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최대 관건…‘배트나’ 활용도 좋은 방법

[경영 전략]
‘협상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 사내 협상, 어떻게 풀어야 할까[김한솔의 경영 전략]
세상에 쉬운 협상은 없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정말 힘든 협상이 있다. 까다로운 협상 상대라면 누가 떠오를까. 절대 ‘갑’의 독점적 지위를 갖고 협상에 임하는 상대, 협상장에서 막말을 하며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 무리한 요구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상대일까.

아마 모두 다 힘든 상대일 것이다. 이런 협상가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신보다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협상을 잘하려면 반드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권력 차이가 크지 않아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막말도 안 하는데도 협상하기 힘든 상황이 있다. 다름 아닌 조직 내부에서 협상을 해야 할 때다. 내부 협상이 왜 쉽지 않은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알아보자.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라협상에선 일반적으로 구매처가 우위에 선다. 돈이 나가는 게 구매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돈을 주는 구매처가 판매처에게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독점 공급사를 상대할 때다. 필요한 물건을 이 업체 말고는 구할 곳이 없으니 돈을 주면서도 부탁해야 한다. 이를 협상학에선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배트나는 협상 결렬 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라는 의미다. 독점 공급사를 상대하는 구매처엔 배트나가 없다. 이 회사와 거래하지 못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상학에선 배트나의 유무가 협상 파워를 결정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면 내부 협상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기획1팀에서 일하는 당신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기획2팀의 지원이 필요하다. 기획2팀은 과거에 유사한 업무를 한 경험이 있어 관련 자료나 노하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게 있어야만 당신의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획2팀과의 협상은 쉽지 않다.

“내부 업무만으로도 바빠 지원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직접 찾아가 찾아볼 테니 자료만 보게 해 달라”고 요청도 해봤지만 답이 없다.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 만약 비슷한 정보를 기획2팀 말고 다른 팀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배트나가 될 수 있다. 비협조적인 기획2팀에 매달리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기획2팀에만 있다면 방법이 없다.

그러면 이렇게 배트나가 없는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배트나를 ‘이용’해야 한다. 배트나를 활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만든 서울시의 협상 사례를 보자.

시민의 발이 돼 주는 버스를 구매할 때 서울시는 시내버스 업체들에 일정 비율의 차량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매년 오르는 차량 보조금을 낮추고 싶어졌다. 그 결과 서울시 담당자는 시내버스 업체들에 ‘공동 구매’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시내버스 업체들이 차량 제조사와 개별적으로 협상하지 말고 조합이 대표로 협상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자 공급자(차량 제조사) 중심이던 버스 매매 시장이 수요자(시내버스 업체) 중심으로 바뀌었다. 유리한 협상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오르던 부품 구매 단가를 낮추기 위해 국제 입찰로 전환해 해외 업체들도 납품할 수 있도록 검토한다고 했다. 공급자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린 덕분에 단가 관리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부서 간 협상에선 배트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타 팀의 인력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내부의 인력 지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면 외부 인력을 쓰면 된다. 이처럼 외부 자원으로 대안이 만들어지는 협상은 풀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내 협상에서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앞서 예로 든 정보 공유 같은 상황이 대표적이다. 외부에 돈을 준다고 사내의 정보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자기 말을 잘 듣는 부서, 다시 말해 배트나를 자신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게 ‘과거’에 많이 주는 것이다.

자기가 아쉬울 때만 찾아가 요청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상대팀이 자신에게 마음의 빚을 느끼게끔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 놓아야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사내 협상은 매번 어려울까.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자신은 상대에게 어떤 가치를 ‘먼저’ 주는 존재였나. 이에 대해 선뜻 답할 수 없다면 내부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동료 관계에서 먼저 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성과의 이슈다. 타인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자또 다른 상황을 보자. 내부 협상 중 부서 간 업무 분장을 둘러싼 일도 생긴다. 윗사람이 A에게 일을 시켰다. 그런데 A로선 B가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이에 B에게 해 달라고 요청하니 “그 일은 리더가 A에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어서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속상하다. A는 ‘효율적인 업무 아웃풋’을 생각해 더 적합한 사람을 추천한 것이다. 그러면 B는 어떤 마음일까. 물론 일을 더 하기 싫은 이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명확한 지시 사항 이행’을 생각한다. 윗사람이 분명 A에게 하라고 했는데 그걸 마음대로 바꾸는 것에 대한 부담이다. 조직에 속한 사람에게 후자를 무시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의 협상은 정말 풀기 어렵다. 협상에서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협상은 ‘싸게’와 ‘비싸게’라는 돈의 이슈일 때가 많다.

양측이 ‘경제적 가치’라는 동일한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이때 경제적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다면 협상이 풀리기도 한다.

더 높은 가격을 원하는 공급사에 ‘지불 방식’을 바꿔 주거나 ‘물량’을 늘리는 등의 방법을 제시하면 낮은 단가를 유지해도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때는 차원이 달라진다. 일례로 “당신의 경쟁 업체에 과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을 저버릴 수 없어 경쟁사인 당신과는 거래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상대를 생각해 보자. 그 사람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한들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사려고 하는 것이냐”며 화를 낼 수도 있다.

이 사람에겐 경제적 가치보다 다른 차원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정함’, ‘고마움’, ‘신뢰’와 같은 무형적 가치다. 이런 협상이 진짜 힘들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내부 협상으로 돌아가 보자. ‘지시 사항 이행’이란 가치를 추구하는 상대와의 문제를 풀 방법이 하나 있다. 윗사람이 지시를 다시 하면 된다. 일이 A가 아닌 B에게 가는 거니까. 다른 말로 협상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A는 ‘윗사람’과 협상해야 한다. 물론 이것 역시 힘들다. A 역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상사와 A가 추구하는 본질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더 효과적인 아웃풋을 만들어 낸다’로 같다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상대의 가치를 자극해 행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가치를 움직이려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평소 리더의 생각을 읽고 그에 맞추는 게 필요하다. 나쁜 의미의 줄서기, 사내 정치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같은 업무 가치를 기반으로 동일한 방향으로 업무를 풀어 가라는 뜻이다. 그게 사내 협상을 풀어 갈 확률 높은 방법이다.

협상을 잘하기 위한 설득적 말하기나 대화의 스킬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슨 제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떤 근거를 제시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특히 계속 함께 일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사내 협상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사내 협상은 어렵지만 ‘괜찮은 나’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더 노력해 볼 만한 것 아닐까.

김한솔 HSG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