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범LG 총수 일가 ‘탈세 혐의’로 기소돼
1·2심도 “증거 부족”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여의도 LG전자 사옥 /연합뉴스 제공
서울 여의도 LG전자 사옥 /연합뉴스 제공
156억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범LG그룹 총수 일가와 임원들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LG그룹 총수 일가는 계열사 주식을 매도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7월 13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이들에게 “원심 판결의 법리적 오해가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무죄 판결을 이끈 것은 바로 ‘특수관계인 거래’ 여부다.

검찰 “총수 일가 간 특수관계인 거래”

사건은 2018년 국세청의 고발에서 시작됐다. 2018년 4월 국세청은 구 회장과 그 일가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여 년간 LG그룹과 그 계열사 주식 수천억원어치를 100여 차례에 걸쳐 장내 주식 시장에서 매매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국세청은 LG그룹이 약 156억원대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며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양도소득세는 재산의 소유권을 양도하면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를 말한다. 1999년 소득세법 개정이 이뤄져 상장 기업의 대주주, 대주주와 친족 등 특수관계인 간 지분 거래는 일반 거래보다 20% 높게 주식 가치가 책정돼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검찰은 LG그룹이 장내 통정매매(일정한 시간에 동일한 금액으로 매도·매수 주문한 행위)를 통해 특수관계인 거래를 숨겼다고 봤다. LG는 사주 일가가 주식을 사고팔 때 시간 외 대량 매매가 아닌 시장 내 매매를 택했다. 검찰은 특수관계인 간 거래를 숨기기 위해 거래 주문표를 쓰지 않고 불특정 다수 사람과의 주식 거래인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시장에서 경쟁매매를 택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통정매매 사실을 숨기며 사주 일가가 장내에서 불특정 제3자에게 주식을 매도한 것처럼 양도소득세 신고를 하는 등 부정한 행위로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고 공소 사실을 밝혔다. 즉 통정매매가 바로 특수관계인 간의 주식 거래에 해당하거나 그 수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같은 해 9월 LG그룹 사주 일가의 주식 매매를 도운 LG 재무관리팀 직원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총수 일가에 대해서는 관리·책임 의무 소홀 등의 혐의를 적용해 사주 일가 14명을 약식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들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깃발 /연합뉴스 제공
서울 서초구 대법원 깃발 /연합뉴스 제공
법원 “장내 시가에 따른 매매, 양도소득세 물릴 수 없다”

검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1·2심은 LG그룹 총수 일가와 임직원의 손을 들어줬다. 조세 포탈의 고의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들의 주식 거래 행위가 특수관계인 거래가 아닌 장내 시가에 따른 경쟁매매로 해석한 것이다.

양도소득세의 과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에 해당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쟁매매는 복수의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가격 경쟁에 의한 매매로 거래 상대방과 거래 가격이 시스템을 통해 자동적으로 정해진다”며 “이 사건 주식 거래와 같은 거래소 시장에서 경쟁매매를 특정인 간의 매매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의 근거에는 전문가들의 증언이 바탕이 됐다. 한 증권회사의 직원은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나 증권회사의 컴퓨터를 통해 주식을 매도하더라도 거래 상대방은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더욱이 피고인들이 제3자가 주식 거래에 개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하나의 주문에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와 제3자의 거래가 혼재돼 있다”며 “이는 피고인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거래소 시장에서의 거래 시스템에 의한 우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주문 방식과 시장 상황에 따라 각 체결률의 편차가 매우 심했으며 사주 일가가 판매한 주식을 다른 구성원이 고스란히 다시 사들이는 날은 없었다.

즉 시장에서 누구나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살 수 있었고 실제로 구매가 이뤄졌기 때문에 경쟁매매는 ‘양도’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거래이기 때문에 총수 일가는 무죄라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재무팀 직원들은 ‘특수관계인 간의 주식 거래’를 의도했다기보다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주식 시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주 일가의 매도 주식 수량만큼을 다른 일가가 매수하려고 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역시 “경영진의 지시는 대주주 일가 전체 지분 비율을 유지하라는 취지로 보인다”며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는 매도 주주들 대부분이 LG그룹의 경영에 관여하지도 않고 있다”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에 법리적 오해가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돋보기]
카타르 5년 거주 한국인 노동자…
세금 안내도 종합소득세 부과 못 한다


A 씨는 2005년 7월부터 카타르에 있는 한 회사의 총괄관리자로 근무했다. A 씨는 카타르에 오랜 기간 거주하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약 17억8300만원을 한국으로 송금했다. 이는 카타르 현지법인으로부터 받은 급여였다. 하지만 A 씨는 카타르에서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중부지방국세청이 2015년 3월 A 씨에 대한 개인 통합 조사를 실시하며 드러났다. 중부지방국세청은 “A 씨는 소득세법에 따라 카타르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거주자로 봐야 하나 이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며 의정부세무서장에게 통보했다. 의정부세무서는 2016년 4월 가산세를 포함해 7억3000만원 정도의 종합소득세를 A 씨에게 납부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A 씨는 소송을 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A 씨가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는 동시에 카타르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 씨는 부인과 딸, 처남 등과 함께 국내를 주소로 주민등록을 했고 주소지 아파트도 A 씨가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A 씨가 카타르에서 지급받은 급여 대부분을 국내로 송금해 관리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A 씨는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는 카타르 도하에 있는 사무실에 근무하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카타르에서 매년 12개월 동안 183일 거주했다. 의정부세무서의 과세 기간인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국외 체류 일수는 평균 328일에 이르지만 국내 체류 일수는 37일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비춰보면 A 씨는 카타르 소득세법상 카타르 거주자로서 납세 의무가 있는 개인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납세 의무자가 국내 거주자인 동시에 외국인 거주자에도 해당한다면 그 중복되는 국가와 체결된 조세조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어느 국가의 거주자로 간주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카타르 소득세법의 다른 규정에 따라 A 씨가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납세 의무를 면제받은 것으로 보일 뿐이며 추상적·포괄적 납세 의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재판부는 “A 씨는 한·카타르 조세조약상 카타르 거주자이므로 A 씨가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한 종합소득세 과세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