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탄소 배출 감축의 징검다리 역할
기업 기후 데이터 정보 접근성 제고 필요
환경 리스크 법제화 촉구

[스페셜 리포트]

제주포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대면 및 비대면 행사로 6월 24일부터 3일간 85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그중 금융 세션은 ‘기후 변화 리스크와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를 주제로 온라인 형태로 진행됐다. 이 세션은 유엔 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ENEP FI) 아시아·태평양 지역 라운드 테이블의 일환으로 UNEP FI 한국그룹과 한경비즈니스가 공동 주최했다.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올해 초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 발효로 탄소 중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금융권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번 제주포럼에선 금융회사·정부·언론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탄소 중립(탄소 순배출량 0) 정책과 금융회사의 대응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박성현 신한금융그룹 부사장은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사 간 협력과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한승 환경부 기후환경정책관과 김진영 KB금융그룹 상무는 기업의 탄소 배출 관련 정보 공시 등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한상춘 한국경제 국제금융 대기자는 해외에 비해 법제화가 더딘 점을 지적하는 한편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임대웅 UNEP FI 한국대표는 녹색 금융 표준화 플랫폼 등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박성현 신한금융그룹 부사장
“기후 금융은 다수 금융회사가 참여해야 가능”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박성현 신한금융그룹 부사장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기후 금융을 위해선 다수의 금융회사가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부사장은 “소수의 금융사가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기업과 산업에 대출과 투자를 제한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전략을 펼치기 어렵다. 금융사로선 고객이 기후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경쟁 업체로 옮겨 가면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 금융에 대해선 각 금융회사들이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돼야 한다. 예컨대 기업들이 기후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 대출을 해주지 않는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자산 포트폴리오에서도 탄소 중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탄소 중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회사는 탄소세 부담 등으로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신용 리스크가 점증될 수 있어 산업별로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등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 포트폴리오 탄소 배출량은 금융사가 대출·투자한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말한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기후 데이터를 요구해 우량 고객을 놓칠 수 있어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 기업과 함께한다면 나중에 탄소세를 부담하거나 탄소 배출권 할당량을 사게 돼 그 기업의 재무제표가 부실해질 수 있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를 많이 갖고 있으면 은행도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사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박 부사장은 “신한금융의 1년 배출 탄소는 9만 톤 정도다. 대출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1100만 톤이다. 9만 톤도 중요하지만 1100만 톤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중요한 부분”이라며 “금융사는 자본의 중개 기관이기 때문에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전체 산업의 흐름을 어떻게 저탄소 방향으로 유지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KB금융그룹 상무
“K택소노미 제정 과정에서 금융사 참여 기회 필요”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김진영 KB금융그룹 상무는 K택소노미(K-Taxonomy) 제정 과정에서부터 금융사의 참여를 주장했다. K택소노미는 친환경 녹색 사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한국형 분류 체계를 뜻한다.

그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K택소노미를 준비하고 있는데 초안이 만들어지면 민간 금융회사의 데이터를 적용해 검증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공인된 국가 기관의 분류 체계와 민간의 데이터가 합쳐지면 실효성 높은 분류 체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는 것이 탄소 중립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이 석탄 관련 비즈니스를 포기하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탈석탄으로 친환경 산업이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발굴하고 대내에 표명할 수 있으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KB금융 역시 지난해 9월 탈석탄을 선언했고 현재 과학적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방법론을 적용해 자산 포트폴리오 목표를 수립하고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명한 공시 문화의 정착을 역설했다. 김 상무는 “금융권에선 여신 심사를 하기 위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인덱스(MSCI)의 ESG리더스지수,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등에 가중치를 두고 평가하거나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정성 평가로 추가하는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 기준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탄소 중립이 성립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기업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 상무는 “ESG 조직을 갖추고 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 방향성에 맞춰 하나씩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KB금융은 ESG 전략의 일환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복사 용지 줄이기 캠페인 등을 통해 친환경을 기업 문화로 내재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웅 UNEP FI 한국대표
“탄소 중립 관련 인프라 구축이 우선”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임대웅 UNEP FI 한국대표는 탄소 중립 목표에서 가장 선행돼야 할 부분이 인프라 구축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은 탄소세를 높여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금융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탄소세가 급등하면 석탄·휘발유·전기 가격 등이 급격히 상승해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는 실물 경제와 금융회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후 리스크 관리 감독 체계를 도입하고 택소노미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유럽연합(EU)에 지속 가능 금융 액션 플랜 로드맵이 있는데 참고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임 대표는 금융권이 기후 리스크에 집중하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업에 탄소 중립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떠오르면서 한국도 2~3년 전부터 연기금이나 보험회사들이 탈탄소 금융을 선언하고 있다”며 “올해 3월 100개 이상의 금융회사들이 2050 탄소 중립과 기후 금융을 위한 지지 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 당국은 ESG의 전반적인 논의보다 기후 변화에 집중하는 것 같다. ESG 중 기후 변화 리스크가 시장에 내재화할 수 있는 요소가 꽤 있어 기후 리스크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ESG보다 기후 리스크 제도화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상춘 한국경제 국제금융 대기자
“탄소 중립 목표 법제화 필요”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한상춘 한국경제 국제금융 대기자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 올해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첫 행정 변경으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했다. 가뭄·홍수·쓰나미 등 환경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해는 환경 문제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일관성이 있어야 효과가 나타나는데 사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하면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탈원전 같은 산업 정책의 방향성은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뀐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자는 탄소 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그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이 필요다고 촉구했다. 그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다 보니 법적 문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법적 문제가 정립되지 않으면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가 없다”면서 “이 문제가 교토의정서의 글로벌 스탠더드의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국가별로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정해 놓고 줄이지 못하면 페널티를 내든지 배출권 거래소에서 배출권을 그만큼 사게 했다.

또 한 대기자는 “민간이 앞서도 정부 쪽에서 선행성을 갖지 않으면 민간이 자율적으로 국제 협약을 지키는 데 한계 있다”며 “민간은 앞서 가는데 현재 정부 정책은 갈라파고스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금한승 환경부 기후환경정책관
“아·태 지역에서 한국 녹색 금융 표준화 위한 물밑 작업 필요”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금한승 환경부 기후환경정책관은 최근 탄소 중립 프레임이 과거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바뀌면서 탄소 중립 목표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 어떻게 달성할지 시나리오를 작성 중”이라며 “산업·수송·건물 등 부문별로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추진 전략과 금융회사에서 투자할 때 어떤 부분이 녹색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올 연말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모든 정책들이 탄소 중립에 맞춰 바꿔야 한다. 그 시나리오에 맞춰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녹색 금융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 정책관은 “탄소 중립이 이번 정부에서 사업을 진행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기본적인 방향을 잘 잡을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이제 경제 선진국에 가까이 다가섰고 그만큼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금 정책관은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정보 공개를 독려하는 한편 이들의 정보가 가공돼 투자 등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와 기업은 데이터를 오픈하는 데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특히 기업은 영업 비밀이라며 데이터를 못 준다고 한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의 온실가스(탄소) 배출 기업들이 배출 부채가 크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도 사실 기업들이 정보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을 사야 할 것만 기록하고 남아서 판 수익은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부채가 더 많아 보인다. 이런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데이터만 기재해 줘도 금융사가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 중립과 관련해 사회 전반의 협력도 촉구했다. 금 정책관은 “‘바로 지금 나부터 2050 탄소 중립’이란 슬로건은 과거처럼 어느 한 부분에서 일정 부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국가적인 탄소 중립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경 탄소 중립이라는 화두가 일상에도 스며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금 정책관은 “아·태 지역만 보면 전국 단위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이 벌써 2기가 지났는데 짧은 시간에 유럽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를 겪고 안정기에 들어선 것도 성과다. 이런 성과를 적어도 아·태 지역에서 공유하고 더 나아가 한국 시스템이 표준화될 수 있도록 UNEP FI가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데 힘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탄소 중립 드라이브…금융사도 중장기 플랜 가동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금융권의 관전 포인트는
정부가 지난해 10월 ‘2050 탄소 중립 선언’을 발표하면서 금융 당국이 녹색 금융 활성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정책 자금 지원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그린금융협의회’를 출범하는 한편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녹색에 해당하는 산업과 기업을 규정하는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K택소노미)’를 올해 안에 마련해 금융권에 시범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권의 녹색 분야의 자금 지원 원칙을 담은 ‘금융권 녹색 금융 모범 규준’과 기후 리스크를 건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후 리스크 관리 지침서’도 3분기 중 마련할 방침이다.

또 금융위원회를 포함한 금융감독원 등 13개 금융회사는 올해 5월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와 권고안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다. TCFD는 주요 20개국(G20)의 요청에 따라 금융안정위원회(FSB)가 기후 변화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된 글로벌 협의체다. TCFD가 2017년 마련한 권고안에선 기후 변화 관련 지배 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와 감축 목표 등 위험과 기회 요인을 파악할 수 있는 폭넓은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78개국 2000여 개 이상 기관이 TCFD 및 권고안에 지지를 선언했다.

금융권도 탄소 배출 기업 대출 중단, 녹색 채권 발행 등 녹색 금융 활성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초부터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세계 각국에선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환경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기업 신용으로 이어져 투자하는 금융업이 탄소 중립을 고려하지 않으면 부실 리스크를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리딩 금융 1‧2위를 달리는 KB금융과 신한금융그룹이 탄소 제로에 앞장서고 있다.
KB금융은 최근 탄소 중립 중·장기 추진 전략 ‘케이비 넷 제로 스타(KB Net Zero S.T.A.R.)’를 선언했다. 그룹 내부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2040년까지 0(zero)을 달성하고 자산 포트폴리오 배출량은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신한금융도 지난해 11월 고탄소 배출 기업·산업에 대출과 투자를 관리하고 산업 내 친환경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제로 카본 드라이브’를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나·우리금융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