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 세계관으로 MZ세대 겨냥 ‘구름아양조장’

[막걸리 열전]

지난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힙한 칵테일 바에서 화제가 된 막걸리가 있다. 바로 구름아양조장에서 만든 ‘만남의 장소’다. ‘만남의 장소’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사전 예약을 받는데 순식간에 100병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구름아양조장은 최근 신제품 ‘대관람차’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실험적인 막걸리로 마니아층을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겠다는 계획이다.
△구름아양조장이 안도북스와 협업해 선보인 ‘매일그대화’, 신제품 ‘대관람차’.
△구름아양조장이 안도북스와 협업해 선보인 ‘매일그대화’, 신제품 ‘대관람차’.
스토리를 빚는 우리술 창작가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근처에 자리한 구름아양조장은 2019년 출시한 ‘만남의 장소’에 이어 이듬해 ‘사랑의 편지’로 2030세대 사이에서 막걸리 돌풍을 일으켰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예약한 후 방문 구매만 가능한 데도 매달 생산하는 한정 수량 200병이 금세 동이 났다.

구름아양조장에서 만난 신동호·소지섭 양조사는 자신들을 ‘우리술 창작가’라고 소개했다. 세계관과 스토리를 만든다는 의미로 창작가로 칭한다. 두 사람은 2013년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인연을 맺었다. 구름아양조장의 원년 멤버인 신 양조사는 작년에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올해 재합류했다.
△(왼쪽부터) 신동호·소지섭 우리술 창작가.
△(왼쪽부터) 신동호·소지섭 우리술 창작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신 양조사는 바리스타로 창업을 계획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양조의 길에 들어섰다. “커피 없이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 살겠더라고요.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술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신 양조사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대관람차’는 신 양조사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살았을 때 주말이면 소규모 이동식 놀이 공원이 동네에 찾아왔다. 그는 “대관람차를 타고 올라가면 천천히 술에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회상했다. ‘대관람차’는 신 양조사가 개발한 막걸리에 추억을 담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대관람차’가 알코올 도수 12도인 이유도 재미있다. “‘대관람차’는 12시 방향으로 올라갈 때 가장 황홀하잖아요. 그래서 알코올 도수 12도로 만들게 됐어요.”

‘대관람차’는 첨가물 없이 오롯이 철원 오대미로 빚은 알코올 도수 12도의 고도수 막걸리다. 시중의 막걸리 알코올 도수가 6도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그럼에도 목 넘김은 부드럽다. 삼양주 방식으로 빚기 때문이다. 삼양주는 밑술 과정 다음에 두 번의 덧술 과정을 거쳐 만드는 술이다. 세 번 빚은 술로, 쌀로 술을 범벅해 밑술 후 이틀, 1차 덧술 후 이틀 정도 발효한 후 효모가 살아나면 고두밥과 함께 3차 발효를 한다.
△‘대관람차’는 첨가물 없이 오롯이 철원 오대미로 빚는다.
△‘대관람차’는 첨가물 없이 오롯이 철원 오대미로 빚는다.
게다가 탄산이 거의 없어 오래 두고 마셔도 맛이 그대로다. 나눠 마시고 싶을 때는 냉장 보관해 60일 이내에 마시면 된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계절에 따라 다른 향이 느껴지는 점도 특별하다. 봄에는 멜론과 참외 향, 여름에는 요구르트와 코코넛 향, 겨울에는 바나나 향을 느낄 수 있다.

‘배치’에 따라서도 다른 맛이 난다. 전통주는 누룩으로 빚어 매번 같은 술맛을 내기 어렵다. 전통주는 누룩의 발효 상태와 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구름아양조장은 이것을 개별 번호인 배치로 특화했다. 막걸리마다 스토리를 부여한 셈이다. 일정한 레시피로 제조해 그 차이는 미미하지만 마니아층은 배치에 따라 맛을 즐긴다.

“구름아양조장의 마니아들은 직감적으로 단맛과 감칠맛 등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껴요. 배치 번호별로 모으는 마니아도 있을 정도예요.”

‘대관람차’는 등산 후 벌컥벌컥 마시는 막걸리가 아니라 작게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는 술이다. 탄산이 거의 없어 얼렸다가 상온에서 녹여 셔벗으로 먹거나 위스키처럼 얼음과 함께해도 좋다.
△남해에서 자란 토종 유자를 부재료로 사용한 ‘유자가’도 곧 출시된다.
△남해에서 자란 토종 유자를 부재료로 사용한 ‘유자가’도 곧 출시된다.
구름아양조장은 ‘대관람차’에 이어 소 양조사가 만든 유자 막걸리인 ‘유자가’ 출시도 앞두고 있다. ‘유자가’는 남해에서 자란 토종 유자를 부재료로 사용한다. 함박눈을 맞은 유자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유자로, 귀해서 한약재로 쓰인다. 맛도 일반적인 유자 막걸리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단맛을 줄여 깊고 진한 유자 맛을 느낄 수 있다. 탁주는 알코올 도수 9도, 약주는 13도다. ‘유자가’는 로맨틱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소 양조사는 “예비 신부를 위한 술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의 생일이 9월 13일이어서 알코올 도수를 각각 9도와 13도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독립 책방의 문턱을 넘다
얼마 전에는 독립 책방 안도북스와 컬래버레이션해 ‘매일그대화’를 선보였다. 당초 책 읽기 좋은 계절인 봄에 출시할 계획이었는데, 술을 만들고 허가를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7월 말 선보이게 됐다. ‘매일그대화’는 끝 맛에 느껴지는 특유의 매화꽃 향이 상쾌하다. 패키지 디자인에는 조현진 작가가 참여했다.

구름아양조장은 앞으로도 이색 컬래버레이션을 이어 갈 계획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할 거예요.” 구름아양조장은 ‘대관람차’를 필두로 거대한 막걸리 세계의 놀이 동산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이진이·윤제나 한경무크 기자 ziny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