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배하준·맥도날드 앤토니 마티네즈…외국인 약점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비즈니스 포커스]
배하준 대표 약력: 1977년생. 루벤가톨릭대 경영학. 2001년 AB인베브 입사. 2009년 룩셈부르크 영업 임원. 2014년 남유럽 지역 총괄 사장. 2017년 남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 2020년 오비맥주(동아시아 총괄) 사장(현). /사진=오비맥주 제공
배하준 대표 약력: 1977년생. 루벤가톨릭대 경영학. 2001년 AB인베브 입사. 2009년 룩셈부르크 영업 임원. 2014년 남유럽 지역 총괄 사장. 2017년 남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 2020년 오비맥주(동아시아 총괄) 사장(현). /사진=오비맥주 제공


한국의 유통 시장은 해외 국가들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 특징이다. 유행이나 입맛이 순식간에 바뀐다.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 기업의 평판 관리도 쉽지 않다. 최고경영자(CEO)의 잘못된 행동이나 판단이 온라인상에 알려지면 자칫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지기 십상이다. 내부 직원 혹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에도 보다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타지에서 온 외국인 CEO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배하준(본명 : 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대표와 앤토니 마티네즈 한국맥도날드(이하 맥도날드) 대표, 두 외국인 CEO는 이런 한국의 유통 시장에서 성공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취임 이후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빠르게 조직을 변화시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 대표와 마티네즈 대표는 각각 지난해 1월과 3월 오비맥주와 맥도날드의 새 지휘봉을 잡고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위기의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장두 CEO는 등장만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유통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오비맥주와 맥도날드의 녹록하지 않은 상황 때문이었다.

오비맥주는 주력 상품인 ‘카스’를 앞세워 오랜 기간 한국 맥주 시장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선두 자리가 위태해졌다.

최대 라이벌인 하이트진로가 야심차게 선보인 맥주 신제품 ‘테라’가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 돌풍을 일으키며 오비맥주를 맹추격했다. 자칫하다가는 점유율을 추월당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배 대표다. 하이트진로와의 격차가 계속 좁혀지는 가운데 그가 어떤 방법으로 격차를 벌려 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맥도날드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성비’를 앞세워 햄버거 시장에 뛰어든 후발 주자들은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 갔다. 자연히 맥도날드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더욱 큰 문제는 소비자들의 반응이었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양과 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면서 고객 이탈 조짐까지 보였다. 마티네즈 대표 앞에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비슷한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두 CEO는 취임 이후 빠르게 조직을 변화시켜 나갔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배 대표의 지휘 아래 오비맥주는 경쟁사의 추격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으며 맥주 시장 1위를 굳건하게 수성했다.

닐슨코리아의 올해 상반기 맥주 시장점유율(가정용 기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오비맥주의 대표 브랜드 카스는 약 38%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제조사별 순위에서도 오비맥주는 약 5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여전히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마티네즈 대표가 경영을 맡은 뒤 맥도날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단숨에 ‘혹평’에서 ‘호평’으로 돌려놓았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맥도날드 햄버거가 최근 들어 훨씬 맛있어졌다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시 맛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식 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맥도날드는 지난해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불과 1년 사이 두 기업을 향해 쏟아졌던 우려의 시선들은 자연히 크게 수그러들었다.코로나19 돌발 악재 속 선방 이끌어 내배 대표와 마티네즈 대표는 아무래도 한국 정서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외국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시장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는 눈을 토대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취임 첫해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등 돌발 악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대처하며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어 이들의 리더십이 더욱 빛을 발했다.
앤토니 마티네즈 대표 약력. 1985년생. 디킨대 경영학. 2000년 호주 빅토리아주 맥도날드 레스토랑 크루. 2008년 멜버른 맥도날드 프로젝트 매니저. 2016년 호주 맥도날드 남부지역 총괄 디렉터. 2020년 한국맥도날드 대표(현). /사진=한국맥도날드 제공
앤토니 마티네즈 대표 약력. 1985년생. 디킨대 경영학. 2000년 호주 빅토리아주 맥도날드 레스토랑 크루. 2008년 멜버른 맥도날드 프로젝트 매니저. 2016년 호주 맥도날드 남부지역 총괄 디렉터. 2020년 한국맥도날드 대표(현). /사진=한국맥도날드 제공
물론 이런 안목이 그냥 생겼을 리 없다. 한국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두 대표 모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비맥주에 따르면 배 대표는 한국에 온 뒤 틈이 날 때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주류 판매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편의점·마트 등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주류 시장의 동향을 파악한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의 주류 시장이 ‘유흥’에서 ‘가정’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른바 ‘홈 술’ 트렌드에 맞춰 소비자들이 집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을 주문했다.

오비맥주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유독 많은 신제품을 쏟아낸 이유다. 무알코올 맥주 ‘카스0.0’, 국내산 쌀을 함유한 ‘한맥’, 상큼한 과일향이 특징인 ‘호가든 보타닉’ 등을 출시하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한국 소비자들의 맥주 선택 기준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부분도 알아채고 기민하게 대응한 점도 돋보였다. 기존의 카스보다 맛을 업그레이드한 ‘올 뉴 카스’를 새롭게 출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 수제 맥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라는 이름의 수제 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를 설립한 것이다. KBC를 앞세워 ‘노르디스크 맥주’, ‘백양 비엔나라거’ 등 다양한 수제 맥주를 잇달아 출시하며 새로운 맛을 원하는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전체 맥주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유흥 시장이 타격을 입었지만 이같은 배 대표의 전략에 힘입어 오비맥주는 압도적인 시장 1위를 지켜 낼 수 있었다.

마티네즈 대표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있는 맥도날드 점포를 돌아다니고 직원과 고객들의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직접 제품들을 맛보며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도 찾았다.

이를 통해 한국맥도날드의 문제점을 파악한 마티네즈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맥도날드 본사의 ‘베스트 버거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베스트 버거 프로젝트는 햄버거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식재료와 조리 기구 등을 개선하는 글로벌 맥도날드의 전략이다.

마티네즈 대표는 세계에서 넷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이를 한국맥도날드에 적용했다.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호응했다. 맥도날드가 다시 맛있어졌다는 입소문이 번지면서 4월부터 12월까지 전체 햄버거 판매량이 18% 증가한 것이다. 대표 메뉴인 ‘빅맥’은 지난 한 해 동안 2000만 개 이상 판매되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마티네즈 대표의 현장 행보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점포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소통 중이다. 올해 4월 약 13년 만에 생선 패티를 넣은 ‘필레 오 피쉬’ 버거를 재출시한 것도 현장 방문 끝에 내린 결정이다.

고객들이 이 햄버거가 재출시되기를 원한다는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다시 상품화할 것을 주문했다. ‘필레 오 피쉬’ 버거는 4월 재출시 후 3주 만에 100만 개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두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준 경영 성과는 일단 합격점이지만 일각에서는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라는 얘기도 나온다.

오비맥주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 속에서 수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최근 노사 갈등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맥도날드도 갑작스럽게 2차 유효 기한이 지난 재료 재사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마주하게 됐다. 앞으로 두 대표가 어떤 묘수를 꺼내 들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지 이목이 쏠린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