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특등급 쌀이 만들어 낸 산뜻한 맛
[막걸리 열전]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MZ세대의 특징은 ‘로컬’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스펙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대도시보다 개성이 살아 있는 지역을 선호한다. 막걸리가 MZ세대 사이에서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막걸리의 맛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생산지의 물과 쌀이다. 즉 막걸리는 그 자체로 지역의 가치를 담고 있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MZ세대가 만드는 팔팔막걸리를 이야기할 때 김포라는 지역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팔팔막걸리를 만드는 팔팔양조장은 최고의 막걸리를 결정짓는 것은 최상급의 쌀이라고 믿는다. 막걸리 이름인 팔팔 역시 ‘쌀을 수확하기까지 농부가 88번의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조장이 김포에 터를 마련한 배경에도 쌀이 있었다. 정덕영 팔팔양조장 대표가 최고의 쌀을 찾아 수도권 정미소를 모두 찾아다닌 끝에 찾은 것이 김포금쌀이었다. 양조장을 김포에 세운 이유
김포 쌀은 품질과 맛이 뛰어난 만큼 가격도 비싸다. 시중 막걸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원료와 비교하면 무려 세 배 이상 비싸다. 팔팔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보다 세 배 이상의 쌀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계산하면 원료비가 9배 이상 비싼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가격을 5000원으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즐기기 위해 가성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생산 장비를 대용량으로 갖춰 한 번에 생산하는 양을 늘리고 자동화 설비로 인건비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가격 부담을 보완하고 있다.
팔팔양조장은 청년 세 명이 꾸려 가는 만큼 MZ세대다운 활기가 넘친다. 정 대표와 이한순 이사는 젊은 막걸리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한강주조의 창립 멤버다. 이들은 ‘우리만의 술을 만들어 보자’는 포부로 팔팔양조장을 새롭게 열었다. 감각이 남다른 두 사람이 만든 작품인 만큼 전통 막걸리 레시피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도에 방점이 찍혀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막걸리에서만큼은 융통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본에 충실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팔팔막걸리 맛의 비결은 ‘BS 공법’, 즉 밤샘에 있다. 술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밤새워 양조장을 지키기 때문이다.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관찰하고 여러 변수를 바꿔 가며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다. 정 대표의 “팔팔막걸리에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마냥 우스갯소리가 아닌 이유다.
양조장 터를 구하고 설비를 갖추는 6개월 동안에도 연구만큼은 쉰 적이 없다. 집에 발효기를 설치하고 계속 실험과 테이스팅을 거듭하며 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그들의 목표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지니면서도 탄산이 없는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 없이 단맛을 내려면 쌀에서 당을 충분이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발효 과정에서 지나친 탄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실험을 거듭하며 이전 회사에서 쌓은 경험에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마침내 탄생한 것이 팔팔막걸리다. 취했을 때 가장 맛있는 술
정 대표는 팔팔막걸리가 술 자체로도 맛있는 술, 마시기 편하면서도 원료의 맛이 잘 느껴지는 술이 되기를 바랐다. 그 결과 당도가 낮고 무게감이 가벼운 막걸리가 탄생했다. 팔팔막걸리는 시트러스 향이 감도는 산미에 타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목넘김 이후 입안에 남는 맛 없이 깔끔하게 딱 맞아떨어진다. 그 덕분에 여러 병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정 대표는 이를 “취했을 때 가장 맛있는 술”이라고 설명한다.
일차적으로는 목표한 맛을 내는 데 성공했지만 팔팔양조장의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팔팔양조장의 꿈을 위해서다. 바로 팔팔막걸리의 자체 효모 개발이다. 정 대표는 “독자적인 효모로 술을 빚을 때 비로소 우리만의 차별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막걸리만을 위한 독자적인 품종의 쌀을 개발해 팔팔막걸리의 정체성을 완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정덕영 팔팔양조장 대표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다. 여러 나라 출신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다들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고 이를 계승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한국 고유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막연하던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담금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 마침 한강주조의 고성용 대표와 만났고 함께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즘 막걸리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자가 젊은 세대로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팔팔막걸리도 막걸리 대중화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초기 수제 맥주 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무조건 첫 모금에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술맛이 강해지고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기에는 힘든 막걸리가 많다.”
-생산 규모가 궁금하다. 공급을 확대할 계획인가.
“3000병 정도를 생산해 전통주 보틀 숍과 주점 등에 납품하고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 대규모로 납품하게 되면 유통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맛과 품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맛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김은아 SRT매거진 기자 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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