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으로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 입어…헝다그룹 리스크도 ‘여전’

[글로벌 현장]
파산 위기에 놓인 중국 최대 건설사이자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이 허난성 주마뎬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연합뉴스)
파산 위기에 놓인 중국 최대 건설사이자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이 허난성 주마뎬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연합뉴스)
헝다그룹 사태로 수면 위에 떠오른 부동산 시장 침체에 이어 중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력난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최근 전력난으로 대규모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중국의 전력난은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성장률 전망 일제히 하향

골드만삭스는 9월 28일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8.2%에서 7.8%로 내렸다고 발표했다. 전력난으로 중국 산업군 가운데 40% 이상 영역에서 생산이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헝다그룹 위기를 불러온 부동산 정책과 탄소 제로 목표 등 정책 불확실성이 3분기 성장률을 1%포인트, 4분기에는 2%포인트 떨어뜨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무라증권은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8.2%에서 7.7%로 내렸다. 석탄 가격 급등과 정부의 엄격한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를 감안할 때 더 내려갈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팡 차이나르네상스 애널리스트는 전력 부족으로 인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1~0.1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차이나르네상스의 기존 전망치는 8.4%다. 중국 IB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도 이번 전력난 사태로 중국의 GDP 증가율이 3분기와 4분기에 0.1∼0.15%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맥쿼리와 알리안츠도 전력난 관련 분석을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주 8.3%에서 8.0%로, 신용 평가 회사 피치는 8.4%에서 8.1%로 각각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렸다. 정부의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으로 인해 중국 경제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산업들이 침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속되는 중국의 전력난은 정부의 탄소 배출 저감 정책, 전기 수요 증가, 석탄·천연가스 등 발전 연료 가격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중국 22개 성 가운데 16개 성에서 전력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이미 알루미늄·철강·시멘트·비료·플라스틱·섬유 등 산업 전반에서 생산량이 떨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항만 작업 지연, 컨테이너 부족에 이어 글로벌 공급 사슬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특히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중국의 전력난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은 남동부 공업벨트인 광둥·장쑤·저장성이다. 중국 지역별 GDP 1·2·4위인 이 3개 성의 지난해 GDP 합계는 28조 위안으로 중국 전체(101조 위안)의 28%를 차지한다.

이 지역에는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특히 대만에서 가까운 장쑤성에는 10여 개의 대만 반도체 업체가 밀집해 있다. 이미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대만 증시에 전력난으로 중국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는 공시를 띄웠다.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에 제품을 공급하는 CWTC는 쑤저우 공장의 생산을 5일간 중단했다. 쿤산의 반도체 제조 업체 ASE쿤산도 국경절 연휴(10월 1~7일)를 마칠 때까지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다.

이들 업체가 전력난으로 조업을 중단함에 따라 반도체 부족으로 중국에서 아이폰을 조립하고 있는 애플 등이 즉각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자동차업계 등 전 세계 제조업에 추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동북3성의 전력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랴오닝성 선양에선 9월 23일 도로 신호등이 꺼져 심각한 교통 혼잡이 발생했다. 지린성은 내년 3월까지 전력 부족으로 인해 단전·단수가 일상화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일부 도시에선 3일 연속 정전 사태도 발생했다.

중국 장쑤성 장자강시에 있는 포스코 스테인리스공장도 9월 21일부터 일부 공정의 가동을 중단했다. 전기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장쑤성 당국은 포스코 등 지역 내 전기 사용이 많은 공장들에 ‘10월 7일까지 전기 공급을 중단하며 단전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통보했다.

포스코 측은 중국 국경절 연휴가 끝나면 전기 공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기업들 중에선 전력난 장기화에 대비해 직원들을 한 달씩 휴직시키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 역풍
헝다그룹부터 전력난까지…발목잡힌 중국 경제 성장 [글로벌 현장]
중국 일부 지역은 전력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과 겨울에 전력 공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정점을 찍은 후 2060년 이전에 탄소 중립(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은 상태)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중국 정부가 에너지 절감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전력 공급 제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경제가 반등해 기업용 전력 수요가 늘고 겨울이 다가오면 전기로 난방을 하는 남부 지역에서는 가정용 수요가 늘어 전력난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전력난이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에 따른 ‘자충수’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여전히 전체 전력의 70%를 화력에 의존하며 화력에서 석탄의 비율이 90%에 달한다. 결국 전체 발전의 60% 이상이 석탄 화력이다. 자국 내 석탄 생산이 부족해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석탄 소비량은 2017년 27억6200만 톤에서 2020년 28억1169만 톤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수입 석탄 가운데 호주산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올해 수입은 ‘0’으로 줄었다. 지난해 코로나19 기원론부터 시작된 양국 갈등으로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의 발전용 석탄 가격은 올 초 톤당 695위안에서 지난 9월 말 톤당 1086위안으로 50% 넘게 올랐다. 대부분의 발전사들이 발전기를 돌릴수록 손해가 쌓이는 상황인 데다 재고까지 소진되면서 발전기 가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한편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돼 온 헝다그룹 리스크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헝다그룹은 첫 고비로 꼽혔던 9월 23일 달러 채권 이자 8350만 달러(약 982억원)와 위안화 채권 이자 2억3200만 위안(약 422억원)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채권 계약서상으로는 이자 지급일로부터 30일 이내까지는 공식 디폴트를 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헝다가 근본적인 유동성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30일 동안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당국의 구제를 기대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자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헝다는 대마불사라고 할 정도로 큰 기업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구제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들에 헝다의 몰락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중국 당국이 헝다에 시간을 주면서 점진적인 구제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와는 상반된 신호다. 지방정부에 내려온 지시는 △사회 불안 차단 △일자리 감소 대비 △주택 구매자 및 경제 전반에 대한 파장 완화 등이다. 또 회계사와 법률 전문가 등을 긴급 소집해 각 지역의 헝다그룹 재무 상태를 조사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헝다그룹이 추진해 온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의 원활한 인수를 준비하는 한편 시위 등에 대비하라고도 요구했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헝다의 부동산 사업에 대한 특별회계를 설치했다. 특별회계는 주택 매입자들의 지불금이 채권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헝다의 부동산 사업에 쓰일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안후이·구이저우·허난성 등 8개 이상의 지방정부가 역내 미완성 부동산 사업에 배정된 자금 전용을 막기 위해 8월 말부터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헝다그룹 본사가 있는 선전시정부는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자금 조달 창구인 헝다자산관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헝다자산관리가 개인들을 대상으로 자산 관리 상품인 ‘리차이’를 판매하면서 허위·과장 광고 등 부당한 투자 권유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헝다자산관리는 8만여 명에게 리차이를 판매해 1000억 위안(약 18조3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현재는 400억 위안어치가 아직 상환되지 않은 상태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