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슨 상업 우주 여행 성공으로 베이조스·머스크와 ‘우주여행 3파전’ 시작

[글로벌 현장]
우주여행 '별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우주여행을 향한 ‘별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영국 출신의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7월 11일(현지 시간) 세계 최초로 상업 우주여행에 성공하면서다.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괴짜 천재’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우주여행 사업을 서두르고 있어 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우주여행의 잠재 수요가 240만 명에 달하고 2030년엔 시장 규모가 30억 달러(약 3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안전과 비용 문제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우주여행 붐이 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70세 ‘괴짜 억만장자’, 우주로 날아올랐다
브랜슨 회장은 미국 서부 시간으로 이날 오전 7시 40분께 뉴멕시코 주 스페이스포트 우주센터에서 자신이 설립한 상업 우주선 운항사 버진 갤럭틱의 우주 비행선 ‘VSS 유니티’를 타고 우주로 날아올랐다.

500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니티는 모선인 ‘VMS 이브’에 실려 이륙한 뒤 8.5마일(13.6km) 상공에서 이브와 분리돼 마하3의 속도로 우주에 진입했다. 브랜슨 회장은 고도 55마일(88.5km)까지 도달해 약 4분간 중력이 거의 없는 ‘미세 중력’ 상태를 체험한 뒤 지구로 귀환했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이었다. 브랜슨 회장이 버진 갤럭틱을 만든 지 17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유니티에는 브랜슨 회장과 버진 갤럭틱 소속 조종사 2명, 임원 3명 등 총 6명이 탑승했다. 70세인 브랜슨 회장은 탑승 전 비행 일지에 ‘007’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듯 “우주비행사 더블오 원, 스릴 면허(Astronaut Double-oh one. License to thrill)”라고 썼다.

이날 비행으로 브랜슨 회장은 억만장자 기업가들이 벌이는 ‘우주여행 3파전’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2주년 기념일인 7월 20일 남동생 마크와 82세 여성 월리 펑크 등과 함께 블루 오리진의 우주 여행선 ‘뉴 셰퍼드’를 타고 우주여행을 할 예정이다. 블루 오리진은 베이조스 창업자가 세운 우주 탐사 기업이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최근 아마존 CEO에서 은퇴하면서 우주 사업에 더 전력투구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자신도 ‘우주여행 클럽’에 빨리 가입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머스크 CEO가 설립한 스페이스X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손잡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민간 여행객 4명을 올려 보내는 ‘인스피레이션4’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머스크 CEO는 이날 뉴멕시코 발사장에서 브랜슨 회장의 우주 비행을 직접 지켜봤다.

브랜슨 회장의 이날 우주 비행은 우주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한 일종의 판촉 전략이다. 버진 갤럭틱은 두 차례 더 시험 비행을 마친 뒤 내년부터 완전 상업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장당 약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에 600여 장의 우주여행 티켓을 예약 판매했다. 버진 갤럭틱은 티켓 구입자가 60여 개국 출신이라고 밝혔다.

베이조스 창업자와 머스크 CEO는 우주여행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브랜슨 회장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최근 블루 오리진의 우주선이 브랜슨 회장의 우주선보다 더 높이 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국제항공우주연맹은 고도 100km인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을 넘어야 우주로 정의하는데 브랜슨 회장의 우주여행은 이 기준에 못 미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버진 갤럭틱은 NASA와 연방항공국(FAA)이 고도 80km 이상을 우주로 분류한다고 반박했다.

머스크 CEO는 최근 트윗에서 “우주에 도달하는 것과 (더 먼) 궤도까지 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블루 오리진과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을 싸잡아 한 수 아래로 평가했다. 머스크 CEO는 민간인들의 우주 궤도 비행과 화성 이주까지 추진하고 있다.
안전·비용 때문에 대중화는 첩첩산중
브랜슨 회장은 유니티에서 온라인 중계방송을 통해 “일생의 경험”이라고 외쳤다.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축하 무대에선 샴페인을 터뜨리며 “이 모든 것이 마법이었다”며 “새로운 우주 시대의 새벽에 오신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브랜슨 회장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학생용 잡지 ‘스튜던트’를 발간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2년 우편 주문 음반 판매 회사 버진 레코드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고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과 통신사 버진 모바일을 세우는 등 버진 그룹을 40개 계열사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으로 키워 냈다.

모험과 튀는 행동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브랜슨 회장은 1987년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가 해안 경비대에 가까스로 구조되는 등 76차례 모험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버진 모바일을 알리기 위해 나체와 다름없는 복장으로 뮤지컬 ‘풀 몬티’ 출연자들과 뉴욕 한복판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 모토는 “용감한 자가 영원히 살지 못하겠지만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아예 사는 게 아니다”이다.

브랜슨 회장은 2004년 버진 갤럭틱을 설립하며 우주여행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자신이 직접 우주선에 타겠다고 결심한 뒤 수년간 주 4회 테니스 교습과 원심 분리기 훈련 등으로 몸을 만들었다. 브랜슨 회장은 영국 텔레그래프 등과의 인터뷰에서 “난 상당히 겁이 없는 사람”이라며 “30∼40대 때처럼 몸을 유지하기 위해 서핑·익스트림 바이킹·하이킹·등산·헬스 등을 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브랜슨 회장이 1988년 77세에 우주 왕복선을 탄 우주비행사 존 글렌에 이어 우주에 도달한 둘째 칠순 노인이 됐다고 전했다.

브랜슨 회장의 이날 비행으로 상업 우주여행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여행 사업은 아직까지 생소하지만 잠재 수요가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 투자은행 코웬은 지난해 8월 브랜슨 회장처럼 우주의 경계까지 다녀오는 ‘준궤도 여행’의 잠재 수요층을 약 240만 명이라고 추산했다. 또 순자산 500만 달러 이상 부자 중 39%가 준궤도 여행 표 한 장에 25만 달러 이상을 낼 의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UBS는 우주 산업 규모가 2030년까지 총 230억 달러(약 26조4000억원)로 커지고 그중 우주여행 산업은 30억 달러(약 3조4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랜슨 회장의 우주여행 성공으로 시장이 더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우주여행 티켓 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버진 갤럭틱은 당초 우주여행 티켓을 20만 달러에 팔다가 가격을 25만 달러로 올렸다. 하지만 2014년 시험 비행에서 추락 사고가 발생하자 한동안 티켓 판매를 중단하다 지난해 6년 만에 판매를 재개하면서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티켓 값이 지금보다 두 배 비싼 5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시장에선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조스 창업자의 블루 오리진은 아직 티켓 값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7월 20일 베이조스 창업자와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티켓이 경매에서 28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주여행이 단기간에 대중화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주여행은 한 번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큼 안전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실제 참사의 아픈 기억이 있기도 하다. NASA는 1985년 우주선에서 원격 수업을 실시하는 ‘우주 교사 프로그램’을 기획해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에 민간인 교사들을 태웠다. 그런데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하면서 탑승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NASA는 이후 15년간 우주선에 민간인을 태우지 않았다.

여행객이 평소와 다른 속도와 중력을 견뎌야 하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블루 오리진은 우주여행객은 비행선이 우주로 나갈 때 2분간 지상의 3배 중력을 견뎌야 하고 지구로 돌아올 때는 수 초간 5.5배의 중력을 버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행객 키와 몸무게를 각각 5~6.5피트(약 152~198cm)와 110~223파운드(약 49~101kg)로 제한했다.

비용 부담도 크다. 뉴욕타임스는 우주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미국에서 웬만한 집값에 해당하는 돈을 기꺼이 낼 여유가 있는 사람만 우주여행 티켓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더글러스 하네드 애널리스트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기술이 더 발전하고 우주 관광 빈도가 높아지면 비용이 줄겠지만 감소 폭과 시점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워싱턴(미국)=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