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가계 부채·부동산 대책 위해 서둘러 인상
금리 예고제로 대내외적 불확실성 해소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한국은행 전경. 출처: 한국경제신문
한국은행 전경. 출처: 한국경제신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지난 8월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가 끝난 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추가적으로 올릴 의사도 분명히 했다. ‘물가 안정’이라는 한국은행의 전통적 목표보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대책 성격이 강한 만큼 서둘러 올릴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잦아지지 않는 가운데 향후 얼마나 더 올릴지에 대한 예상도 쉽지 않다.

경제 여건 비해 낮은 금리, 상당한 후폭풍 예상

한 국가의 금리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피셔 공식과 테일러 준칙 금리 구조 모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 테일러 준칙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테일러 준칙은 기준 금리 변경에 따른 사후 검증 지표지만 이제는 적정 금리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산출하는 공식은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 반응 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량 수치)를 곱한다. 같은 방식으로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 반응 계수를 곱한 수에 인플레이션율 수치도 모두 더해 산출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와 고용을 양대 목표를 설정한 이후 성장률 대신 실업률로 대체해 산출하기도 한다.

금리는 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어서 경제 여건을 반영하는 적정 수준보다 현재 금리가 낮으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최근처럼 기준 금리가 0.75%인 상황에서 올해 성장률이 4%,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 등으로 예상된다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더한 적정 금리 수준이 6%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국의 정책 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금리보다 낮아 통화 정책 확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추진된 금리 인하 정책 효과가 국제 금융 시장에서 ‘반감론 혹은 무용론’이 일 정도로 미약해 종전과 같은 부양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금리를 내릴 때 대폭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주요인이다.

경제 여건에 비해 낮은 저금리 국면이 지속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금융 차입 비용이 부동산과 같은 실물 투자 수익률보다 값싸 보이는 ‘부채-경감 현상’으로 나타난 부동산·주식 등에 걸친 자산 거품이다. 앞으로 각국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비용을 치를 것으로 관측된다.

과도기적 현상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각국 시중 금리는 일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면 시중 금리의 기준 격인 정책 금리도 인상해야 한다. 만약 정책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한 나라의 금리 체계가 무너져 금융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번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 것도 이러한 점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출처: 연합뉴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출처: 연합뉴스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 견실한 경제 회복 이끈다

기준 금리 만큼 국민 경제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수는 없다. 8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린 이후 추가 인상 금리에 대해 국민 청원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통화 정책 여건에서는 금리 변경에 따른 논란을 줄이기 위해 예측력 제고 등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다. 이는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이 매분기 전망을 발표할 때마다 3분기 후의 기준 금리 수준과 필요하다면 2∼3년간의 기준 금리 결정 방향까지 내놓겠다는 방침을 말한다.

‘버냉키의 만용’이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비판을 받았지만 자세히 보면 깊고 많은 내용이 함축돼 있다.

그 무엇보다 시장과 소통을 강조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 ‘맨큐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를 중심으로 Fed가 통화 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 제도는 이런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를 시행하면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더 견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한국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입은 피해까지 겹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소상공인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번 금리 인상이 이들 계층에게는 더 서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가 실시되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강화돼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돈이 실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은행이 가장 고민해 왔던 아킬레스건을 풀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리적인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가 큰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 효과가 의외로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가 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한국은행이 사전에 예고한 말과 약속을 지키다 보면 오히려 물가가 불안해지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갈수록 통화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행태 변수가 많아지는 인플레이션 관리 여건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는 추세는 뚜렷하다. 글로벌·사이버화 진전에 따른 최종 상품의 가격 파괴 현상으로 ‘월마크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론자의 이상이 실현됐다고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고집하는 ‘천사와의 키스’보다 경제 성장에 무게를 두는 ‘악마와의 키스’를 선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히려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는 과열일 때 정점을 더 끌어올리고 침체일 때 저점을 더 끌어내리는 ‘경기 순응성’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른바 ‘자동 조절 장치’다. 경기와 물가의 진폭이 줄어들면 주가를 비롯한 각종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팻 테일 리스크’ 장세도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버냉키 전 의장은 취임 초부터 여러 분야에서 전임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대립각을 세워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중에서 통화 정책 관할 대상을 놓고 실물 경제만 고려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까지 감안해 추진해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은 유명하다.

두 전직 Fed 의장의 대논쟁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각국 중앙은행, 특히 Fed를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사전 예고제’가 정형화됐다. 한국은행도 이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추진할 시점이 찾아왔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