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에 무너졌던 경차 시장, 캐스퍼 출시로 중흥기 맞는다
[비즈니스 포커스] 1990년대는 한국 경차의 태동기이자 전성기였다. 대우자동차는 1991년 일본 스즈키의 ‘알토’를 기반으로 국민차로 꼽히는 ‘티코’를 출시하며 경차 시대의 막을 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던 서민층에 티코는 ‘마이카 시대’가 가능하도록 했다. 티코는 대중교통보다 유지비가 저렴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티코의 성공으로 현대차 아토스와 기아 비스토, 프라이드, GM대우 마티즈 등의 경차가 잇따라 출시돼 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등장으로 경차 시대는 내리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각종 세제 혜택과 주차·통행료 할인이라는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젊은 소비자들은 소형 SUV로 눈을 돌렸다. 소형 SUV에 밀린 경차, 무너진 10만 대 판매량
소형 SUV의 인기에 밀려 경차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2013년 20만2683대가 팔리며 연간 판매량 20만 대를 돌파했지만 이듬해인 2014년 19만3979대가 팔려 20만 대 벽이 무너졌다. 이후 매년 판매량이 줄었다. 지난해에는 9만7072대만 팔리며 10만 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다양한 라인업으로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 온 경차는 기아 모닝·레이, 쉐보레 스파크 등만 남게 됐다. 이제 경차는 승용차는 물론 SUV보다 판매량이 적다. 보다 비싼 중·대형 세단과 SUV는 다양한 할부 프로모션으로 초기 비용 부담을 크게 낮추고 있고 라인업도 다양해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고 있다.
또한 소비자의 경제 사정이 예전보다 여유로워진 것도 경차가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경차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와 달리 큰 차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 크기는 단연 중형 차량이다. 중형 SUV와 준대형 세단이 베스트 셀링카 1~2위를 다툰다. 경차나 소형차를 주로 구매하던 사회 초년생과 여성 등도 소형 SUV나 준중형 SUV를 선택하고 있다.
제조사의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경차는 SUV나 세단 대비 수익성이 낮다. 줄어든 판매량과 낮은 수익성으로 제조사로선 ‘단종’이라는 칼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 경차가 3종류로 줄어든 가장 큰 이유다. 현대차, 20여 년 만에 경차 ‘캐스퍼’ 출시…사전 계약 대박
수년째 내리막길만 걷고 있는 경차 시장. 현대차 역시 수익성을 이유로 경차 시장에서 완전 철수한 바 있다. 하지만 20여 년 만에 경차를 출시해 관련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던졌다.
현대차는 최근 경형 SUV ‘캐스퍼’를 공개하고 사전 계약을 실시했다. 캐스퍼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첫 결과물로, 현대차가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첫 차량이다. 가격은 △스마트 1385만원 △모던 1590만원 △인스퍼레이션 1870만원 등이다. 가솔린 1.0 터보 엔진과 전용 디자인으로 구성된 액티브 모델은 스마트·모던 트림 95만원, 인스퍼레이션 트림은 90만원이 추가된다.
일각에선 시장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캐스퍼의 성공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축소된 경차 시장은 물론 높은 가격으로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 SUV에 쏠린 소비자의 선호도를 뺏을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 말이다.
캐스퍼는 출시되기 전 ‘반값 연봉’을 내세운 광주형 일자리에서 출시된 차량이다. 온라인 판매로 유통 비용을 줄인 점 등으로 모닝·레이·스파크보다 가격이 저렴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노 옵션’ 차량은 800만원대가 될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현대차그룹의 생산직의 평균 연봉은 8000만원이 넘는다. 반면 광주형 일자리의 초봉은 3500만원대다. 인건비가 낮아진 만큼 차량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기본 트림인 스마트 모델이 1385만원부터 판매된다. 현대차의 ‘스테디셀러’ 아반떼 가격은 1570만원부터 시작한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캐스퍼에는 큰 매력이 없다.
단,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캐스퍼는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전 계약 첫날인 9월 14일에만 1만8940대를 기록해 흥행에 성공했다. 역대 현대차 내연 기관차 사전 계약 첫날 중 최대 기록이다. 캐스퍼의 기록은 2019년 11월 출시된 6세대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1만7294대)보다 높은 수치다.
캐스퍼는 9월 29일 정식 출시되며 올해 1만2000여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사전 계약이 모두 본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목표 달성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닝·레이·스파크 등의 기존 판매량에 캐스퍼가 더해진다면 지난해 무너진 경차 판매량 ‘10만 대’는 다시 회복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가 20여 년 만에 내놓은 캐스퍼가 경차 전성시대를 다시 여는 ‘선봉장’이 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캐스퍼가 사전 계약 첫날부터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던 것은 경차의 경제성에 더해 디자인·안전성·공간성까지 갖춘 상품성 덕분”이라며 “한국 브랜드 최초로 진행한 D2C(고객 직접 판매) 방식으로 구매 편의성을 높인 점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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