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면 파산, 팔자니 헐값 논란’
니켈·구리광산 알짜 내다 파는 한국광물자원공사 딜레마
7조원 부채 털어내려고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올스톱’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나

[비즈니스 포커스]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의 광석 처리 시설. /한국광물자원공사 제공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의 광석 처리 시설. /한국광물자원공사 제공
한국광물자원공사는 과거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실패로 입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 광산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7조원에 가까운 부채로 완전 자본 잠식에 빠져 공기업 최초로 파산 위기에까지 내몰렸지만 한국광해관리공단과의 통합으로 기사회생했다.

광물자원공사는 2020년부터 33% 지분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광물자원공사를 파산 직전까지 가게 했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최근 알짜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윤석표 기자
그래픽=윤석표 기자
투자 원금 60%에 매각…‘눈물의 세일’

탄소 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관련 핵심 소재와 원료 수요가 폭증하며 1년 새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고성장하며 배터리 수요가 증가해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쓰이는 니켈·코발트 등 2차전지 핵심 광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광물 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해외 자원 외교 사업의 실패 사례로 낙인 찍혔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되며 2016년부터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현 정부 들어서는 2018년 공기업 재무 개선을 명목으로 광물자원공사가 보유한 해외 자원 자산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광물자원공사의 자산은 2017년 4조1518억원→2018년 3조9598억원→2019년 3조9342억원→2020년 3조2866억원으로 꾸준히 감소 중이다. 부채는 2017년 5조4341억원→2018년 5조9241억원→2019년 6조4133억원→2020년 6조6517억원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광물자원공사는 2011년 인수한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 지분 30%를 캐나다 구리 탐사 업체 캡스톤마이닝에 1억52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광물자원공사는 그동안 약 2억40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투자 원금의 60% 수준에 지분을 넘겨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최근에는 2011년부터 보유해 온 캡스톤마이닝 지분 11%(1971억원어치)를 전량 매각했다. 이와 함께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등을 포함해 광물자원공사가 보유한 해외 자산을 전부 매각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헐값 매각을 방지하기 위해 매각 시한을 정하지 않고 한국 기업 우선 매각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매각에 나서면서 협상 상대방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불리한 상황을 자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윤석표 기자
그래픽=윤석표 기자
자원 전쟁 치열한데…골든타임 놓칠라

매각보다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 광물자원공사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은 리튬·코발트 자급률이 0% 수준일 정도로 배터리 원재료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인 동시에 다소비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원 전쟁의 막이 오르면서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들의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중국이 전 세계 광물 자원을 싹쓸이하며 희토류 무기화 등 광물 자원을 전략적 무기로 삼고 있어 향후 한국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해외 자원 개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물자원공사가 수십년을 투자해 확보한 알짜 해외 광산을 헐값에 처분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2021년 8월 광물자원공사와 유관 기관인 한국광해관리공단을 통합한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출범하면 광물자원공사가 기존에 해 왔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 기능은 폐지된다. 한국의 해외 자원 개발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해외 광산을 모두 매각하더라도 부채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투자를 요하며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으로 단시간 내 승부를 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은 수십년에 걸쳐 2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돼 최근에서야 경제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해외 자원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외 자원 개발은 국가 전략 기술 중 하나인 배터리 산업 육성과도 관련 있다. 정부는 광물자원공사의 해외 광산 매각을 강행하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배터리 원료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광산 개발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배터리 수요 급증에 따라 2025년 공급 부족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핵심 광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K배터리 글로벌 주도권 선점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리튬 등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 정부와 배터리 산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급처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니켈 광산 채굴부터 제련, 배터리 생산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딜’로 협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합작법인(JV)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호주 광산 업체 필바라미네랄스로부터 연간 4만 톤의 리튬을 생산할 수 있는 리튬 정광을 확보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 염호 인수를 통해 1350만 톤 규모의 리튬을 확보했다.

음극재 원료인 흑연의 수급 다변화를 위해 탄자니아 흑연 광산을 보유한 호주 광산 업체 블랙록마이닝의 지분 15%를 인수했고 호주의 니켈 광업·제련 전문 업체인 레이븐소프의 지분 30%도 인수했다.

최근에는 포스코가 2006년 뉴칼레도니아 SMSP와 합작해 설립한 SNNC의 기존 설비와 연계한 투자를 통해 2023년까지 연산 2만 톤(니켈 함량 기준) 규모의 2차전지용 고순도 니켈 정제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리튬·흑연·니켈 등 원료에서부터 양극재와 음극재로 이어지는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 구축을 위해 해외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리튬 22만 톤, 니켈 10만 톤을 자체 공급해 2030년 양극재 40만 톤, 음극재 26만 톤 생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