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최초 프리미엄 지역 특산주 빚는 행주산성주가
[막걸리 열전]
행주산성주가의 이광희 대표는 막걸리 제조부터 포장, 배송까지 전반적인 양조장 운영 업무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 이 대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끝에서 탄생한 술을 잊지 못해 직접 술을 빚기 시작했다. 그는 발효 중이던 탁주를 몇 모금 맛본 후 술에 취해 고꾸라진 것이 술 하면 떠오르는 인생의 가장 첫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던 어린 시절, 집에서 빚은 술만 올리던 제사상과 명절 가풍을 잊을 수 없었다.
이후 도시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와 대학교에서 일하던 이 대표가 옛 술맛을 찾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술맛을 맛보지 못하게 되면서다. 더는 집안에서 술을 빚을 사람이 없자 직접 술을 빚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첫 기일에 직접 빚은 술을 제사상에 올려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빚은 첫술이 확 시어 버렸어요. 이 술을 아버지에게 올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아버지가 맛보다 정성이 중요다면서 그 술을 올리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술 제조에 용기를 얻은 이 대표는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되짚다가 서울의 전통주 교육 기관에서 전통주 제조를 전문적으로 익혔다. 집에 술 항아리가 점점 늘어나면서 혼자만의 작업실을 만들었고 행주산성주가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다.
집에서 항아리 단위로 소량 만들던 막걸리를 일정한 맛으로 대량 제조하기 위해 약 8개월간 연구와 실험을 거쳐 첫 제품인 ‘냥이탁주’를 선보였다. 냥이탁주는 최상의 맛을 위해 한 달을 완전 발효하고 맑게 거른 후 또 한 달 이상 냉장 숙성한 뒤 출고한다. 이 대표 혼자 양조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한 달 최대 생산량은 약 4000병 정도다.

행주산성주가의 냥이탁주는 고양 지역에서 나는 질 좋은 원재료를 사용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해 보급한 한반도 최초의 볍씨인 가와지쌀을 사용했다. 고양시 특화 농산물로 지정된 가와지쌀은 그 자체만으로도 단맛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매년 5월 한시적으로만 수확할 수 있는 송순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탄산이 많은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막걸리라고 하면 아저씨들이 트림을 하면서 마시는 저렴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이런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어요.”
냥이탁주가 MZ세대, 특히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받는 이유다. 이 대표는 냥이탁주의 주 타깃층이 중·장년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양조장 설립 후 첫 제품으로 어떤 막걸리를 내놓아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이 대표는 부인에게 조금씩 만들어 맛보여 줬던 막걸리를 떠올렸다. 술이 약한 부인을 위해 달콤하고 깔끔한 맛의 맞춤형 막걸리를 종종 만들던 것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냥이탁주를 탄생시켰다.
“술을 잘 못하는 분들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여성들이 가볍게 ‘혼술’이 생각날 때면 냥이탁주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지요.”
최근 음주 문화로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혼술’ 문화를 위해 기존 9%의 알코올 함유량보다 더 낮은 5%의 ‘냥이탁주 프레쉬’룰 출시한 것도 그 이유다. 오리지널 버전인 ‘냥이탁주9’는 알코올 향이 기분 좋게 느껴지고 그보다 가벼운 ‘냥이탁주 프레쉬’는 달콤한 쌀 음료를 마시는 듯한 첫 인상을 건넨다. 또 기존 500mL 유리병에서 ‘혼술러’들을 위해 350mL 페트병 패키지도 추가로 출시했다. 그 덕분에 ‘혼술러’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막걸리의 가격에 부담감을 느끼는 초심자들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고양시 마스코트 ‘고양고양이’에서 착안
행주산성주가 또한 고양 행주산성 근처에 자리 잡은 만큼 지역적인 특색을 더했다. 고양시 최초의 프리미엄 지역 특산주이자 행주산성주가의 첫 막걸리인 냥이탁주는 고양시와 마스코트 ‘고양고양이’에서 따왔다.

“처음에는 너무 귀여운 것 같아 낯설었어요. 그런데 냥이탁주라는 이름과 막걸리 맛이 패키지와 잘 어울린다는 주변의 반응을 들었어요. 저도 자꾸 보니 꽤 괜찮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만족합니다.”
행주산성주가의 로고와 냥이탁주 패키지 디자인은 미술을 전공한 이 대표 딸의 작품이다. 막걸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본 딸이 손을 보탰다. 갓 대학을 졸업한 딸의 아이디어는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이 대표는 소비자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브랜드와 제품을 향한 반응을 모두 수집한다. 도수·산도·향·풍미 외에도 패키지 디자인 등 제품 전반에 대해 꼼꼼히 귀를 기울여 수정 사항을 체크한다.
행주산성주가는 앞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담아낸 신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냥이탁주가 MZ세대의 여성들을 위한 부담없는 술이었다면 이제는 프리미엄 막걸리가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의 입맛을 사로잡을 ‘막걸리의 고급화’를 고민 중이다.
박보라 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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