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CC 데이터 동맹 발판 성장 돌파구
개인 사업자 신용평가 시장도 눈독

[비즈니스 포커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송호섭(왼쪽) 스타벅스 대표. /사진=현대카드 제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송호섭(왼쪽) 스타벅스 대표. /사진=현대카드 제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늘 업계의 혁신을 주도해 왔다. 선(先)할인 후(後)적립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카드사용=할인=포인트 적립’이라는 공식을 정립했고 플라스틱 카드에 독특한 디자인을 입혀 ‘원 카드 멀티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 트렌드를 선도했다. 최근엔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데이터 플랫폼 분야 신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각종 규제로 신용 판매와 대출이라는 전통 수익원이 위축되고 있어 카드사들이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인 만큼 정 부회장의 전략이 주목된다.
카드사, 데이터가 ‘답’이다?
‘1조4940억원.’ 한국 8개 신용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의 상반기 당기순이익 합계다. 전년 동기 대비 33.6% 증가했다. 대부분의 카드사가 당기순이익 개선에 성공하며 실적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현재 카드사들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카드사들은 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을까. 우선 이들은 올 하반기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3년마다 적격 비용을 재산정하는데, 2019년까지 12년간 총 13차례에 걸쳐 인하됐다. 현재 최대 수수료율은 2.3%다. 올해 역시 가맹점 수수료율이 인하될 것이란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본업의 수익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빅테크(대형 IT 기업)의 위협도 커진 상황이다. 상당수 카드사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 페이먼트 시장에 진입한 빅테크 기업을 가장 큰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 체크·신용카드를 통하지 않고도 손쉽게 간편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서 카드업계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 간편 결제 이용이 늘어나면서 체크카드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은행의 영업 창구를 찾는 사람이 급감하면서 최근 1년 새 시중에서 250만 장 넘는 체크카드가 자취를 감췄다.

위기감을 느낀 카드사들이 새 먹거리로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데이터 플랫폼이다. 이들은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개인 사업자 신용 평가(CB) 등 신규 라이선스 확보에 열을 올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정 부회장도 수수료·이자 수입 중심의 기존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 카드사가 가진 데이터를 가공·활용해 수익을 내는 데이터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 강화에 4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디지털 인력(350명 이상)만 전체 직원의 10%를 훨씬 웃돈다. 디지털에 적합한 조직 개편, 기업 문화 구축, 인프라 변경 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PLCC 기반 데이터 플랫폼 시동
사진=현대카드 제공
사진=현대카드 제공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카드의 데이터 플랫폼 사업의 핵심은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 Private Label Credit Card)다. 그간 쌓아 온 PLCC 파트너사와의 데이터 동맹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서겠단 전략이다. 현대카드는 PLCC를 기반으로 지난 5년간 금융사를 넘어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해 왔다.

PLCC는 유통 등 기업이 전문 카드사와 함께 운영하는 카드다. 상품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제휴 기업과 카드사가 함께 주도권을 나눠 가진다. 비용과 수익을 파트너사와 함께 분담한다는 얘기다. 이는 카드 상품을 설계·운영하는 과정에서 모든 주도권이 ‘카드사’에 있는 제휴카드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한 업체는 여러 개의 카드사와 다양한 제휴 카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런데 정의만 놓고 보면 PLCC와 데이터 플랫폼 사업이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우선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사들을 주목해 보자. 현대카드는 2015년 이마트를 시작으로 업계 ‘챔피언’ 기업만 엄선해 PLCC 파트너십을 맺었다. 온라인 오픈 마켓(이베이), 창고형 마트(코스트코), 자동차(현대차·기아), 정유(GS칼텍스), 항공(대한항공), 커피(스타벅스), 배달(배달의민족) 등이다. 올해 들어선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동맹을 맺으며 1030세대의 데이터 포트폴리오를 채웠고 플랫폼 강자인 네이버 등과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재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사는 14곳이다.

PLCC는 카드 상품을 운영하는 데도 카드사와 기업이 서로의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등 훨씬 긴밀한 파트너십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기업과 카드사는 일대일로만 PLCC를 운영할 수 있다. 이는 현대카드가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의 충성 고객을 현대카드의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의 데이터를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PLCC 전략 이후 현대카드의 회원 수는 2016년 634만 명에서 지난해 900만 명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 기준 949만 명으로 증가했다. 순이익도 2016년 1900억원에서 지난해 2446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1823억원을 올려 벌써 지난해 순이익의 75%를 달성했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노리는 정태영 부회장
정 부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자체 기술로 개발한 데이터 플랫폼 ‘도메인 갤럭시’를 가동했다. 이 플랫폼에서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사는 고객 개개인별 소비 행태를 분석한 데이터를 공유하며 각자의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가 확보한 데이터를 자사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사들에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는 정 부회장이 지난해 파트너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 말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카드는 도메인 갤럭시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함께해 준 파트너사들과 똑같이 하나의 행성일 뿐이다. 현대카드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통해 각 파트너사의 마케팅을 지원하고 성공 사례를 다른 파트너들과 나누고자 한다. 각 업계를 대표하는 ‘챔피언’ 기업들이 모인 만큼 함께 미래를 바꿔 보고 싶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용카드 발급 회원만이 아니라 도메인 갤럭시를 통해 PLCC 회원사도 고객으로 끌어들인 격”이라며 “현대카드의 전략으로 카드사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확장됐다”고 분석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사진=현대카드 제공
자영업자 신용 평가, ‘新 먹거리’
자영업자 대출과 연계한 CB 시장으로도 발을 넓히는 모양새다. 개인 사업자 CB는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혁신 금융 서비스다. 현대카드는 혁신 금융 서비스로 ‘개인 사업자 대출 비교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 중인데 이를 바탕으로 금융위원회에 개인 사업자 CB 예비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서 교수는 “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이 카드사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신용 평가제가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바뀌면서 새로운 평가법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과거엔 우량 신용자 등급을 평가하는 게 중요했는데 요즘엔 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리 이용할 수 있는 있느냐가 주목받고 있다. 자영업자 등의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특화된 평가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사업은 마이데이터 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돼 주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카드사가 새로운 개인 신용 정보 평가 시스템(CSS)을 개발해 마이데이터를 활용하면 맞춤형 대출 서비스 추천 등 초개인화 비즈니스를 선보일 수 있다.

다만 현대카드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개인 사업자 CB 시장은 선점 사업인 측면이 강한데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가 최근 개인 사업자 CB 본허가 신청서를 접수해 결과를 앞두고 있다. 본허가를 승인받으면 신한카드가 800조원이 넘는 자영업자 대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되는 셈이다. 이미 신한카드는 혁신 금융 서비스의 일환으로 카드 정보를 활용한 개인 사업자 신용 평가 서비스인 ‘마이크레딧’을 운영해 다른 카드사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상황이다. 향후 신한카드는 가맹점 결제 정보 등에 외부에서 수집한 각종 데이터를 더해 자영업자 CB 모델을 더욱 고도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 전문 은행과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도 자영업자 대출과 연계한 CB 서비스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카드사는 빅데이터 개발 센터에 투자하는 등 결제 데이터 집적에 우위에 있다”며 “빅테크가 자영업자의 매출 정보가 있어 위협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자산이나 소득 정보는 없다. 카드사가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CSS 개발에 힘쓴다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현대가(家) ‘튀는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페이스북
사진=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페이스북
1960년생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종로학원을 세운 정경진 원장의 아들이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사위다.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재계 사위들 중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드물게 자기 색깔 뽐내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최근엔 한국에서 생소했던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시장을 개척, 카드업계에 PLCC 광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정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후 2007년부터 현대커머셜 대표를 겸임하며 현대차증권을 제외한 그룹 내 금융 계열사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5년 부회장으로 승진,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과 함께 현재까지도 자리를 지키며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정 부회장은 3개 회사 대표를 겸직하면서 매년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고 있다. 올 상반기 현대카드에서 11억2400만원, 현대커머셜에서 9억7500만원, 현대캐피탈에서 8억1400만원을 받아 총 29억1300만원의 보수를 기록하며 카드업계 연봉 1위에 올랐다. 이는 금융지주·은행·보험·카드 등 금융권 CEO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최근 금융권 임직원 겸직 제한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올해 4월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은 정 부회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서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5개월 뒤 정 부회장은 현대캐피탈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을 9월 30일부로 사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미래 역량 강화에 더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정 부회장→현대커머셜→현대카드’가 지배구조 한축을 이루고 있다. 정 부회장이 현대커머셜 지분 12.5%, 부인인 정명이 사장이 25%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커머셜은 현대카드 지분 24.54%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각 36.96%, 37.5%)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