 경쟁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U 최고 반독점 집행 기관인 EU 집행위원회도 애플의 앱스토어가 공정 경쟁 규정을 위반했다며 벌금을 부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U는 지난 4월 애플이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하기 위해 자사 인앱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강제했을 뿐만 아니라 앱 개발자가 다른 저렴한 구독 방법을 사용자에게 알리는 방법을 제한함으로써 경쟁사인 스포티파이의 음악 스트리밍 앱을 압박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EU 규정 위반으로 애플이 유죄라고 판결이 나면 연간 매출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0년 애플의 연간 매출액 2745억 달러(약 306조원)를 기준으로 약 270억 달러(약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애플에 치명적인 것은 벌금 자체보다 애플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애플은 이러한 플랫폼 독점에 따른 외부 비난을 인식한 듯 올해부터 전 세계 중소 개발사들을 대상으로 앱스토어 수수료를 기존 30%에서 15%로 인하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일단 두 회사 간 1심 재판은 종료됐다. 이제 공은 이번 소송의 재판장인 곤잘레스 로저스 판사에게 넘어갔다. 로저스 판사는 늦어도 8월 중순 판결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항소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최종 승부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암운이 드리워진 플랫폼 경제

2000년 후반 애플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촉발된 플랫폼 경제는 지금까지 전 세계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플랫폼 경제는 오프라인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플랫폼을 통해 연결하고 수수료를 받는 수익 모델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앱이 된 페이스북·카카오톡·우버·배달의민족·쿠팡·에어비앤비 등은 플랫폼 경제 기반 없이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생의 생태계를 표방하던 플랫폼 경제는 역설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플랫폼을 가진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독과점화돼 버렸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소위 가팜(GAFAM)으로 일컬어지는 5대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 검색(Google), 앱스토어(Apple), 소셜 미디어(Facebook), 전자 상거래(Amazon), PC 운영 체제(Microsoft)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며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미 하원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0년 10월 4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독과점 조사를 단행했고 이후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애플은 최근 애플왓치마저 미국 의료 기업 얼라이브코어에 의해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되면서 나락의 길에 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애플과 에픽게임즈의 소송은 승자 독식이 지배하는 플랫폼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자 위기가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규칙을 만들어 참여하는 탈중앙화된 개방형 생태계인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가 부상하는 것도 이러한 독과점적 구조로 변질된 플랫폼 경제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인의 이익과 소비자 후생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등장은 플랫폼 경제의 미래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트리아 여류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처럼 플랫폼 경제가 다시 비상할 수 있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