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 연동제 도입 후 첫 요금 인상
당장 연료비 상승분 상쇄하기엔 역부족

[비즈니스 포커스]
한전, 전기요금 인상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
전기요금이 8년 만에 인상됐다. 2013년 11월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올해 4분기(10~12월)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3원 인상한다고 9월 2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 kWh당 3원 인하한 이후 4분기 적용되는 최종 연료비 조정 단가는 kWh당 0원으로 확정됐다.

월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는 매달 전기요금이 최대 1050원까지 오르게 된다. 전기요금 개편안에 따르면 분기별 연료비 조정 단가 변동 폭은 전 분기 대비 kWh당 3원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4분기 전기요금에 연료비 상승분이 반영되더라도 실제로 발생한 연료비를 상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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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탈출 요원…추가 인상 불가피

4분기 전기요금은 6~8월 평균 연료비를 토대로 결정됐다. 한전에 따르면 6~8월 유연탄 가격은 kg당 평균 151.13원,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601.54원, 벙커C유는 574.40원으로 3분기 기준 시점(3~5월)보다 크게 올랐다.

한전은 “4분기 연료비 단가는 석탄과 유가 상승에 따라 kWh당 10.8원으로 급등했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 중 하나인 분기별 조정 폭(kWh당 3원)이 작동해 0원으로 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2·3분기 전기요금 동결로 상승 폭이 제한돼 있어 4분기 요금 인상만으로는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한 9월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전의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1%대 하락한 것도 전기요금 인상 폭이 높아진 원가 상승분을 채우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절기 전력 수요 증가로 천연가스와 석탄 수요 역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비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라며 “4분기 전기요금 인상에도 kWh당 7.37원의 추가 인상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번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연료비 연동제 시행 후 첫 인상이다. 한전은 2020년 12월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연료비를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연료비 연동제는 원유·천연가스·유연탄 등 발전 연료비가 상승하면 전기요금을 올리고 연료비가 하락하면 전기요금을 내리는 등 연료비에 따라 전기료가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구조다. 이미 2011년 시행하기 위해 전기공급 약관까지 변경했지만 당시 물가 상승 우려로 좌초된 바 있다.

정부가 국제 유가 등 연료비 급등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그동안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시장에서는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연료비 연동제 존속 여부에 대한 우려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전기요금 인상은 kWh당 분기 최대 3원, 연간 최대 5원의 제한이 있어 한전의 빠른 실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 요금 인상과 함께 석탄·유가 하락에 따른 연료비 하락이 동시에 수반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1∼6월) 1조2065억원의 적자를 냈고 부채 규모는 62조9500억원, 부채 비율은 122.5%에 이른다. 한전의 2021∼2025년 중·장기 재무 관리 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1조9515억원의 흑자를 냈던 한전은 올해 3조2677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혜정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4분기 연료비 연동제 적용뿐만 아니라 내년 중 기후 환경 비용과 연료비 연동제 동결에 따른 부족분을 반영한 총괄 원가 기반의 전기요금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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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요금도 도미노 인상 우려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실적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그동안 정부의 공공 요금 동결 기조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공기업들이 떠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도 상존한다. 전기요금 인상 여파가 물가 고공 행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이어 11월 결정되는 도시가스·대중교통 요금 등 다른 공공 요금도 줄줄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국제 유가 등 원료비 상승으로 인한 공공 요금 인상 가능성과 관련해 물가 안정을 위해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연료비 연동제 적용 대상인 도시가스 요금은 올해 4분기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 현물 시장(JKM)에서 도시가스의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지난해 7월보다 10배 이상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시가스 요금은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지난해 7월 주택용이 11.2%, 일반용이 12.7% 내린 뒤 15개월째 동결 상태다. 원료비 인상에 따른 가격 조정이 미뤄지면서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도시가스 요금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수년째 동결 상태였던 다른 공공 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철도 요금과 지하철·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2011년 이후 10년째 철도 요금을 동결해 왔고 고속도로 통행료와 서울 지하철·시내버스 요금은 2015년부터 6개월째 동결 상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2021 국정 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도입된 전력 가격 연료비 연동제도로 소비자 물가는 더욱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분기부터 인상되는 전기요금도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한전이 전기요금 산정 요인 중 하나인 내년도 기후 환경 요금을 12월 책정하는데 한전이 올해 상반기에만 기후 환경 비용으로 지난해의 70%에 해당하는 1조7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만큼 기후 환경 비용이 인상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 환경 요금은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 오염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한전이 지출한 비용을 전기 소비자에게 청구하는 금액이다.

기후 환경 요금은 △신재생에너지 의무 이행 비용(RPS)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ETS) △석탄 발전 감축 비용으로 구성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RPS를 현재 9%에서 2026년 25%까지 올리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10월 6일 입법 예고했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RPS 의무 비율을 대폭 상향하기로 하면서 한전의 RPS 비용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ETS 비용 역시 구조적으로 상승할 전망이어서 늘어난 기후 환경 비용을 감안해 한전이 전기요금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두고 한국에서도 그린 플레이션 현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린 플레이션은 전기차·신재생에너지 발전소와 같은 친환경 시대의 핵심 기술의 근간이 되는 원자재(구리·알루미늄·니켈 등)로 수요가 집중되며 가격이 급등하고 경제 전반에 걸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