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 5~7월 41개 증가…신규 계열사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

[비즈니스 포커스]
남산에서 본 서울 도심의 기업들.(/한국경제신문)
남산에서 본 서울 도심의 기업들.(/한국경제신문)
예상하지 못했던 전 세계적인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재계의 시계도 빨라졌다. 기업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해 잰걸음을 걷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대기업들은 신규 계열사를 편입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에 분주하다. 동시에 안 되는 분야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 3일 공개한 ‘2021년 5~7월 대규모 기업 집단 소속 회사 변동 현황’에 따르면 71개 대규모 기업 집단 소속 회사는 7월 말 기준으로 2653개다. 지난 4월 말 기준치보다 41개 증가했다. 회사 설립, 지분 취득 등으로 106개 회사가 계열사에 편입됐고 흡수·합병, 지분 매각 등으로 65개 회사가 그룹에서 제외됐다.

13개 계열사 늘린 카카오, 신사업에 가장 적극적

신규 편입 계열사가 가장 많은 집단은 카카오와 장금상선으로 각각 13개의 신규 계열사를 편입했다.

카카오는 안테나·예원북스·스튜디오하바나·엔플라이스튜디오·파이디지털헬스케어 등을 계열사로 추가했다. 편입한 계열사만 해도 엔터테인먼트 기업부터 헬스케어까지 다양하다. 특히 카카오의 확장세는 최근 기업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7월 기준 카카오의 계열사는 118개로, SK그룹에 이어 둘째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카카오의 신사업 진출 역사는 늘 인수·합병(M&A)과 함께했다. 올해 4월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을 인수해 패션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넓히게 됐다. 또 안테나를 비롯한 연예 기획사 지분 인수로 콘텐츠 분야에서도 지식재산권(IP)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 최근엔 카카오뱅크 등 계열사의 상장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택시·미용실·골프장 예약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공격적 행보로 향후 골목 상권도 카카오에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밖에 아시아 역내를 주로 서비스하는 해운 선사 장금상선이 흥아해운의 주인이 되면서 흥아지엘에스 등 12개사를 동반 편입했다. SK는 디디아이와이에스832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등 계열사 11개를 늘렸다. 반대로 SM과 MDM은 각각 계열사 5개를 정리했다.

공정위가 꼽은 이번 변동의 주요 특징은 ‘미래 성장 동력 선점·확보를 위한 신기술 사업 분야 진출’이다.

특히 블록체인 관련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화와 효성은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하는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갤럭시아메타버스를 각각 신규 설립했다.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은 한화시스템의 손자회사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3월 이사회를 열고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사업에 총 25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시한 바 있다. 이러한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매출 23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갤럭시아메타버스는 효성그룹의 계열사인 갤럭시아머니트리의 블록체인 전문 자회사다.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대체 불가능 토큰(NFT)으로 발행·판매·유통·관리하는 블록체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갤럭시아메타버스는 8월 10일 울림엔터테인먼트와 NFT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 NFT 사업에 활용할 콘텐츠 IP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예 신규 계열사를 통해 신기술에 대한 투자에 활발히 나서는 기업도 있다. 한국타이어엔테크노롤지는 신기술 사업과 관련해 투자·지원 사업을 위해 엠더블유홀딩·엠더블유앤컴퍼니를 신규 설립했다. SK는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한국거래소시스템즈, 부동산 정보 공개 회사 더비즈를 인수하고 화물 운송 빅데이터 기업 와이엘피의 지분을 매입했다.

유진은 계열 사모펀드를 통해 중고나라 지분을 취득해 최대 주주가 됐다. 중고나라는 중소벤처기업 자격으로 7년간 계열 편입이 유예된다. 쿠팡은 음식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의 전국적 확대에 대응해 고객·상점·배달업 종사자 응대·지원을 위해 쿠팡이츠서비스를 설립했다.
신규 편입 계열사로 본 대기업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

투자와 함께 과감한 정리도 눈길 끌어
신규 편입 계열사로 본 대기업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
계열사 편입 외에도 기업들은 협력체 결성, 신규 투자 등으로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수소 경제’다.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개발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것에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수소 경제는 다양한 사업자들이 참여해야만 인프라가 구축된다. 다수의 기업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현대차그룹·SK그룹·포스코그룹·효성은 오는 9월 중 수소기업협의체를 설립하며 수소 경제에 협력하기 위해 손잡았다고 지난 6월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은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6월 10일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현대차그룹·SK그룹·포스코그룹은 수소 경제 활성화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 민간 기업 주도의 협력 필요성을 공감하고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한국판 수소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기에 효성그룹이 협의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4개 그룹 회장이 회동,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됐다.

수소기업협의체는 참여 기업을 확정하고 9월 중 CEO 총회를 개최해 출범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CEO 협의체 형태로 운영되며 정기 총회와 포럼 개최를 통해 한국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유도하고 수소 산업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한다. 이를 통해 수소 사회 구현과 탄소 중립 실현에 적극 기여한다.

아바타를 통해 가상현실(VR) 세계를 체험하는 메타버스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메타버스의 핵심인 가상현실(VR)·증강현실(VR) 시장이 2019년 455억 달러(약 52조4000억원)에서 2025년 4764억 달러(약 540조원), 2030년 1조5429억 달러(약 1700조원)로 3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즈니스에 제동이 걸린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통해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특히 취업 설명회와 신입 사원 환영회 등을 개최하기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행사를 메타버스에서 여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는 자회사 ‘네이버Z’를 통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의 로블록스’라고 불리며 급격히 성장한 제페토는 2018년 8월 전 세계 165개국에 출시됐고 지난해 12월 기준 글로벌 가입자 2억 명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 이용자 비율은 90%, 10대 이용자 비율은 80%다.

LG그룹도 메타버스 세계에 뛰어들었다.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의 기업형 밴처캐피털(CVC)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미국의 가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 웨이브에 투자했다. 웨이브는 존 레전드, 린지 스털링을 비롯한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VR 기반의 라이브 콘서트를 50차례 이상 기획, 진행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메타버스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스타트업이다.

대기업의 벤처 투자도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1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에 따르면 벤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일반 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및 벤처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한다. 그동안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 지주사는 금융과 보험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반등의 필요성이 커지자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해외에서는 구글과 인텔 등 대기업들이 CVC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 많은 기업을 길러 내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정부는 CVC 투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해 주는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신규 투자뿐만 아니라 정리도 필요한 시점이다. 공정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들이 실적 부진 분야를 정리하고 고유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 구조를 개편했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았다. 한화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식음료 사업부문을 분할해 더테이스터블을 설립했다. SK는 태양 전지 관련 사업을 하는 SKC에코솔루션, 전기통신공 사업을 하는 SK TNS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KT는 정보기술(IT) 통신 사업과 신사업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무전기를 제조·판매하던 KT파워텔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