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9월 거래량 전년 대비 1000배 증가…디지털 가상 세계에서 소비 보편화 전망

[비트코인 A to Z]
올 3월 6930만달러에 판매된 디지털 화가 비플의 NFT 그림 ‘매일 : 첫 5000일’. / 비플
올 3월 6930만달러에 판매된 디지털 화가 비플의 NFT 그림 ‘매일 : 첫 5000일’. / 비플
2021년 디지털 자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뭐니 뭐니 해도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일 것이다. NFT는 상호 등가 교환이 가능한 비트코인·이더와 같은 가상 자산과 달리 고유한 토큰 ID와 소유권이 명시돼 대체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NFT로 1만 개가 발행된 수집품 크립토 펑크 시리즈는 각 번호별로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어 상호 등가 교환이 불가능하다. 크립토 펑크 #1000과 크립토 펑크 #3100은 NFT로 표상된 특성도, 매매되는 가격도 다르다는 뜻이다.
장보드리야르 씨, NFT가 왜 핫한가요?[비트코인 A to Z]
거래량 3453%, 폭발적 성장

NFT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숫자로 증명된다. 세계 최대 NFT 마켓 플레이스 오픈시(OpenSea)의 9월 거래량은 약 3조500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000배가 넘게 증가했다. 또한 2분기 기준 NFT 활성화 지갑·구매자·판매자·거래량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40%, 451%, 265%, 3453% 성장한 수준이다.

또한 NFT 게임으로 유명한 엑시 인피니티의 가상 자산 AXS의 시가 총액이 35조원을 돌파하며 닌텐도·EA스포츠·액티비전 블리자드와 같은 초대형 게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이 역시 최근 NFT 시장에서 큰 화제였다.

NFT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다. 3월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 NFT가 약 785억원에 팔렸고 같은 달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연인 가수 그라임스가 ‘전쟁의 정령’이라는 NFT를 약 65억원에 팔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아트·수집품·게임·엔터테인먼트·스포츠·패션명품·메타버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NFT를 활용한 실험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블록체인 네이티브 스타트업들뿐만 아니라 기존에 비즈니스를 하고 있던 대기업들도 NFT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소더비·크리스티와 같은 아트 경매 회사들은 일찍이 NFT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큐레이션한 NFT 컬렉션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 게임사 위메이드는 ‘미르4’에 NFT에 기반한 P2E(Play to Earn) 모델을 도입해 사용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주가 역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한국 최대 가상 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고 있는 두나무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NFT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구찌·루이비통 등과 같은 패션 명품 업체들도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에서 NFT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주류 기업들의 참여 덕분일까. 블록체인 미디어뿐만 아니라 일반 미디어도 연일 NFT 시장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록체인업계가 주류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자가 보기에 이는 실로 괄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업계의 주요 테마로 주목 받고 있는 라이트닝 네트워크, 디파이(Defi), 작업 증명(PoS) 기반의 이더리움 2.0, 기타 레이어 1, 레이어 2, 크로스 체인 등이 아직 일반인들이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 용어인 점을 고려하면 NFT 인지도에 대한 대중화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렇다면 NFT가 이렇게 핫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도통 납득할 수 없는 디지털 수집품에 적게는 수십 만원, 많게는 수억, 수십 억원을 쓰는 것일까. 우리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사상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소비의 사회’는 현대 사회의 소비 신화와 구조에 대해 낱낱이 파헤친다. 왜 사람들은 저렴한 편의점 커피 대신 고가의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일까. 왜 명품 백의 품질과 거의 유사한 가품은 진품 대비 가격이 훨씬 저렴할까. 왜 국산차와 품질에 거의 차이가 없는 외제차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일까. 왜 저렴한 스마트폰이 아닌 아이폰에 대한 수요는 이리도 높은 것일까. 왜 부자들은 예술품을 소비할까.

장 보드리야르의 책은 위와 같은 현상들의 원인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사물에는 네 가지 속성이 있다고 정의했다. 바로 교환 가치, 사용 가치, 상징적 교환 가치 그리고 기호 가치다. 그중에서 NFT 현상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서는 기호 가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호 가치는 사물의 본래적 효용과는 무관한, 사회 구성원들이 상징적으로 부여한 일종의 문화 체계다. 그는 책에서 기호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

기호 가치는 계급과 궤를 같이한다. 상류 계급은 기호 가치를 통해 다른 계급과 자신들을 구분 짓고 상류의 기호 가치를 지닌 사치품이 대중화될 때쯤 새로운 기호 가치를 생성해 자신들을 대중과 분리한다. 예컨대 루이비통·프라다 등과 같은 명품이 대중화될 때쯤 진짜 부자들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식이다. 혹은 평범한 사람들이 무리해 산 명품 브랜드로 몸을 치장하고 다닐 때 진짜 부자들은 극도로 소탈하게 후드티 혹은 트레이닝 복을 입거나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것도 이러한 예가 될 수 있다.

‘누가 더 낭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소비 경쟁과 기호 가치의 생성과 소멸은 계급사회가 출현한 이후 지루하게 반복돼 온 인류의 역사다. 장 보드리야르는 부자들의 과소비에 관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소비 양식에 의해서, 스타일에 의해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극도로 구별하고 또 자신을 극도로 나타낸다. 과시에서 검소함(극도로 과시적인)으로, 양적인 과시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돈에서 교양으로 이행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특권을 절대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원숭이 캐릭터를 NFT로 사고팔 수 있게 한 ‘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의 캐릭터./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
원숭이 캐릭터를 NFT로 사고팔 수 있게 한 ‘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의 캐릭터./보어드에이프요트클럽
최근 NFT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액시 인피니티’의 서비스 화면.    ♣♣액시 인피니티 페이스북 제공
최근 NFT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액시 인피니티’의 서비스 화면. ♣♣액시 인피니티 페이스북 제공
NFT에 기반한 기호 가치 소비
다시 NFT로 돌아와 NFT의 가치는 장 보드리야르가 설명한 기호 가치, 즉 계급의 차별화 및 정체성 구분 짓기의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24×24 픽셀 이미지 쪼가리인 크립토 펑크 NFT를 수억원에 사고 트위터 프로필에 게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과시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코인 부자 혹은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이거나 상당한 재력을 갖춘 자산가일 것이다(필자의 경험상 실제로 그렇다).

그는 NFT를 소비하고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다. 비싸고 희귀한 NFT를 소유한 사람은 관련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은 NFT는 2차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매매된다.

현 단계에서 NFT는 그들만의 리그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FT는 미래에 메타버스와 만났을 때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프로필에 NFT를 게시하며 뽐내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메타버스가 대중화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NFT에 기반한 기호 가치를 소비하려고 들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기성 세대로선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세대는 보다 많은 시간을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 보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흐려지고 가짜가 오히려 진짜가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NFT와 메타버스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도 ‘소비의 사회’와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가상과 실재에 대해 고찰한 이 책은 영화 ‘매트릭스’에 상당한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가 보기에 현대인들은 이미 ‘매트릭스’ 속에서 가상의 문화 체계인 기호 가치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NFT는 디지털 전환과 기호 가치 소비가 맞물려 나타난 사회 문화적 현상이다.

*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CPC기획팀 과장
(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