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 동탄과 대전에 각각 최대 규모 점포 오픈…지역 ‘맹주’ 노려
[비즈니스 포커스]경기도 성남에 있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난해 1조7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악재 속에서도 문을 연 지 약 5년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한국 백화점 중 최단 기간 ‘1조 클럽’ 가입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경기 남부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라는 점을 앞세워 지역 고객들에게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쇼핑과 문화 경험을 제공했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백화점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서울·부산 이외의 지역에서 첫 ‘매출 1조 백화점’이 됐다는 것에 주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점차 국민소득 수준이 늘고 있는 데다 명품 구매가 새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시작으로 서울·부산 외 지역에서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백화점들이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주요 백화점들의 출점 공식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보다 구매력이 높은 지방을 타깃으로 삼는 이른바 ‘지방 고객 사로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에 있던 경쟁사들보다 더 크고 차별화된 콘텐츠로 중무장한 점포를 앞세워 소비자들을 그러모으며 매출 성장을 꾀하고 있다.
백화점업계 맏형 격인 롯데백화점은 8월 경기도 동탄점의 문을 열며 경기 남부 지역 공략에 나섰다. 경기 남부는 백화점업계의 최대 격전지로 꼽힐 만큼 경쟁이 만만치 않다. 최단 기간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경기 남부의 ‘맹주’로 떠오른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용인), 갤러리아 광교점(수원), AK플라자 분당점 등이 포진해있다.
롯데, 동탄점 오픈…현대백화점에 도전장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백화점이 2014년 수원점 이후 7년 만의 출점 장소로 경기 남부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권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경기 남부엔 약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서울(약 960만 명)보다 많다.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결코 서울에 뒤처지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사는 데 지갑을 여는 것을 주저하는 성향이 덜한 30~40대가 많은 것이 강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역시 이런 3040을 겨냥해 내부에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고급 식당 등을 유치해 빠르게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주요 백화점들 가운데 유일하게 롯데만이 경기 남부 지역에 백화점을 운영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 지역 판도를 바꾸겠다는 각오와 함께 동탄점을 오픈하며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더욱이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자리한 동탄은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 연구 단지와 산업 클러스터 등이 들어서 있는 등 빼어난 입지를 자랑하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은 이런 동탄점을 서울 잠실점과 같은 ‘롯데 타운’으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을 목표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우선 동탄점은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총면적이 24만5886㎡(지하 2층~지상 8층)로 단숨에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제치고 경기 지역 최대 규모 백화점에 올라섰다.
다른 백화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내부 구성도 돋보인다. 동탄점의 콘셉트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스테이플렉스’다. ‘머무르다(stay)’와 ‘다목적 건물(complex)’의 합성어다. 실제로 동탄점은 소비자들이 ‘머무르고 싶은 백화점’을 만든 흔적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천장에 거대한 채광창을 만들어 자연 빛이 들어오도록 해 방문객들이 내부에서 갑갑함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외부에는 나무들로 가득한 대형 정원을 조성하고 이곳에 ‘스트리트 쇼핑몰’을 만드는 등 기존 백화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공간들을 선보였다.
신세계 “충청 이남 고객 사로잡는다”게다가 유명 맛집부터 카페까지 100여 개의 식음료(F&B) 브랜드를 갖췄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고객들이 동탄점 안에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도록 면적의 50% 이상을 예술·문화·F&B 등 체험 콘텐츠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출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롯데백화점은 경기 남부의 명소로 순식간에 자리 잡아 오픈 약 2개월 만에 누적 매출 25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백화점은 충청 지역 최초의 매출 1조 클럽 가입을 노리고 있다. 바로 8월 출점한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Art&Science, 이하 대전신세계)’를 통해서다. 충청 이남권의 고객들을 흡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 충청 지역 최대 도시인 대전은 현재 롯데백화점과 갤러리아 등이 영업 중이다. 대전신세계 또한 이들을 압도할 만한 크기(28만4224㎡)와 콘텐츠로 백화점 내부를 가득 채운 것이 특징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기존에 중부권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시설들로 공간을 가득 채웠다”고 강조했다.
대전신세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전망대다. ‘디 아트 스페이스 193’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의 높이는 193m로, 꼭대기에 올라가면 대전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단순히 전망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도 내부에 마련돼 고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충청권 최초의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인 ‘스포츠 몬스터’도 대전신세계 내부에 선보였다. 이곳은 로프 코스와 수직으로 떨어지는 버티컬 슬라이드, 아트 클라이밍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생동감 넘치는 음향과 첨단 기술로 채운 프리미엄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충청권 최초로 도입됐다. 카이스트 연구진과 손잡고 ‘신세계 넥스페리움’도 만들었다. 이곳은 과학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다. 대전엑스포가 개최된 곳에 자리해 상징성을 계승한 것은 물론 2021년 최첨단 과학을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선보인다. 3대 미래 분야인 로봇·바이오·우주 등을 테마로 구성했고 특별한 체험형 클래스도 제공한다.
이 밖에 대전신세계는 아쿠아리움·호텔 등 기존 충청권 백화점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공간들을 선보이며 충청 지역의 새 맹주를 꿈꾸고 있다.돋보기
서울 백화점. 사실상 포화…2027년 이후 신규 점포 출점 어려울 것최근 백화점업계가 잇따라 지방으로 영토 확장을 강화하는 이면에는 서울 지역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가장 최근 오픈한 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이다. 올해 초 ‘쇼핑 불모지’라고 불렸던 여의도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새 백화점이 등장한 것은 2011년 롯데백화점 김포점 이후 10여 년 만이다.
신규 점포는 약 6년 뒤인 2027년에나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이 강남 수서역 환승센터에 대규모 백화점 출점을 계획 중이다. 그런데 백화점업계에서는 이곳이 사실상 서울에서 새롭게 문을 여는 마지막 백화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사실상 서울의 백화점은 포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같은 전망이 제기되는 주된 배경은 구매 방식의 변화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자연히 대형마트들은 생존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나마 명품을 앞세운 백화점들은 실적을 선방했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명품 구매의 벽 역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어 문제다.
오프라인 백화점 역시 대형마트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임대료 등 땅값이 비싸고 경쟁이 치열한 서울 지역에서의 신규 츨점은 자칫 득이 아닌 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백화점 역시 결국엔 체험형 공간으로 점차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앞으로 주요 백화점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치열하고 땅값이나 임대료가 저렴한 지방 대도시 위주로 출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울에서는 체험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기존 점포의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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