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빈국’ 한국, 광물 전쟁에서 열세
중국 의존도 낮추기 위해 해외 광물 투자 러시

[비즈니스 포커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리튬 호수를 탐사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리튬 호수를 탐사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전기차 시장의 성장으로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면서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2차전지의 핵심 원자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는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희귀 금속으로 구성되는데 전기차 수요 증가의 여파로 올해 들어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해당 광물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받기 위해 치열한 원료 확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배터리 원자재 광물의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 해외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인 원자재 시장 확보가 필수적으로 꼽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은 리튬과 코발트 자급률이 0% 수준일 정도로 배터리 원재료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니켈·코발트·망간은 희귀 광물로 전 세계 매장량이 적고 국가별로 지역 편재성이 심해 가격이 불안정하다. 리튬은 칠레·중국·아르헨티나·호주 등 상위 4개국이 전체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이 전체 공급의 58%를 차지한다. 전기차 시장의 고성장에 따라 배터리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자원 싹쓸이 중인 중국

업계에서는 한국이 배터리의 핵심 광물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해외 자원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글로벌 원료 소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은 2005년부터 남미와 아프리카에 각각 1449억 달러, 2720억 달러를 투자해 리튬과 코발트 등의 소재 확보를 위한 자원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스마트폰·노트북의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코발트를 사재기하고 있다. 2020년 말 중국 국가물자비축국(SBR)이 중국과 유럽에서 전기차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며 코발트 비축량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뒤 코발트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코발트는 리튬과 함께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는 광물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코발트 수요가 2040년까지 2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료 소재에 대한 중국의 높은 지배력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함께 경쟁 중인 한국과 일본에 위협적인 요인이다. 한국과 일본은 배터리 원자재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 가장 대표적인 배터리 원료 소재인 수산화리튬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비율은 2020년 기준 각각 81.1%와 79.8%에 육박한다.

문제는 중국이 경쟁국들을 견제하기 위해 배터리 핵심 원료를 전략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배터리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해외 자원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희소 금속 확보를 위한 4대 전략’을 수립하고 종합 상사들의 해외 광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희토류와 코발트 등 34개 전략 금속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특별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광물 확보전 뛰어든 K배터리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글로벌 배터리 패권 전쟁 속에서 중국의 배터리 원재료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광산 업체와 합작사 설립, 지분 인수 등 광물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터리 핵심 원료의 수급이 어려워져 배터리·소재 기업들의 원료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코발트는 중국의 사재기와 공급 불안, 높은 가격 때문에 구하기가 어려워 배터리 제조 기업들은 니켈 함량을 높이고 코발트 함량을 줄인 하이니켈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원재료인 니켈과 코발트 등을 생산하는 호주 제련 기업 QPM에 총 120억원을 투자해 지분 7.5%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QPM과 장기 구매 계약을 통해 2023년 말부터 10년간 7000톤의 니켈과 700톤의 코발트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또 세계 2위 리튬 생산 업체인 칠레의 SQM으로부터 8년간 5만5000톤의 리튬을 공급받는 계약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이 25%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와 10조원 규모의 양해각서(MOU) 체결하기도 했다.

삼성SDI도 2020년 11월 호주 QPM의 TECH 프로젝트를 통해 3~5년 동안 연간 6000톤의 니켈을 공급받는 MOU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호주 광물 채굴 업체인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즈와 황산코발트 및 황산니켈 구매 계약 체결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이자 코발트 생산 세계 1위 기업인 스위스의 글렌코어와는 코발트 장기 구매 계약을 했다.

포스코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프리카·호주 등지에서 흑연 광산 확보에 나서는 등 올해 들어 해외 원료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호주 니켈 광업·제련 전문 회사 레이븐소프의 지분 30%를 2억4000만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레이븐소프가 생산한 니켈 가공품(MHP, 니켈 및 코발트 수산화 혼합물)을 2024년부터 연간 3만2000톤(니켈 함유량 기준 7500톤)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이는 전기차 18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다.

포스코는 올해 1월 아프리카 탄자니아 마헨지 흑연 광산을 보유한 호주 광산 업체 블랙록마이닝의 지분 15%를 75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광산에는 총 8300만 톤의 흑연이 매장돼 있다. 포스코는 마헨지 광산에서 생산되는 음극재용 흑연에 대한 영구적인 구매 권한과 함께 블랙록마이닝의 이사 1인 지명권을 확보했다.

포스코는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매장량이 확인된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서 올해 안에 연산 2만5000톤 규모의 공장을 현지에 착공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양극재에 들어가는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을 전남 광양 율촌산업단지에 짓고 있다.


[돋보기]
환경·인권 문제없는 ‘착한 배터리’만 살아남는다

전 세계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로의 전환에 노력하고 있지만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배터리 양극재의 주요 소재인 코발트는 희소 금속으로 가격이 비싼 데다 채굴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아동 착취 문제가 제기되면서 기업들의 ‘착한 코발트’ 채굴 동맹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배터리 원자재에 대한 책임 있는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테슬라는 아동 착취 문제가 있는 분쟁 광물로 제조한 배터리를 공급 라인에서 배제했다. 배터리 업체들은 인권 문제와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윤리적인 원자재 수급에 앞장서며 환경·인권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책임 있는 광물 조달 및 공급망 관리 연합(RMI)’에 가입했다. RMI는 4대 분쟁 광물(주석·탄탈륨·텅스텐·금)과 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의 원산지 추적 조사와 생산 업체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인증 등을 실시하는 글로벌 협의체다.

삼성SDI는 심해 자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광물 개발을 막기 위해 BMW·볼보·구글 등과 함께 ‘심해저 광물 채굴 방지 이니셔티브’에 참여했다. 심해저에서 광물을 채취하면 자연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심해저 광물 채굴을 통해 공급되는 자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삼성SDI는 삼성전자·독일 국제협력공사·BMW그룹·바스프(BASF)와 협력해 ‘지속 가능한 코발트 채굴을 위한 산업 간 협력 프로젝트’도 이어 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2019년 글렌코어와 코발트 장기 구매 계약을 하면서 국제 협의에 따라 매년 코발트 생산 과정에 외부 감사를 받기로 합의해 아프리카 아동들의 노동 착취 등과 관련한 윤리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