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콘텐츠’ 좌우하는 OTT 시장…한국 OTT도 양질의 콘텐츠 확보 필요

[비즈니스 포커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새벽’ 역할을 맡은 배우 정호연 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0월 12일 기준으로 1927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 여자 배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팔로워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정호연 씨의 SNS 팔로워 수는 ‘오징어 게임’ 공개 전만 해도 40만 명대였다.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정호연 씨는 모델 출신 신인 연기자에서 전 세계인의 인지도를 등에 업은 배우가 됐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신드롬에 빠졌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9월 27일 미국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 2021’에 참석해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콘텐츠’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사례는 ‘오징어 게임’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K콘텐츠가 한국에서 먼저 선보인 후 외국에 수출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은 양상이 조금 다르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입성과 함께 전 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루트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넷플릭스)

한류의 원산지는 이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9월 17일 넷플릭스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오징어 게임'은 한국은 물론 브라질, 프랑스, 인도, 터키 등 총 94개국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에 올랐다. 특히 미국 내에서의 인기가 높다. 10월 11일(현지 시간) 글로벌 설문 조사 기업 모닝 컨설팅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들 중 4분의 1이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다. 이 드라마의 히트를 계기로 이정재·박해수 씨 등 출연진은 미국 NBC의 간판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화상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이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프라임 타임 에미상 후보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히트작을 넘어 ‘신드롬’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이라는 히트작을 배출한 넷플릭스로서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2016년 한국 진출 이후 넷플릭스는 약 5년간 7700억원을 투자해 왔다. 올해도 약 5500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는데 이는 작년보다 65% 늘어난 수준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9월 29일 열린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강동한 VP는 “넷플릭스와 한국 창작자들이 함께 빚은 한국 콘텐츠는 한류의 기존 무대인 아시아를 넘어 미주·유럽·아프리카 등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즐기는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이어 갈 한국 콘텐츠들도 하반기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10월 15일 ‘마이 네임’을 시작으로 11월 19일 ‘지옥’, 11월 20일 ‘신세계로부터’, 12월 ‘먹보와 털보’, ‘고요의 바다’, ‘솔로 지옥’, 2022년 ‘소년심판’, ‘지금 우리 학교는’, ‘모럴센스’ 등 장르와 포맷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자체 콘텐츠’는 OTT의 점유율 확대를 일으키는 가장 좋은 동력이다. 넷플릭스 또한 ‘기묘한 이야기’,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전 세계적인 OTT로 올라설 수 있었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이 더해지면서 넷플릭스로 시청자들을 유인하는 ‘메가 콘텐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10월 13일 기준 전 세계 1억1100만 넷플릭스 구독 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다.




한국 OTT들 아직은 넷플 영향력 못 미쳐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토종 OTT’들의 속내는 다소 복잡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확산을 계기로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이 전망 높은 신사업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정보기술(IT) 기업과 통신사 방송사들이 OTT 플랫폼을 연달아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 내 OTT 플랫폼으로는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왓챠 등이 있다. 이들은 ‘토종 OTT’로 분류되며 넷플릭스와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넷플릭스의 점유율이 여전히 높다. 앱애니가 분석한 2021년 6~7월 넷플릭스 등 한국의 주요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왓챠,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리텐션 데이터에 따르면 리텐션 30일 지수(30일 이후 재방문율)와 7일 지수에서는 넷플릭스가 1위, 왓챠가 2위를 차지했고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가 그 뒤를 이었다. 리텐션 지수는 최초 애플리케이션 사용일로부터 사용을 유지하는 재방문한 액티브 이용자의 비율을 측정한 값이다. 넷플릭스는 7일과 30일 이후에도 사용을 유지하는 비율이 1위로 높아 가장 자주 사용하는 OTT인 것으로 분석됐다.

웨이브는 2019년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와 지상파 3사 합작법인 ‘푹’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확보하면서 실시간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 SK텔레콤 가입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을 앞세워 2년 만에 주요 OTT로 급부상했다. 최근에는 미국 방송사 HBO와 제휴하고 HBO 드라마들을 독점 공개하고 있다.

왓챠는 6억2000만 개 이상의 이용자 콘텐츠 평점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콘텐츠 추천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의 스트리밍 서비스다. 2011년 영화 평가 및 추천 서비스 왓챠피디아로 시작해 2016년 스트리밍 서비스로 확장했다. 글로벌 기업 및 대기업과의 경쟁 속에서도 한국 OTT 매출 2위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티빙은 CJ ENM 계열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JTBC와 제휴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또 네이버와 손잡고 네이버 멤버십에 티빙을 추가해 신규 구독자를 유치하고 있다. 여기에 ‘여고추리반’을 시작으로 최근 공개된 연애 리얼 버라이어티 ‘환승연애’가 히트하며 오리지널 예능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렇게 토종 OTT들은 각종 제휴와 자체 콘텐츠 생산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넷플릭스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영업 흑자를 낸 곳은 전무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웨이브 169억원, 티빙 61억원(10~12월 기준), 왓챠가 126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올해 처음 실적을 공개한 넷플릭스코리아는 지난해에만 영업이익 88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토종 OTT들로서는 오징어 게임에 버금가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OTT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 비용을 늘리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하지만 콘텐츠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배우와 제작사, 양질의 대본이 모두 ‘넷플릭스’로 몰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한류 영향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시청자의 한국 콘텐츠 주 시청 채널 중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8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화와 드라마 장르는 각각 64.3%, 63.2%, 예능과 애니메이션 모두 50% 이상을 차지하며 넷플릭스가 한류의 무대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글로벌 OTT의 자막 서비스도 한 몫을 더한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회원들이 한국 콘텐츠를 더욱 가깝게 즐길 수 있도록 최대 31개 언어 자막과 20개 언어 더빙을 제공하고 있다. 배우나 제작자로서는 넷플릭스 입성이 곧 글로벌 시장 진출과 같은 맥락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OTT들의 해외 진출이 필수다. 정부도 토종 OTT의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10월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연합 토종 OTT’ 전략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한국 연합 OTT를 통해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 방통위의 일관된 방침으로 사업자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의 히트가 불러 온 또 다른 ‘나비 효과’는 해외 OTT들이 K콘텐츠에 갖는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른 글로벌 OTT인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 상륙을 앞두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LG유플러스와 손잡고 11월 12일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양질의 콘텐츠가 해외 OTT에 몰릴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마련됐다. 동시에 토종 OTT들의 경쟁 상황도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