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규제·교체 주기 맞물린 슈퍼 사이클....상반기 이어 카타르 등 대형 수주 기대감

[비즈니스 포커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삼성중공업)
액화천연가스(LNG)선은 섭씨 영하 163도로 액화된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선박이다. 액화된 천연가스를 운반하기 위해 온도를 극저온으로 유지하고 기체로 소실되는 양을 최소화해야 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선박 중에서도 ‘고부가 가치 선박’으로 분류된다. 높은 기술력을 지닌 한국 조선사들이 LNG선 수주에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LNG가 주목받는 이유는 현시점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대체 연료이기 때문이다. LNG는 저유황유 대비 15~21% 더 적게 탄소를 배출한다.본격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선사들의 LNG선 발주도 늘어났다. 특히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발주량이 급증했다. 2021년에 접어들자 예년보다 발주량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지만 올해 상반기 발주량은 오히려 급증했다.
‘고부가 가치’ LNG선, 하반기 조선업 이끈다

상반기 LNG선 발주 ‘싹쓸이’한 韓 조선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 업체 클락슨리서치가 7월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에서 152만9421CGT(표준선 환산 톤수)의 LNG선이 발주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6만3629CGT 대비 4배 넘게 급증한 것이다.

상반기에는 특히 한국 조선사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국의 LNG 수주량은 ‘0’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반기 발주량의 94%인 143만3562CGT를 한국이 수주하며 ‘싹쓸이’했다.

LNG선 발주가 활발해지면서 하반기는 수주 잔량이 주춤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하반기 예정된 LNG 프로젝트들의 수주량이 부풀려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하반기의 시작인 7월 들어 2주간 LNG선 발주량이 60만644CGT를 기록하면서 당초의 예상과 달리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그중 52만323CGT를 거머쥐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7월 14일 LNG 운반선의 대거 수주 소식을 전했다. 이날 공시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은 버뮤다와 유럽 소재 선사와 총 9112억원 규모의 초대형 LNG 운반선 4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렸다. 이번에 수주한 선박은 길이 299m, 너비 46m, 높이 26m 규모의 초대형선이다. 울산 현대중공업과 전남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각각 2척씩 건조돼 2025년 하반기까지 선주사에 순차적으로 인도된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치를 거의 다 채웠다. 7월 기준으로 총 163척(해양 2기 포함), 148억 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목표 149억 달러의 99%를 달성했다.

8월에도 한국 선사들의 수주 낭보는 이어졌다. 삼성중공업은 8월 23일 오세아니아 지역 선사로부터 4609억원 규모의 LNG 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고 공시했다. 해당 선박은 2023년 9월까지 인도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LNG 차별화 기술을 바탕으로 우월적인 시장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계약을 포함해 2021년 들어 총 54척, 규모만 71억 달러어치를 수주하며 올해 목표인 91억 달러의 78%를 달성했다. 특히 LNG 운반선 LNG 이중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등 LNG 관련 친환경 선박이 전체 수주 물량의 4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눈에 띈다.

남은 마지막 ‘빅3’인 대우조선해양의 수주도 순항하고 있다. 초대형 LPG선 9척을 포함해 총 41척을 수주하면서 63억3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치인 77억 달러의 82.2%를 이미 달성했다.

“신조선가 상승 가능성 높아”

최근 조선업에는 이른바 ‘슈퍼 사이클’이 도래했다. 환경 규제와 함께 신조선 교체 주기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상반기 조선사들을 먹여살린 것은 컨테이너선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세계 각국이 꺼내 든 경기 부양책으로 수출 화물이 급격히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만 적체 현상이 벌어지면서 컨테이너 운임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갑자기 찾아온 고운임으로 실적이 늘어난 컨테이너 선사들의 선박 발주도 활발해졌다.

상반기를 이끈 건 컨테이너선이었지만 하반기는 LNG선의 활약이 기대된다. 특히 슈퍼 사이클을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하반기 조선업계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강재 가격 급등에 따른 선가 협상 등으로 3분기는 발주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겠지만 카타르 등 대형 LNG선 프로젝트 발주 등으로 4분기에는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 LNG 프로젝트는 국영 석유 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이 진행하는 LNG 운반선 장기 운송 계약이다. 카타르페트롤리엄은 연내 LNG 운반선 40척을 발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규모만 80억 달러에 이른다.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LNG 수송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해운·조선업계의 장기적 먹거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연말까지 카타르 LNG 프로젝트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올해 목표 달성은 무난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빅3’ 조선 업체는 총 100여 척의 LNG선 건조 슬롯을 예약한 바 있다. 슬롯 계약은 신조를 만들기 위해 독(dock)을 미리 선점하는 것이다. 물량과 가격은 본계약 때 정해진다. 계약 기간이 2027년까지인 것을 고려하면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발주가 시작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편 하반기 조선사들의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알려졌던 후판(두게 6mm 이상의 두꺼운 강판) 가격은 톤당 110만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8월 24일 조선 3사와 포스코는 하반기 후판 가격을 30만~35만원 정도 오른 톤당 110만원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상분을 2분기 실적에 공사 손실 충당금으로 미리 반영해 추가적으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판 가격이 오르면서 선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선 3사는 올해 컨테이너선과 LNG선의 활발한 발주로 어느 정도 목표치는 채운 상황이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선가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규 수주 호조와 후판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신조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신조선가지수는 3월 130, 7월 140을 돌파했고 최근엔 145까지 상승했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반기 신규 수주 호조로 주요 조선사들이 2년 이상의 일감을 확보해 대형선 건조 슬롯이 부족해져 조선사들의 협상력이 강화됐다”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올해 말 신조선가 지수가 150~155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