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많은 ‘성수기’ 진입… 항만 체선으로 선박 품귀 현상 심해져
[비즈니스 포커스] 해상 운임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쯤이면 주춤할 때도 됐는데 한없이 올라가는 모양새다. 특히 기업들의 주요 수출 경로인 유럽 노선과 미주 노선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지난해 연말부터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화물을 실어 나를 선박을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임시 선박 투입 등으로 안정되는 듯했지만 선박은 여전히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운임 상승세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화물이 급증하는 3분기가 도래하면서 고운임 현상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운임 최고치 찍은 유럽 항로
컨테이너운임지수를 집계하는 상하이항운거래소에 따르면 해상 운임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6월 4일 3613.7에서 1주일 사이 90.86포인트나 상승했다. 6월 11일 기준으로 3703.93이다. 이는 2009년 10월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다. 5월 14일 이후부터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5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특히 아시아~유럽 항로의 운임 상승세가 두드려졌다. 아시아~유럽 항로의 6월 11일 운임은 TEU당(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6355달러로 전주 대비 468달러 올랐다. 이는 2021년 들어 최고치의 운임이다. 특히 6000달러대는 지난해 유럽 항로 평균 운임의 5배가 넘는다.
아시아~미국 동안 항로도 전주 대비 79달러 상승한 FEU당(1FEU는 40피트 컨테이너 1개) 8554달러를 기록했다. 아시아~미국 서안 항로만 168달러 하락한 FEU당 4658달러로 하락세를 보였다.
원양 항로의 운임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수급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위축을 우려한 선사들이 운항 감축에 들어가면서 선박 공급량 자체가 감소했다. 하지만 경기가 차차 회복되면서 수출 물량이 늘어났고 화물을 실어 나를 선박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다. 국제 해운협회인 발틱국제해사협의회(BIMCO)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컨테이너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고 2019년에 비해서도 6.8% 늘어났다. 특히 북미 서부는 전년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러한 기조가 지속되던 와중에 일부 외국 선사들이 ‘성수기 할증료’라는 명목으로 운임 인상에 나서면서 운임이 상승했다. 해운 시장에서 3분기는 전통적으로 성수기로 여겨지는 시기다. 특히 중국 중추절(한국의 추석)이 있는 9월을 앞두고 물량이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연말 연휴를 앞두고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로 인해 물량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향후 SCFI에 대해 “계절적 성수기로 진입해 고운임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자칫하면 수출 대란이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보상 소비와 경기 회복도 영향을 줬다. KMI는 “북미 지역은 컨테이너 수입이 최대치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소매 재고율이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어 상품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며 미국이 경기 부양책에 따라 3~6개월간 수요가 강세를 띠면서 고운임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6000달러대까지 운임이 상승한 유럽 항로는 선박이 항만의 수용 능력 이상으로 초과 입항해 선박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체선 현상’이 발생했다. 글로벌 선사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과 2위인 스위스의 ‘MSC’가 결성한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은 독일 함부르크항의 체선으로 인해 아시아~유럽서비스 ‘AE7’의 기항지를 독일 브레머하펜항으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입항 속도가 늦어지면서 선박이 빨리 비워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 4월 발생한 수에즈운하 선박 좌초 사태도 선복 부족 현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배편 구하기 힘든 화주들은 한숨
물론 고운임은 선사들엔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특히 운임이 오르면서 통상적으로 5월이면 새롭게 적용되는 선사와 화주 간 장기 고정 계약(SC)에도 긍정적 효과를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운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SC가 높아진 운임 기조 속에서 이뤄진다면 선사들의 실적이 앞으로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고운임은 벌써부터 선사들의 이익에 반영되고 있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MSC를 제외한 상위 10대 컨테이너 선사의 이자·세전 이익률은 역대 최고치인 38.2%를 기록했다. 그중 5개 선사는 이미 2020년의 이자·세전이익을 돌파했다. KMI는 이에 대해 “높은 세전 이익률은 컨테이너 처리량 증가보다 높은 운임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운임이 높아지면서 한숨이 깊어지는 것은 화주들이다. ‘설상가상’으로 항공 운임도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6월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화물 평균운임지수(TAC Index)의 지난 5월 홍콩~북미 노선 운임은 kg당 8.70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4월 kg당 8.48달러로 2015년 통계 이후 최고가를 기록한 것에 이어 5월에도 최고치를 찍었다. 대안책으로 내륙 운송이나 항공을 고려했지만 항공 운임까지 치솟으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국적 선사들은 수출 기업을 돕기 위해 타 노선에서 운영 중인 선박들을 원양 항로에 투입하고 있다. HMM은 한국 기업들의 원활한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미주행 임시 선박을 또 투입했다. 벌써 26번째 임시 선박이다. 부산신항에서 출항한 7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자카르타호’는 한국 수출 기업의 화물을 싣고 6월 13일 부산을 출발해 6월 26일과 7월 10일 각각 미국 롱비치와 타코마항에 도착한다. ‘HMM자카르타호’는 총 6000TEU의 화물을 실었는데 한국 물량 3707TEU 중 60%가 중소 화주의 물량으로만 선적됐다.
화주 단체 대표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6월 15일 HMM과 고려해운을 잇달아 방문해 최근 어려워진 중소기업의 선복을 확보하기 위해 “해상 운임 급등, 수출 선복 부족 등으로 수출이 어려운 만큼 지원을 늘려 달라”고 말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글로벌 해운 대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화주 단체 대표가 직접 선사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현재 중소기업들의 ‘선박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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