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감 가득한 천연 탄산 막걸리 ‘얼떨결에’

[막걸리 열전]

‘개봉 시 절대 흔들지 말아 주세요.’
막걸리를 마시기 전 으레 하는 행동이 있다. 병 윗부분의 맑은 술과 아래의 침전물을 고루 섞기 위해 막걸리 병을 흔드는 것. 하지만 이 행동을 금하는 막걸리가 있다. 풍부한 천연 탄산뿐만 아니라 깔끔한 맛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막걸리, ‘얼떨결에’다. 2020년 가을 1인 양조장 ‘동강주조’를 설립해 운영한 지 아직 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방용준 대표를 만났다.
△라거 공법을 접목시킨 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
△라거 공법을 접목시킨 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
‘얼떨결에’ 막걸리를 빚다
얼떨결에 막걸리를 빚었다는 홍보 문구 뒤엔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방 대표의 노력이 있다. 그의 시작은 엔지니어였다. 5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발효 공학과 주조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갔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7년간 여러 수제 맥주 회사를 거치며 모든 과정을 몸과 머리로 익혔다. 수제 맥주 브랜드들처럼 우리 전통주도 주류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욕심이 생겼고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 돌아와 지금의 동강주조를 설립했다.

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는 동강주조의 첫 제품이다. 병 안팎으로 영월이 가득하다. 병 안쪽으로 영월에서 생산된 햅쌀에 국내산 누룩과 효모, 정제수를 배합해 만든 탄산 막걸리가 담겼고 밖으로는 영월의 동강을 상징하는 파란 물결과 톡톡 터지는 탄산의 형상을 로고에 넣었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을 상징하는 파란 물결과 톡톡 터지는 탄산의 형상을 로고에 담았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을 상징하는 파란 물결과 톡톡 터지는 탄산의 형상을 로고에 담았다.
“얼떨결에란 제품명처럼 누구든 얼떨결에 이 막걸리를 선택하고, 편하게 마실 수 있었으면 해요.”

타깃층은 확실하다. 막걸리에 거부감이 있거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용 막걸리다. 출시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입소문이 퍼졌다. 한 달 평균 6000~7000병, 최대 9000병까지 생산하며 인기를 실감 중이다.

막걸리에 맥주 발효 공법을 더하다
방 대표는 수제 맥주 회사에서 쌓은 경험치를 ‘얼떨결에’에 녹여 담았다. 맥주의 발효 공법, 그중에서도 라거 공법을 막걸리에 접목했다. 라거 맥주는 저온에서 발효한 뒤 효모가 가라앉은 맥주로 톡 쏘는 시원함과 부드럽고 가벼운 풍미가 특징이다.

기존 막걸리가 섭씨 영상 25~27도 사이에서 발효를 시작한다면 얼떨결에는 섭씨 영상 20도 이하에서 발효를 시작해 점점 온도를 떨어뜨린다. 발효 기간은 오래 걸리지만 더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다. 그 덕분에 요구르트 향, 비스킷 향과 산뜻한 배 향이 나면서 단맛과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마치 탄산수를 마신 것처럼 이물감 없이 산뜻한 끝 맛을 낸다.

“튀는 맛이 없이 무난해 원래 막걸리를 즐겨 마시던 분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기에도 좋고 기름지거나 매콤한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특히 맥주가 어울리는 음식이라면 맥주 대신 얼떨결에를 마셔도 궁합이 좋을 거예요.”
△동강주조는 영월에서 생산된 햅쌀로 막걸리를 빚는다.
△동강주조는 영월에서 생산된 햅쌀로 막걸리를 빚는다.

천연 탄산만을 담다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효모가 포도당을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나뉘며 자연스럽게 탄산이 발생한다. 얼떨결에는 식품성 탄산을 주입했다고 오해받을 만큼 일반 막걸리에 비해 탄산의 양이 풍성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탄산은 질량이 가벼울수록 액에 잘 녹는 특성이 있어요. 제성(양조장에서 술을 빚을 때 도수를 맞추거나 감미를 하는 등의 마지막 단계) 단계에서 술지게미를 많이 걸러 맑고 질량이 가벼운 술을 만듭니다. 여기에 병입 후 숙성 과정에서 천연 탄산이 최대치로 발생하는 온도와 기간을 연구했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 막걸리에선 느낄 수 없던 풍부한 천연 탄산을 구현했어요.”

병뚜껑을 반복해 여닫기만 해도 탄산으로 인해 맑은 술과 침전물이 고루 섞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천연 탄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얼떨결에 전용 잔도 만들었다. 폭이 좁으면서 길고 매끈한 형태의 유리잔을 만들어 탄산이 오래 머무르게 도와준다.

“유명한 맥주들은 전용 잔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전통주도 각 특성에 맞는 잔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전용 잔이 없더라도 유리잔, 특히 샴페인 잔이 있다면 얼떨결에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겁니다.”
△방용준 동강주조 대표.
△방용준 동강주조 대표.

동강주조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강원도의 산물인 포도와 찰보리쌀, 좁쌀, 옥수수를 활용한 ‘얼떨결에 다크 퍼플’과 ‘얼떨결에 다크 옐로’를 출시해 제품 라인업을 넓힐 예정이다.

“규모를 한 번에 키우지는 않을 겁니다. 소극적으로 천천히 제품의 질을 유지하며 키워 나가고 싶어요. 막걸리와 함께 맥주도 생산할 예정입니다. 동양에 막걸리, 서양에 맥주가 있듯이 영월 동강 하면 동강주조의 막걸리, 서강 하면 서강주조의 맥주를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아집 대신 고집으로 좋은 원료만을 사용해 좋은 술을 만들겠다는 방용준 대표의 다짐. 그 다짐과 함께 강원도 영월을 상징하는 회사가 되고자 하는 동강주조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