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흥국화재 경영진, 회사에 11억원 배상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오너 일가 소유의 골프장 회원권, 고가 매입한 흥국화재
흥국화재는 2010년 8월 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주식을 100% 소유한 골프장의 회원권을 시세보다 현저히 비싸게 매입했다

주주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경영진이 골프장 회원권을 비싸게 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만일 회사가 그 회사의 오너 일가가 갖고 있는 골프장의 회원권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샀다면 문제가 될까. 해당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이 ‘오너 일가 배 불리기’라며 손해를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같은 사건을 두고 회장과 회사 이사들이 주주에게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최근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룹 계열사인 흥국화재의 전 이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21년 6월 2일 밝혔다.

회삿돈으로 시세보다 비싸게 산 골프 계좌

사건은 2010년 발생했다. 그해 8월 흥국화재는 대주주인 이호진 전 회장과 친척들이 주식을 100% 소유한 골프장의 회원권 24계좌를 계좌당 13억원씩 총 312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이 가격은 시세보다 현저히 비쌌다. 당시 비슷한 수준의 골프장은 회원권 가격이 계좌당 11억원이었다. 시장 평균 가격보다 약 50억원 가까운 값을 더 치른 셈이었다.

하지만 흥국화재 경영진은 이사회에 참석해 회원권 구입 안건에 찬성했다. 이 때문에 흥국화재의 자산을 활용해 대주주인 이 전 회장을 지원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금융위원회도 칼을 빼들었다. 회원권을 불리한 조건에 매입해 대주주를 부당 지원하는 행위를 했다며 흥국화재에 18억430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린 것이다.

흥국화재의 또 다른 주주들도 소송을 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경영진이 골프장 회원권을 비싸게 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선수급환급보증(RG)보험 사고를 둘러싼 회사 관리 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도 물었다.
흥국화재를 둘러싼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흥국화재는 2006년 8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선박 84척에 대한 RG보험을 인수했는데 이후 2010년 9월까지 선박 25척에서 보험 사고가 발생해 2105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게 됐다. RG보험은 선주가 조선사에 선박 제조를 주문하면서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때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이에 대해서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흥국화재에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사건은 결국 이 전 회장과 이사 15명을 상대로 2297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40%만 피해 인정

법원은 원고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측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당시 흥국화재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이 전 회장의 지시로 이사들이 골프장 회원권을 현저하게 불리한 조건에 매수해 회사에 66억여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중 40%에 대해서만 피고의 책임으로 인정했다. RG보험으로 입은 손실에 대해서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들이 감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해선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다. 그 결과 이 전 회장과 이사들에게 26억여원을 회사에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항소심인 2심 역시 골프장 회원권 매수에 대해 피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회원권을 환불받을 수 있었던 기간에 해당하는 10년만큼만 손해 기간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보다 줄어든 11억여원만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RG보험 손실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판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쟁점은 피고에 대한 ‘특정성’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진 이 사건의 쟁점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때 주주가 서면으로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사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더라도 소송의 규정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현행 상법 제403조는 ‘발행 주식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그 이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회사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소의 제기를 청구할 수 있고 회사가 그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아니한 때에는 위 주주가 즉시 회사를 위해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피고 측은 “소송 제기가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책임을 묻는 대상을 ‘골프장 회원권 매입을 결정한 대표이사들과 이사들’이라고만 칭했을 뿐 책임을 추궁하는 이사들의 성명을 확실하게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로 삼는 회사 이사들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을 냈다. 2심을 맡은 법원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로선 이사 등의 위법 행위의 가담자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어떠한 사항에 관해 소를 제기해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을 갖추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소를 제기한 청구서에 기재된 피고가 될 자와 책임 발생의 원인이 되는 사실은 위법 행위의 내용, 제소 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비춰 회사가 누구에 대해 어떠한 사항에 관해 소를 제기해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을 갖추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흥국화재에 대한 소 제기 청구서에 피고가 될 자의 성명이 특정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흥국화재가 보관하고 있는 이사회 의사록 등 연관된 자료를 통해 골프장 회원권 매입 등 관련 이사회에 참석하거나 결의한 의사들을 특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제소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돋보기] 용어 설명

주주대표소송·다중대표소송

주주대표소송은 현실적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소액 주주들이 일정 지분 이상의 의결권을 모아 집단으로 내는 소송이다. 상법 제403조에 따르면 발행 주식 총수의 1% 이상을 보유(상장회사는 6개월 전부터 0.0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회사를 위해 이사를 상대로 회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주대표소송의 청구 자격은 해당 회사의 주주로 한정된다.

일각에서는 대주주가 자회사를 세우고 자회사의 자산을 유용하는 등 위법 행위를 할 경우 대표소송만으로 이를 보상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자회사가 입은 피해 역시 결국 모회사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상법 일부가 개정돼 2020년 말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됐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해 손해를 입힌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해당 이사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비상장회사는 전체 주식의 100분의 1 이상, 상장회사는 1만 분의 1 이상 보유한 주주는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위법 행위를 방지하고 소주 주주의 경영 감독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논의돼 왔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선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시 기업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고 한국 기업들이 경영권을 노리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게 될 경우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50%를 보유할 때 성립된다. 현재 국회에서는 50%의 비율을 100%로 늘려 ‘완전모자회사’의 경우에만 다중대표소송제가 성립되도록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효주 한국경제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